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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탄식하듯 말했다. “삼성에 창조경영은 맞지 않습니다. 조직문화가 창조를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이건희 회장이 창조경영을 언급한 뒤 삼성 전체가 창조경영 신드롬으로 들썩이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점이었다.

늘 ‘관리의 삼성’이었다. ‘대한민국 인재사관학교’라는 말도 그 관리력에서 나왔다. 그 관리 기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 덕에 삼성 출신은 관리체계가 잘 갖춰지지 않은 중소•중견 기업으로부터 언제나 환영을 받는 인재가 됐다. 사람을 관리하는 인사부서와 돈을 관리하는 재무부서 출신은 노동시장에서 더 큰 환영을 받았다.

관리를 중시하는 삼성은 갈등을 견디지 못한다. 관리되지 않는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삼성에서는 ‘비노조 정책’이라는 이름 아래 아예 허용되지 않는다. 사업 실패보다 지각이 더 나쁘다는 철저한 근태관리도 바로 그 모습이다. 얼마 전 공개된 삼성 신입사원 수련회 동영상에서는 신입사원들이 현란한 카드섹션을 대규모로 펼치고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신입사원들이 처음 만나 며칠 준비해 벌이는 카드섹션이 거의 세계적 수준이다. 철저히 관리된 조직력의 정수를 보여준 사례다. 반도체 사업 초기, 반도체 부문 전 직원이 64㎞를 행군하며 각오를 다져 64메가디램을 만들었다는 ‘전설’까지 듣고 보면, 삼성의 사업 성공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그 삼성이 요즘은 창조경영을 이야기하는 데 열심이다. 그런데 관리와 창조경영은 잘 들어맞는 조합일까? ‘관리의 삼성’이 창조경영의 선구자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회장의 입을 떠나자마자 삼성의 창조는 관리되기 시작했다. 회장 주변의 두뇌집단은 분주히 움직이며 이론을 만들어냈다. 각 계열사 사장은 앵무새처럼 창조경영 찬가를 따라 불렀다. 전혀 창조적이지 않은 창조경영 열풍이었다.

창조경영의 문제 제기는 사실 아주 적절한 시점에 나왔다. 세계적 경영학자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경쟁전략 이론에서 기업의 경쟁력은 비용 우위나 차별화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임금 수준이 높아지면서 더는 비용 우위를 누릴 수 없게 된 한국 기업은 차별화를 통해 경쟁하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시점이 됐다. 그런데 차별화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창조성이다.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지 않고는 남과 달라질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창조해야 성장할 수 있는 때다.

창조경영 이야기가 나온 지도 반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 삼성은 정말로 창조적인 신성장 모형을 만들고 있을까? 아니면 창조를 그저 관리하려고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창조는 관리되지 않는다. 창조는 창조될 뿐이다. 창조경영의 길을 가려면 ‘관리의 삼성’이라는 허물을 벗어던져야 한다. 수많은 자유로운 영혼이 떠들썩하게 말썽을 일으키고 티격태격하면서 굴러가는 기업을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은 두 번의 큰 변신을 겪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외친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1998년 외환위기 뒤 대대적 구조조정이 그 두 번이다. 국외 인수합병, 경영진 물갈이, 대대적 구조조정 등 최근 삼성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삼성이 다시 한 번 대대적 기업 변신을 꾀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궁금하다.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는 거칠지만 자유로운 영혼이 살아 숨쉬는 기업이 될지, 아니면 끝까지 깔끔하게 정돈된 이미지로 관리되는 기업으로 남을지. 세 번째 변신을 꾀하고 있는 삼성의 이번 선택지는 어느 쪽이 될까?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2007.07.19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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