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나라살림가족살림] 엔지오와 엠비에이

HERI 2011. 06. 27
조회수 5356
 미국 경영대학원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날, 학교 쪽으로부터 전자우편 한 통이 날아왔다. “방학 동안 비영리 조직에서 인턴으로 일할 학생은 미리 신청하면 임금의 절반을 지원할 예정이니 신청서를 작성해 보내주세요.”

2년짜리 엠비에이 과정 재학생에게 여름 인턴은 좋은 취업 탐색 기회이기도 하고, 비싼 학비를 마련할 수 있는 돈벌이 기회이기도 하다. 많은 학생들이 기업에서 인턴십 경험을 쌓으면서, 방학 기간에 1만∼2만달러라는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여 학비를 충당한다. 문제는 인턴십 경험을 쌓으며 기여도 하고 싶은데, 보수를 넉넉히 줄 수 없는 곳을 만날 때 생긴다. 비영리 민간기구, 곧 비정부기구(NGO)가 그 대표적 사례다.

많은 경영대학원 학생들이 엔지오에서 일하면서 기업에서 찾을 수 없는 가치를 찾는 동시에 넓은 시야를 갖고 일을 해 보고 싶어한다. 또 엔지오들은 조직의 성장을 위해 경영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느끼며 학생들을 데려다 함께 일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높은 임금을 주기 어려운 엔지오의 사정과 학비 보충이 필요한 학생의 사정 탓에, 엠비에이와 엔지오가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제도 중 하나가 엔지오 인턴십 지원 프로그램이다. 경영 전문성이 엔지오로 유입되는 것을 장려하기 위해, 인턴십 인건비 일부를 학교나 외부 기부자가 지원해 주는 것이다. 인턴십뿐 아니다. 엠비에이가 졸업 뒤 비영리 조직에 취업할 때 학자금을 탕감해 주거나 인건비를 주는 방법으로 지원하는 학교도 있다. 하버드, 스탠퍼드, 콜럼비아 등 유수한 대학의 경영대학원들이 그렇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비영리 조직에 취업한 엠비에이들은 마케팅, 모금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며 해당 조직의 성장을 돕는다.

한편, 엠비에이 과정이 개설된 대학 쪽에서도 비영리 조직 출신을 반긴다. 주로 경영 사례에 대한 토론으로 수업이 진행되는 엠비에이 과정은 직장 경력이 최소한 3년 이상은 있어야 학생으로 선발하는데, 아무래도 영리기업 출신이 관심을 많이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학교 쪽에서는 학생 경력이 다양할수록 토론이 다채로워지고 풍부해진다고 생각하므로, 비영리 조직 출신을 적극적으로 반기는 편이다. 그래서 듀크대학 같은 곳은 아예 엔지오 출신 입학자 중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사회부문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고액의 장학금을 따로 주기도 한다.

나도 최근 비영리 조직에서 경영과 관련된 교육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이 몇차례 있었다. 한국의 비영리 단체에서도 경영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경영학이 원래 속도와 크기만 중시하는 ‘효율성’(efficiency)이 아니라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중시하는 ‘효과성’(effectiveness)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다.

단체나 조직에 인력 지식에 대한 수요가 있는데 공급이 받쳐주지 못하면, 조직 수준이 정체 또는 퇴보하게 된다. 엔지오와 엠비에이. 과거에는 어색해 보였을지 모르는 두 단어를 만나게 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마침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고급 경영전문가 양성을 위해 경영전문대학원 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새롭게 진용을 갖춰 출발하는 경영전문대학원에서 비영리 단체 인재를 널리 선발하고, 또 양성된 경영전문가들이 비영리 부문으로도 유입될 수 있는 지원체제를 꾸리면 어떨까. 돈을 버는 조직과 가치를 실현하는 조직 사이를 잇는 멋진 구름다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세계 유수 경영대학원에서도 다들 시행하는 일이라니 하는 말이다.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2007.06.20 18:22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나라살림가족살림) 경제학의 시대, 경제학의 임무

2008-03-05 ㄱ씨. 열아홉. 외국어고등학교 졸업 뒤 대학 진학 준비 중. ㄴ씨. 서른여섯. 대학병원 원무과 근무. ㄷ씨. 스물셋. 대학 재학생. 외국유학 준비 중. 도무지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이 사람들, 경제학 강의실에서 만...

  • HERI
  • 2011.06.27
  • 조회수 5308

[5분경영학] 1천원 지폐를 경매하면 3400원?

1천원 지폐를 경매하면 3400원? 내 행동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반응까지 생각해 전략적 결정 내리는 게임이론… 한 동네 두 개의 설렁탕집의 가격경쟁이나 휴대전화·항공시장에서도 적용 가능 2006-06-22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

  • HERI
  • 2011.06.27
  • 조회수 5687

[5분경영학] 경제학이 버린 1만원을 찾아라

경제학자와 경영자 사이에는 큰 간극 존재… 현실에 존재하는 비효율과 독점의 틈새를 찾아내야 돈이 보여 2008-12-31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경제학자 두 명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중 한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121

[5분경영학] 피자는 자장면이 부럽다

[이원재의 5분 경영학] “먹어봐야만 맛을 아는” 경험재는 일반 재화 시장보다 진입장벽 높아 질레트도 3천억원 쓰고서야 삼중날 면도기 성공, 자장면의 균질성 돋보인다 2005-12-28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

  • HERI
  • 2011.06.27
  • 조회수 5277

[5분경영학] ‘저렴한 자존심’을 드립니다

저렴한 자존심’을 드립니다 세계 시계 시장의 경계를 허물고 패션이라는 새 영역에 뛰어든 스와치… 고가로 자존심 파는 스위스 시계와 저가 전자 시계 사이에서 빈틈 개척 2006-09-06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

  • HERI
  • 2011.06.27
  • 조회수 5432

[국정브리핑]월마트를 넘어 이젠 ‘웰마트’로

국정브리핑 | 기사입력 2007-02-20 13:39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수지 동향에서 전국 가구 소득 5분위 비율이 7.64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이는 도시근로자 소득은 향상됐지만 특히 영세 자영업...

  • HERI
  • 2011.06.27
  • 조회수 5984

[유레카] 플래시메모리

할리우드 영화 <맨인블랙>에서 주인공들의 임무는 지구인으로 위장해 살고 있는 외계인들을 가려내고 관리하는 일이다. 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필수품 가운데 하나가 기억을 지우는 장치다. 외계인을 본 지구인들한테 쓴 이 장치는,...

  • HERI
  • 2011.06.27
  • 조회수 5043

[경제] 우리회사 사회공헌 점수?…‘국제표준’에 눈높이 맞춰라

기업과 사회의 연대 유엔글로벌콤팩트 GRI 가이드라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 ‘10대 원칙’ 협약 환경·노동 등 국제사회 공유가치 담아 이종근 기자 » 지난달 17일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 HERI
  • 2011.06.27
  • 조회수 5565

[경제] 일자리·교육·인력양성…기업, 사회의 빈곳을 채우다

일자리·교육·인력양성…기업, 사회의 빈곳을 채우다 기업과 사회의 연대 잘못 만회하는 ‘사회공헌활동’은 옛말 ‘공유가치’ 찾아 함께하는 단계로 진전 이원재 기자 김영훈 기자 » 〈기업과 사회의 연대〉일자리·교육·인력양성…기...

  • HERI
  • 2011.06.27
  • 조회수 5690

[유레카] 5㎝

5㎝ 어떤 단어나 문장을 만나면 이유 없이 멍해질 때가 있다. 두 번 잇따라 나를 그렇게 만든 말은 ‘5㎝’였다. 한번은 지난 6월 개봉했던 일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초속 5㎝>였다. 1초에 몇 센티미터를 간다는 식의...

  • HERI
  • 2011.06.27
  • 조회수 4885

[5분경영학] 경제는 돈이 아니라 행복이다

바야흐로 재테크의 전성시대, 오해부터 바로잡고 경제학을 논하자 한 기업교육 전문가를 만나서 직장인 경제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업교육 과정 중 경제 교육 시간을 넣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던 중이었다...

  • HERI
  • 2011.06.27
  • 조회수 5090

[유레카] 위키디피아

위키디피아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는 별난 구석이 많다. 아무나 새 주제어를 올릴 수 있고, 이미 오른 글도 고치거나 지울 수 있다. 비회원도 글을 남기는 데 제한이 없다. 사용자들에게 알리는 안내성 지침도, 내용을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499

[나라살림가족살림] 사법부의 사회공헌 모독

내가 하는 사회공헌활동이래야 푼돈이다. 매달 월드비전에 2만원씩 내고, 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에 2만원씩 내는, 그 4만원이 전부다. 대신, 내가 음주운전이나 교통사고 같은 일로 법정에 서게 될 때, 그 4만원이 내게 뭔가 도움...

  • HERI
  • 2011.06.27
  • 조회수 4850

[5분경영학] 실수를 계속해야 성공한다

제임스 버크 존슨앤드존슨 전 회장의 샐러리맨 신화를 만든 한마디, 두려움 없는 도전정신 누구나 실수를 한다. 회사에서는 더 그렇다. 집에서는 자신 있게 잘하던 일도 직장 상사 앞에만 가면 괜히 망쳐놓고 만다. 그런데 혹시...

  • HERI
  • 2011.06.27
  • 조회수 5517

[유레카] 우주

우주 일상의 번잡스러움이 싫어질 때면 인터넷을 뒤져 우주 사진을 찾곤 한다. 그 짧고 한가한 일탈이 내게 주는 위안은 크다. 안개가 휘감은 전설 속 산봉우리 모양의 ‘엔지시(NGC) 6357’이란 별구름(성운)은 막 태어난 푸른...

  • HERI
  • 2011.06.27
  • 조회수 4506

[유레카] 헤지펀드

헤지펀드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에서 체제와 사상이라는 닫힌 틀을 비판했다. 그걸로 우리의 자유로운 사고와 소통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유독 ‘개입과 통제’라는 예외를 허락한 영역이 경제...

  • HERI
  • 2011.06.27
  • 조회수 4772

[5분경영학] 생각을 바꾸면 환경도 돈이 된다

‘에코매지네이션’을 경영 원칙으로 제시한 GE의 친환경적 상상력 “착한 일을 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옛날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이다. <흥부와 놀부>도 그랬고, <금도끼 은도끼>도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160

[나라살림가족살림] 사회공헌활동을 구조조정하자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이 설립한 미국 게이츠재단을 최근에 찾아갔다. 이 재단은 기금이 빌 게이츠 회장의 기부금과 또다른 억만장자 워런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의 기부금을 합쳐 334억달러(약 30조원)나 되는 거대 ...

  • HERI
  • 2011.06.27
  • 조회수 4098

[5분경영학] 미국 소와 한국 돼지의 긴장 관계

대체제로 묶여 있는 쇠고기•돼지고기• 닭고기, 경쟁 상대를 파악하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풀렸다. 유통업체들은 값도 싸고 맛도 좋다고 홍보하느라 야단법석이다. 그럼 이제 한우 생산업계는 절체절명의...

  • HERI
  • 2011.06.27
  • 조회수 5174

[유레카] 이매진

아일랜드 출신 록밴드 유투(U2)는 1983년 세 번째 앨범 <워>(War)를 발표한다. 북아일랜드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이 영국군에 한테 무력하게 학살된 ‘피의 일요일’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앨범 발표 공연장에 유투는 아무것도 그려져...

  • HERI
  • 2011.06.27
  • 조회수 4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