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6-11-23
옵션을 묶음으로 파는 것은 국지적 독점을 통한 이익 극대화 전략…인터넷 커뮤니티의 도토리 판매도 회원들에 대한 독점력 때문에 가능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이주의 용어

국지적 독점(local monopoly)

독점력(monopoly power)

묶음판매(bundling)

날이 쌀쌀해지니 자동차 좌석이 더 차갑게 느껴진다. 추위를 쉽게 타는 그분도 아침에 시동 걸 때마다 느껴야 하는 한기가 싫으셨나 보다. 이번에 큰맘 먹고 새로 대형차를 구입하면서는, 돈을 조금 더 주고서라도 옵션으로 좌석을 따뜻하게 해주는 열선 시트를 넣겠다고 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그런데 얼마 뒤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물론 그 자동차 옵션에 열선 시트는 있었다. 문제는 자동차 회사에서 열선 시트만 옵션으로 장착해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윈도 체제 논란도 마찬가지

회사 쪽은 대신 72만원짜리 ‘플러스 팩’이라는 옵션 세트를 권했다. 그걸 구입하면 거기에 열선 시트가 포함돼 있다고 했단다. 플러스 팩에는 MP3 기능을 지원하는 고급 오디오와 스피커가 포함돼 있다. 열선 시트 값은 10만원 정도나 할 텐데 말이다. 자동차 오디오는 단지 뉴스와 교통 흐름을 듣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이분은 고민에 빠졌다.

이런 자동차 옵션 판매 방식은 묶음판매(bundling)다. 묶음판매는 기업의 이익을 늘릴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독점력(monopoly power)을 지닌 제품과 다른 제품을 묶어 팔면, 소비자는 독점적 지위를 가진 제품을 사기 위해 나머지 제품에 대해 지불 의사보다 높은 가격을 주고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원리다.

문득 찾아오는 의문. 묶음판매는 독점력을 가진 제품이라야 할 수 있다고? 알다시피 자동차는 독점이 아니다. MP3 플레이어도 스피커도 모두 시장에서 경쟁하는 제품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독점력을 갖게 됐을까? 기업 사이 경쟁이 소비자 편익을 높인다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자동차 옵션에 관한 한 그저 ‘옵션’이었을 뿐일까?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통곡할 노릇이다.


△ 자동차 옵션은 독점력을 지닌 제품과 다른 제품을 묶어 파는 묶음판매 방식이다. 한 자동차 회사의 마케팅 행사.

비밀은 국지적 독점(local monopoly)이라는 개념에 숨어 있었다. 자동차 회사에서는 특정 모델에 최적화된 각종 장치를 출고 때부터 장착해 내놓는다. 이런 장치를 소비자가 나중에 외부에서 구입해 원래 있던 장치를 뜯어내고 대체하는 제품과 대비해 ‘순정품’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순정품’에 있다. MP3 기능이 있는 오디오를 달고 싶은데, 순정품은 다른 장치와 묶음판매를 하고 있어서 가격이 비싸다고 치자. 그렇다고 오디오를 달지 않고 자동차를 몰고 나오기는 찜찜하다. 게다가 다른 오디오를 사다 붙이면 잘 맞을지도 불안하다. ‘순정품’은 이 자동차 회사가 직접 생산하거나 승인한 제품이니 분명 최적화되어 있을 것 같지만, 다른 회사 제품은 어떨지 확신이 서기가 어렵다.

다른 장치 몇 개 더 붙이더라도, 순정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생긴다. 이때 소비자들의 마음속에 형성되는 게 국지적 독점이다. 특정 모델을 구입한 소비자 그룹에 한해서, 순정품이 일정한 독점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오디오는 많지만, 순정품은 단 하나이기 때문에 생기는 독점력이다.

따지고 보면, 이건 자동차 옵션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파는 도토리도 독점이다. 누가 도토리 1개에 100원이라고 정했나? 누군가 1개당 50원에 팔기 시작하면 어떨까? 왜 도토리 대신 외부에서 밤이나 땅콩을 사와서 그걸로 음악을 사면 안 되나?

정답은 역시 국지적 독점이다. 그 회원 그룹에 한해서 인터넷 커뮤니티는 독점력을 갖기 때문에, 가격과 판매 형태를 기업 입맛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물론 목표는 이윤 극대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 독점을 둘러싼 끊이지 않는 논쟁도 바로 이 근방에서 벌어진다. 운영체제를 독점하면 결국 응용 소프트웨어까지 독점하게 되어 소비자가 더 비싼 값을 주고 사게 된다는 논리 말이다.

현명한 기업이라면 경쟁 납품 방식을

일반적으로 독점기업은 가격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독점을 규제한다. 전화요금을 정부가 통제하는 이유는, 통신산업에서는 한 개 업체가 상당한 독점력을 갖고 있어 소비자가 불리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지적 독점력을 얻은 기업도, 특정 소비자군에서 가격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당연히 대부분의 기업은 여전히 소비자 마음속의 독점력을 조금이라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현명한 기업이라면, 먼저 소비자 보호에 나설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자동차 회사가 순정품을 직접 생산하거나 한 개 업체를 선정해 생산하는 대신, 많은 업체가 경쟁해 납품할 수 있도록 개방할 수도 있다. 컴퓨터 운영체제라면 소스코드를 공개할 수도 있다. 진입장벽을 쳐놓고 독점력을 즐기는 대신, 응용 프로그램에서의 경쟁을 통해 가격을 떨어뜨려 소비자 후생을 높여주는 것이다.

역시 기업 사이에 경쟁이 벌어지면 소비자가 유리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편견과 배제 없는 질서 있는 경쟁일수록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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