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만적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 영국의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학생 시위대들이 지난해 10월10일 런던 시내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 |
새해를 맞는 지구촌 시민들은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 앞에서 그 원인과 대안을 찾으며 마음의 양식을 구하고 있다. 유럽은 금융위기를 배태한 글로벌 자본주의의 실상을, 미국은 위기 극복을 이끈 지도자들의 생애에 관심을 보인다. 올해 베이징올림픽 개최 등으로 위상을 다시 제고한 중국은 찬란한 과거를 복기하고 있고, 오랜 불황에 사회적 약자들이 스러져가는 일본은 과거의 고전을 다시 들추고 있다. 새해 세계 각국 서점가를 점령한 화제의 책들은 모았다.
■ 영국
세계를 휩쓴 금융위기의 뿌리를 돌아보고, 자본주의의 미래를 모색하는 책들이 영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로버트 페스턴이 쓴 <누가 영국을 움직이는가?>(Who runs Britain?)와 마이클 킨즐리의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가 대표적이다. 이 책들의 인기는 심화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을 성찰하면서, 자본주의의 변화 가능성을 묻고 있는 영국 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누가 영국을…>을 쓴 로버트 페스턴은 <비비시>(BBC) 방송의 산업부장으로, 영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지난해 노던록 은행의 파산 가능성과 에이치비오에스(HBOS) 은행의 합병 등 굵직굵직한 특종기사를 잇따라 보도하면서 날카로운 분석력과 뛰어난 취재력을 인정받았다. 이 책은 기자로서 영국의 금융인, 기업인, 정치인 등을 직접 인터뷰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국 사회를 날카롭게 분석한 땀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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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블레어 총리와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현 총리) 등은 이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대내외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힘썼다.
2007년엔 주식회사에 대한 세금을 2%포인트 감면하는 등 금융자본이 이동하지 않게 제도적으로 지원했다. 또 금융자본가들에게 부담이 되는 어떤
형태의 외부 도전도 적극적으로 방어했다. 유럽연합(EU)이나 독일 등에서 주장해온, 금융자본에 대한 감독과 감시에 대해 당시 노동당 정부는
강력히 반대했다. 페스턴의 이런 주장을 고려하면, 최근 브라운 총리가 오히려 세계적 차원의 금융감독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강력히 주창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노동당 정부가 이처럼 금융자본가들의 이익에 충실하게 된 원인에 대해, 페스턴은 탐욕스런 금융가·자본가들이 영국 총리실과 재무장관실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노동당에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등 강력한 로비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페스턴이 우려하는 것은 금융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된 결과, 의료·교육 등 공공부문에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특혜를 받은 초부자·초자본가가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결국 일반 시민들이라며 “억대의 부유층들에 대해서도 일반 시민들처럼 수입에 맞게 적절하게 과세해야 한다”며 이들에 대한 적극적 규제를 강조했다.
마이클 킨즐리의 <창조적 자본주의>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모색한다. 기업의 공익적 역할을 강조하는 빌 게이츠의 주장과 그 가능성에 대한 워런 버핏 등의 의견을 담은 책이다. 마이클 킨즐리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자본주의를 그대로 풀어놓으려는 생각은 광견병에 걸린 개들을 풀어놓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라고 적었다. 현 자본주의로는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빈곤과 양극화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위한 기업의 공익성을 강조하는 게이츠의 주장을 인용하며, 기업들이 세계의 빈곤·질병 등의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힌다. 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위한 구체적 실천대안을 제시한 바 있다. 먼저, “기업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자선적인 업무를 강화해야 한다”며 주주들을 설득하는 등 뚜렷한 정책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제품의 가격을 차별화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싼 가격으로 제품을 팔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품이나 소프트웨어 같은 제품은 초기 개발비용이 많이 들지만 제품 생산비용은 아주 적게 드는 현실을 고려해서, “선진국에는 원래의 가격으로 팔되, 가난한 국가에는 더 싸게 팔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를 개발해야 한다며, 예를 들면 신약 판매에 필요한 승인 과정에서 후진국 국민들에게 필요한 약품의 승인은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익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업과 ‘정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책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요크/전용호 통신원 chon21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