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7-10-10 
사자는 코끼리를 사냥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사냥감인 코끼리떼를 발견하면, 이십여 마리가 흩어져 사냥감 무리의 30미터 근방까지 다가간다. 그리고는 두 무리로 나누어 한 무리는 어미를 유인하고 다른 한 무리는 새끼 코끼리를 공격한다. 이 순간, 몇킬로미터 바깥에서부터 피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자의 포식이 끝나고 버려진 주검을 뒤져 일용할 양식을 마련한다. 하이에나는 그렇게 생존한다. 
하이에나한테 처음 누가 사냥을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누가 그 사냥감을 취하고, 생존하느냐다. 그래서 부끄럼 없이 남이 쓰러뜨린 사냥감을 빼앗고, 남들이 버린 짐승의 주검을 뒤진다. 그래서 사냥감을 발굴하고자 하는 창조성은 필요 없다. 그저 누가 어디서 사냥감을 쓰러뜨리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정보력과, 발견한 사냥감을 향해 무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력만 있으면 된다. 

한국 경제가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계획 시기에 채택했던 전략이 바로 하이에나의 전략이었다. 그 시대 성공한 기업도, 그 시대 성공한 사람들도 하이에나의 방식을 따랐다. 

기업은 외국 기업이 이미 개척해 놓은 시장에 가서 가장 비슷한 물건을 가장 빨리, 가장 많이, 가장 값싸게 만들어 내놓으며 경쟁했다. 빨리, 많이 생산하자는 구호가 전국을 휘감았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었다. 끊임없이 고속도로와 다리를 놓아,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속도를 높였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든 소프트웨어에는 관심이 없었다. 창조성을 발휘할 필요가 없는 전략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문제를 오랫동안 깊이 고민한 학자보다는, 외국 이론을 배워 온 학자가 더 대접받는 풍토가 이때 생겼다. 정책연구 보고서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외국 사례이고, 컨설팅 보고서의 가장 중요한 대목이 벤치마킹이 되고 마는 관행의 출발도 이 때였다. 외국에서 어떤 정책을 펴고 있으며, 외국 기업에서 어떤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는지가 우리 실정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 시기, 한국 경제의 하이에나 전략은 나름대로 합리적이었다. 높아진 국민소득이 그 성과였다. 하이에나한테는, 창조성을 발휘해 먼저 사냥감을 찾아내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사양해야 할 일이다. 위험을 떠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섣불리 창조성을 발휘하고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국력을 투입했다가, 기껏 개발한 신기술 신상품이 세계시장의 외면을 받으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는 선진국 기업의 견제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러나 하이에나 전략은 영원할 수 없다. 하이에나가 승승장구해 세력이 커지고 사자의 세력이 줄어들면, 하이에나도 스스로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 이제 스스로 ‘개발도상국’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해질 만큼 덩치가 커진 한국경제가 지금 겪고 있는 게 바로 하이에나 딜레마다. 이제 모방해 만들 외국기업 제품도 많지 않고, 벤치마킹할 외국 사례도 찾기 어렵다. 우리 경제가 너무 성장해서다. 

‘창조경영’과 ‘명품’이 재계의 화두가 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모방제품과 가격경쟁력으로 경쟁하던 경제개발계획 시대의 전략을 유지해서는 더는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문제 설정이지만, 여전히 실행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전체를 아우르는 전략의 틀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불철주야 공장을 가동하면 경쟁력이 생기던 시대는 그 끄트머리를 향해 치닫고 있다. 창조적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바탕을 둔 국가경제 비전과 전략이 나와야 할 때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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