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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근대의 끝에서 탈성장을 준비하다



‘일본의 재구성’ 저자 패트릭 스미스 인터뷰 (아시아미래포럼 시리즈 1부 1회)
 

“일본 원전 대재앙, 저성장 수용 계기될 것

, 근대·환경관심 혼재 아시아선 ‘일반적 현상’
, 서구화 매달리지만 ‘중국다움’ 추구 강렬해
‘진짜 모던’ 아시아, 사민주의 비슷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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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트릭 스미스는 성장을 성공의 유일한 척도로 삼던 사회를 넘어서려는 아시아의 새로운 흐름을 ‘후기물질주의’라고 부른다. 그는 “아시아가 19세기에 출발한 여정의 끝에 이르렀다”며 지난 150년 동안 서구를 따라잡으려 노력했던 아시아가 이제 서구에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패트릭 스미스 제공
등불이 꺼진 시대다. 오랫동안 세계경제를 이끌어 온 미국과 유럽은 재정위기에 휩싸여 있다. 지구 곳곳의 환경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중국과 인도가 대량소비 대열에 동참하면서 자원 고갈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3월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원전 사고는 기술과 개발에 대한 맹신, 성장을 행복의 유일한 척도로 떠받들던 의식체계를 뒤흔들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좌표를 차근차근 살펴야 한다. 이 점에서 아시아에서 싹트고 있는 새로운 흐름은 눈여겨볼 만하다. 물질중심적인 서구의 가치를 맹목적으로 뒤쫓기만 하던 데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 공동체가 하나로 어우러진 아시아적 가치를 재발견하려는 움직임도 그 하나다. 위기의 ‘국경’이 사라진 세상에서, 지역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눈으로 위기에 맞서는 공동의 노력은 새로운 경험이자 자산이다.

<한겨레>가 2011년 특별기획으로 마련한 ‘아시아, 우리 공동의 미래’는 이런 새로운 움직임을 긴 호흡으로 짚어보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제1부 ‘대재앙 이후의 아시아’는 전체 시리즈의 총론 성격을 띤다. 지난 3월 일본을 덮친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계기로 아시아 곳곳에서 일고 있는 성찰과 반성을 살펴본다. 제2부 ‘재앙없는 사회, 기업이 이끈다’에서는 환경 파괴를 막고 재앙의 싹을 없애려는 아시아 대표 기업들의 분주한 행보를 다룬다. 제3부 ‘아시아가 아시아에게’에서는 아시아 사회 곳곳의 문제를 아시아 전체가 힘을 합쳐 해결하려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최우성 기자morgen@hani.co.kr

 


아시아는 인류의 미래에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을까. 동서양을 넘나들며 아시아를 살펴 온 저술가 패트릭 스미스는 “아시아가 ’탈성장’이란 새로운 세기의 원리를 빚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비서구 지역에선 처음으로 물질적 근대화를 완수하고, 저변에 살아남은 전통과 서구에서 이식된 문화를 모두 자신의 모습으로 수용하며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전자우편으로 이뤄졌다. 이해를 위해 보충이 필요한 부분은 그의 양해를 얻어 저술과 기고문을 참조해 추가했다.

 

-당신은 아시아가 19세기에 출발한 여정의 끝에 이르렀다고 했다. 즉 아시아의 근대를 규정해 온 물질적인 프로젝트가 거의 완료되고 다른 종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려 한다고 했다. 그런 새 사조를 한마디로 무엇이라 할 수 있나?

 

“나는 이것을 ‘후기물질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일본 학자인 가토 노리히로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후기성장사회’라는 말을 썼다. 후기물질주의는 성장을 성공의 유일한 척도로 삼았던 사회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는 아주 새로운 것이다. 한 세기 반 동안 서구를 따라잡으려 노력했던 아시아는 이제 서구에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는 것 같다. 누구나 이런 어젠다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들의 내구력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당신은 아시아가 이식된 근대화의 물질적 발전에만 집중하다 고도자본주의 소비사회에 이르러 허무주의에 갇히게 된다고 했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물질적 근대화가 종점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이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지금의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불러왔다. 이런 모멘텀은 1980년대 일본에서 나타났고, 좀 뒤에는 한국과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중국은 지금 막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근대성’을 ’물질적 근대화’와 구별되는 내면적 체계의 재정립 문제로 봤다. 아시아가 스스로 생각하고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을 탈서구화, 탈근대화란 말로 개념화할 수 있나?

 

“나는 탈서구화나 탈근대화가 쟁점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아시아가 서구화와 근대화를 근대 아시아 역사의 일부로 수용할 수 있느냐, 서구화와 근대화의 의미를 재규정해 이제 아시아적인 것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여부다.”

 

-지금 아시아에서 나타나는 것은 근대 극복을 모색해 온 서구에도 답이 될 수 있는가?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란 무엇인가’ 또 ‘성공적인 사회란 무엇인가’를 재개념화하는 데 아시아가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서구가 이런 변화를 자신의 가치로 받아들이느냐는 다른 문제다.”

 

-왜 특별히 아시아가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나?

“아시아는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 아시아는 물질적 근대화 프로젝트를 완성했거나 완료해가는 유일한 비서구 지역이다. 그들은 서구를 받아들여 모방했지만, 그 저변에는 비서구적인 가치가 상존해 있었다. 아시아는 대단히 다채로운 지역이지만 이런 경험은 모든 아시아인에게 공유되고 있다. 따라서 서구가 대답하지 못하는 문제에 해법을 제시할 아시아만의 책무가 있다.”

 

-지진해일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준 충격은 일본인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이런 충격이 일본이 150년 이상 열중해 온 서구식 근대화의 한계를 재인식하고 새로운 정치·경제·사회 패러다임을 내면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는가?

 

“그렇다. 원전 사고의 사회경제적 ‘낙진’이 있다면 일본 국민들은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양보하더라도 저성장을 수용하는 인생관을 갖게 될 것이다. 직접 영향을 받지 않은 지역에서도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오랜 믿음, 서구에서 전수된 이런 믿음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일본을 지금까지 끌고 온 ‘1등주의’를 넘어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이 ‘성장에 덜 코 꿰인 사회’를 모색한 지는 사실 오래됐다. 일본의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은 단선적 진보와 시장에 초점을 맞춘 기존 관념에 균형을 잡아줄 새로운 경제·사회·환경적 가치를 찾는 모색의 기간이었다. 한계가 점점 명확해지는 세상에서 일본은 성장을 넘어서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게 될 것이다.”

 

-세계적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여전히 성장에 몰두해 있고 더 많은 원전을 지으려 한다. 하지만 당신은 중국이 일본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으며, 성장을 넘어 지속가능성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너무 낙관적인 생각 아닌가?

 

“중국은 현재 서구화를 통한 근대화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그들은 19세기에 일본이 했던 것처럼 서구화와 근대화를 혼동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저변을 볼 필요가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 중국에서 이뤄지는 실험에는 보기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서구화 프로젝트에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고, 중국인의 정체성을 말하는 ‘중국다움’에 대한 추구도 강렬하다. 내가 고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중국이 진정한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는 중국이 서구의 반영물로서가 아니라 마침내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요 아시아 국가의 하나인 한국은 여전히 서구적 근대성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는 것 같다. 현 정부는 4대강을 반듯하게 하는 대규모 토건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의 참사를 보고도 원전을 계속 더 짓고, 수출산업화하겠다는 계획을 밀고나가고 있다. 반면 복지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갈수록 중요한 정치적 의제가 되고 있다. 이런 뒤섞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는 아시아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새로운 시대가 오고 구시대가 물러나는 것이 교과서에서 설명되듯 그렇게 깔끔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유럽의 근대라고 부르는 시기에도 근대적인 것과 함께 전근대적인 사고가 가득했다. 이성의 시대가 늘 이성적이지만은 않았다. 아시아, 한국이 지금 그렇다. 그런데 놀라면 안 된다. 변화는 서서히 오고, 오래된 것은 천천히 물러간다.”

 

-탈서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즉 근대성에 바탕을 둔 아시아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가?

 

“진정으로 ’모던’한 아시아는 유럽의 사민주의와 비슷할 것이다. 성숙하는 정신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성장 또한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전통을 보면 영·미식 ‘시장근본주의’보다는 전후 독일에서 나타난 ‘사회적 시장경제’ 와 친화성이 있지 않은가? 아시아 공동체 역시 제도화의 문제이다. 아시아가 성숙해감에 따라 어떤 제도적 프레임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징후를 북핵 6자 회담에서 목격한다. 많은 지식인들이 6자 회담의 틀이 그 회담이 종료된 뒤에도 유지될 것으로 본다. 아시아의 다양성은 이 지역에서 공동시장이나 통화펀드 혹은 그 비슷한 제도가 나타나기 어려운 이유로 지적되어 왔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양성과 어긋남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런 것들은 사실 바람직한 것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장하준도 극찬한 ‘동양문제 저술가’

패트릭 스미스 누구?

루스 베네딕트의 저서 <국화와 칼>에 비견되는 탁월한 일본 분석서로 꼽히는 <일본의 재구성>을 쓴 언론인이자 저술가이다.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일본의 숨겨진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은 그해 <뉴욕 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주목할 만한 도서’로 꼽혔다.

그는 최근 탈서구시대에 아시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다룬 에세이 <다른 누군가의 세기>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아시아가 서구의 미래라는 관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책 제목에 나오는 ‘다른 누군가’는 바로 아시아를 가리킨다. 그는 책에서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기가 더는 서구의 세기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때가 왔다”고 선언한다.

그가 주목하는 아시아는 서구를 따르는 아시아도 아니고, 서구에 맞서는 아시아도 아니다. 그는 서구적 근대화로 정체성의 혼란과 자아분열을 겪은 ‘있는 그대로의 아시아’에서 새로운 세기의 자양분을 발견한다.

그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도쿄 지국장(1987~1991)과 <뉴요커>,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특파원으로 20년 이상 아시아 각지를 돌았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는 <다른 누군가의 세기> 추천사에서 그를 “동서양을 넘나드는 시각으로 동양을 이해하고, 어떤 면에서는 동양인보다 동양을 더 잘 이해하는, 세계적으로 드문 저술가”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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