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8-10-15 
슈룽은 유학 시절 함께 공부한 중국인 친구다. 중국 정부에서 공직자로 일했던 그는, 늘 애국적이고 진지했다. 빈부 격차와 거품 논란이 있었지만, 늘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스러워하며 결국 그 성장의 과실이 중국인에게 골고루 돌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경제 성장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중국인의 행복이라는 사명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영학 공부를 마친 뒤 다국적기업에 취업해서도 그 애국심과 자부심은 바뀌지 않았다. 
사회책임경영(CSR) 국제포럼에서 발표하기 위해 마카오에 가는 길에 홍콩에 들러 그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멜라민 분유 사태 때문이다. “중국에 정말 최악의 사고가 난 거야. 지진 사태를 빼고는 최근 몇 년간 최악의 사태라고. 중국 최초의 우주유영조차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어.” 모처럼 만난 그는 저녁식사 테이블 너머로 진심으로 좌절하고 있었다. 

멜라민 사태는 겉보기에도 심각했다. 마카오 포럼에 참석한 중국 기업인들은 다들 ‘킷캣’(네슬레의 초콜릿 바)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는 이야기를 화제에 올리고 있었다. 홍콩에서 일하는 한 중국인은 “중국 친구들이 홍콩에서 분유를 사서 보내 달라고 한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멜라민 분유 파문을 일으킨 중국 싼루그룹이 이번 우주유영 프로젝트에 유제품을 후원했으니, 우주인까지 멜라민 분유를 섭취한 것 아니냐는 자조까지 나왔다. 어디서도 멜라민 사태를 빼고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친구 슈룽의 고민은 거기서 한 걸음 더 깊어져 있었다. 중국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지탱해 온 것은 신뢰였다. 중국 경제와 중국 기업이 당장은 성장률과 매출에만 집착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중국인의 행복이라는 사명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그 신뢰가 위태로워졌다. 사명을 잃어버린 기업, 영혼을 잃어버린 기업이 중국 경제를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멜라민 사태의 주역인 싼루는 최근까지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일컬어졌다. 연평균 15%의 매출성장률을 기록하던 신화의 주역이었다. 그런데 사명은 팽개치고 그저 성장만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분유회사의 사명은 당연히 ‘영유아의 건강 증진’일 텐데, 정반대 행동을 했으니 말이다. 친구는 이 대목에서 절망했다. 

어쩌면 이건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전세계를 휩쓸고 우리 곁에도 다가와 있는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다. 모든 금융사가 ‘투자자에게 투자상품의 기회뿐 아니라 위험까지 분명하게 설명하고 관리해줘야 한다’는 자산관리인으로서의 사명에 철저했다면, 그래도 지금 같은 위기 상황이 닥쳐왔을까? 

사실 기업에 손익계산서 너머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여러 세계적 경영학자들이 끊임없이 강조한 사실이다. 피터 드러커는 저서 <경영의 실제>에서 “이익 하나만 강조하는 것은 경영자가 기업의 생존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지점에까지 이르도록 오도한다”고 언급했다. 

잔치가 끝나고, 위기와 불확실성의 시대가 왔다. 오랫동안 우리는 손익계산서의 숫자에 따라 흔들렸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신뢰다. 이 신뢰는 회계장부만 들이대서는 얻을 수 없다. “미래의 조직은 사명 중심 조직”이라는 프랜시스 헤셀바인의 말을 빌릴 필요조차도 없다. 멜라민 분유 사태만 돌아봐도 답은 분명하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우리 기업의 사명선언서를 다시 읽어보고, 다시 써보고, 고객과 소통해 보자. 위기일수록 되돌아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지금이 미래를 준비하기에 더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5분경영학] 가격 할인, 그 치명적 유혹

2005-11-16 미국 항공산업을 일시에 무너뜨린 가격경쟁 전략, 무작정 뛰어들면 파멸로 자신과 경쟁사들의 한계비용을 과학적으로 따져보고 합리적인 대책 세워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볼 때마다...

  • HERI
  • 2011.06.27
  • 조회수 5617

[5분경영학] 이명박 시대, 기부문화의 미래는?

2008-01-17 소득공제 시스템 때문에 세율 낮아지면 기부금도 줄어… 정부의 책임 회피로 민간이 나선다는 의견도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어떤 기업은 이익의 5% 가까이를 사회공헌 활동에 사용한...

  • HERI
  • 2011.06.27
  • 조회수 5252

[5분경영학] 한국 기업들의 사회공헌 등급은?

2008-01-03 옥스퍼드대 쿠널 바수 교수의 구분법…강도귀족형·경리사원형·로빈후드형·존경받는 정치인형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연말이면 각 기업이 어딘가 온정의 손길을 뻗었다는 기사가 쏟아져나온다.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298

(삶과경제) ‘녹색성장’의 냄새와 온도는?

2008-08-20 그 칫솔회사 최고경영자는 컨설턴트들에 대한 불만부터 쏟아냈다. “컨설팅을 해 준다더니, 기계를 도입하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람이 할일이 없어지게 되는데 말이지요.” 경영...

  • HERI
  • 2011.06.27
  • 조회수 5049

(삶과경제) 후계자의 경쟁력

2008-07-18 세계적 기업 존슨앤존슨의 경영을 이야기할 때, 경영학자들은 창업자이자 소유주였던 로버트 우드 존슨보다 그의 뒤를 이어 기업을 이끈 ‘월급 사장’ 제임스 버크를 먼저 언급한다. 버크는 존슨앤드존슨에 대리급으로 ...

  • HERI
  • 2011.06.27
  • 조회수 4632

(삶과경제) 손익계산서에서 사명선언서로

2008-10-15 슈룽은 유학 시절 함께 공부한 중국인 친구다. 중국 정부에서 공직자로 일했던 그는, 늘 애국적이고 진지했다. 빈부 격차와 거품 논란이 있었지만, 늘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자랑스러워하며 결국 그 성장의 과실이...

  • HERI
  • 2011.06.27
  • 조회수 5590

(삶과경제) 불황과 기부

2008-11-12 스타벅스의 실적이 추락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서늘해졌다. 이 다국적 커피 브랜드의 최근 분기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 주당 1센트로 떨어졌고, 뉴욕증시 상장주식의 가격은 연일 하락세를 ...

  • HERI
  • 2011.06.27
  • 조회수 4726

(삶과경제) 다양성과 생산성

2008-09-17 처음 유학길에 올랐을 때 이야기다. 내가 속했던 경영대학원의 엠비에이 과정에서는 대부분의 수업을 팀별 프로젝트 수행 형식으로 진행했다. 팀 동료에 따라 성적과 졸업 여부가 좌우될 수 있었다. 학교에서 강제로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200

(삶과 경제) 억울한 CEO를 위하여

2008-07-18 작은 기업의 경영자를 만났다. 선한 동기로 기업을 시작해서, 일하는 사람이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도록 돕겠다는 생각을 갖고 경영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과거 비영리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그의 지금 가장 큰 고...

  • HERI
  • 2011.06.27
  • 조회수 4690

(나라살림가족살림) 한국경제, 하이에나 시대 끝내야

2007-10-10 사자는 코끼리를 사냥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사냥감인 코끼리떼를 발견하면, 이십여 마리가 흩어져 사냥감 무리의 30미터 근방까지 다가간다. 그리고는 두 무리로 나누어 한 무리는 어미를 유인하고 다른 한 무리는 ...

  • HERI
  • 2011.06.27
  • 조회수 4791

(나라살림가족살림) 삼성인을 위한 변명 / 이원재

2008-04-02 내가 술김에 하는 이야기인데, 요즘 같아서는 정말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너무 부끄러워!” 유난히도 춥던 지난 겨울 어느날, 어느 포장마차에서였지요. 소주 한 잔을 들이킨 뒤 형은 푸념했지요. 귀를 의심했답니다. ...

  • HERI
  • 2011.06.27
  • 조회수 4335

(나라살림가족살림) 경제학의 시대, 경제학의 임무

2008-03-05 ㄱ씨. 열아홉. 외국어고등학교 졸업 뒤 대학 진학 준비 중. ㄴ씨. 서른여섯. 대학병원 원무과 근무. ㄷ씨. 스물셋. 대학 재학생. 외국유학 준비 중. 도무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 사람들, 경제학 강의실에서 만...

  • HERI
  • 2011.06.27
  • 조회수 5443

[5분경영학] 1천원 지폐를 경매하면 3400원?

1천원 지폐를 경매하면 3400원? 내 행동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반응까지 생각해 전략적 결정 내리는 게임이론… 한 동네 두 개의 설렁탕집의 가격경쟁이나 휴대전화·항공시장에서도 적용 가능 2006-06-22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

  • HERI
  • 2011.06.27
  • 조회수 5835

[5분경영학] 경제학이 버린 1만원을 찾아라

경제학자와 경영자 사이에는 큰 간극 존재… 현실에 존재하는 비효율과 독점의 틈새를 찾아내야 돈이 보여 2008-12-31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경제학자 두 명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중 한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230

[5분경영학] 피자는 자장면이 부럽다

[이원재의 5분 경영학] “먹어봐야만 맛을 아는” 경험재는 일반 재화 시장보다 진입장벽 높아 질레트도 3천억원 쓰고서야 삼중날 면도기 성공, 자장면의 균질성 돋보인다 2005-12-28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

  • HERI
  • 2011.06.27
  • 조회수 5384

[5분경영학] ‘저렴한 자존심’을 드립니다

저렴한 자존심’을 드립니다 세계 시계 시장의 경계를 허물고 패션이라는 새 영역에 뛰어든 스와치… 고가로 자존심 파는 스위스 시계와 저가 전자 시계 사이에서 빈틈 개척 2006-09-06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

  • HERI
  • 2011.06.27
  • 조회수 5529

[국정브리핑]월마트를 넘어 이젠 ‘웰마트’로

국정브리핑 | 기사입력 2007-02-20 13:39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수지 동향에서 전국 가구 소득 5분위 비율이 7.64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이는 도시근로자 소득은 향상됐지만 특히 영세 자영업...

  • HERI
  • 2011.06.27
  • 조회수 6147

[유레카] 플래시메모리

할리우드 영화 <맨인블랙>에서 주인공들의 임무는 지구인으로 위장해 살고 있는 외계인들을 가려내고 관리하는 일이다. 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 가운데 하나가 기억을 지우는 장치다. 외계인을 본 지구인들한테 쓴 이 장치는,...

  • HERI
  • 2011.06.27
  • 조회수 5166

[경제] 우리회사 사회공헌 점수?…‘국제표준’에 눈높이 맞춰라

기업과 사회의 연대 유엔글로벌콤팩트 GRI 가이드라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 ‘10대 원칙’ 협약 환경·노동 등 국제사회 공유가치 담아 이종근 기자 » 지난달 17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 HERI
  • 2011.06.27
  • 조회수 5686

[경제] 일자리·교육·인력양성…기업, 사회의 빈곳을 채우다

일자리·교육·인력양성…기업, 사회의 빈곳을 채우다 기업과 사회의 연대 잘못 만회하는 ‘사회공헌활동’은 옛말 ‘공유가치’ 찾아 함께하는 단계로 진전 이원재 기자 김영훈 기자 » 〈기업과 사회의 연대〉일자리·교육·인력양성…기...

  • HERI
  • 2011.06.27
  • 조회수 5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