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6-05-23
유대전화나 놀이공원처럼 기본요금·입장료와 사용료를 따로 받는 이중가격제…기업의 독점력이 클수록, 소비자 성향이 동질적일수록 더 매력적인 가격 전략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이부가격제(two-part tariff)

한계효용(marginal utility)

휴대전화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휴대전화 서비스를 기본요금이 좀더 비싼 대신 분당 이용료가 더 싼 다른 요금제로 바꾸라는 전화였다. 전화 저편의 목소리는, 최근 내 전화 사용 패턴을 볼 때 요금제를 바꾸면 요금이 얼마가 절약된다면서 유혹했다.

유혹에 넘어가는 대신, 미안하게도 내게는 휴대전화 회사가 원하는 것보다 내가 전화를 적게 쓰고 있는 게 분명하다는 묘한 승리감이 먼저 찾아왔다. 거기에 문득 덧붙여지는 깨달음. 전화요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기본요금과 분당 이용료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특이한 가격 체계다.

판매량 줄이지 않으면서 이윤 극대화

동네 중국집에서는 입장료를 먼저 받은 다음에 자장면 값을 먹은 양만큼 따로 받지 않는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가입비가 따로 있는 일은 없다.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는 보통 사용량에 비례해 가격이 매겨지는데, 왜 유독 전화만 기본요금이라는 명목으로 전혀 쓰지 않아도 돈을 받을까?


△ 이부가격제를 분석하는 데 사용된 전통적인 사례는 디즈니랜드와 같은 놀이공원이다.소비자의 소비 성향이 매우 비슷하다.(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여기에는 또 무슨 경영 전략이 숨어 있을까?

휴대전화 회사는 ‘이부가격제’(two-part tariff)라는 가격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부가격제 아래서 소비자가 어떤 상품을 사려면 우선 살 수 있는 권리를 돈을 주고 사야 하고, 실제 상품을 소비할 때 그 사용량에 비례해 또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사실 휴대전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부가격제는 놀이공원이나 수도·전기 같은 공공서비스 회사나 면도기 회사, 골프장 같은 곳에서 주로 사용한다. 입장권이나 전화·전기·수도 기본요금이나 면도기나 회원권은 상품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에 해당한다. 놀이기구당 사용료, 전화 분당 사용료, 면도날 값, 골프장 일일 이용료가 사용량에 비례해 치르는 비용이다.

이부가격제를 통해 기업은 판매량을 줄이지 않으면서도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 제품 한 개당 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소비자로서는 사용량을 줄일 이유가 없다. 그리고 입장료가 소비 전체에서 얻는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보다 높지 않다면, 기꺼이 입장료를 내고 사용을 시작하게 된다.

이부가격제를 분석하는 데 사용된 전통적인 사례는 디즈니랜드 같은 놀이공원이다. 이부가격제를 가장 처음 분석한 논문은 미국 로체스터대학의 월터 오아이 교수가 쓴 ‘디즈니랜드 딜레마: 미키마우스를 위한 이부가격제’이다. 이 논문에서 오아이는 “당신이 디즈니랜드의 주인이라면, 입장료를 올려받고 놀이기구당 사용료를 낮게 받겠는가, 아니면 입장료를 없애고 놀이기구당 사용료를 높게 받겠는가”라는 질문으로 분석을 시작한다.

어릴 적 놀이공원은 입장료가 쌌다. 그리고 입장한 뒤 놀이기구를 한 번 탈 때마다 놀이기구마다 붙어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했다. 그래서 입장료만 내고 들어가 놀이기구를 골라 타거나 혹은 구경만 하는 ‘눈 쇼핑’이 가능했다. 변두리의 허름한 놀이공원일수록 더 그랬다. 자유이용권도 있었지만, 그건 돈 많은 애들이나 사는 사치품이었다.

현실에서 오아이 교수의 질문은 이제 해결된 듯하다. 서울랜드나 에버랜드나 이제 입장권은 엄청나게 비싸졌다. 게다가 ‘빅5’니 ‘빅3’니 하는 묶음표만 (역시 비싸게) 팔 뿐, 놀이기구 하나씩만 탈 수도 없게 돼 있다. 상대적으로 자유이용권은 오히려 싸 보인다. 디즈니랜드에서는 아예 입장권이 곧 자유이용권이다. 여러 가격 전략을 오랫동안 시도한 결과, 놀이공원의 가격 전략은 사용료를 낮추고 입장료를 높게 받는 강한 이부가격제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폴라로이드, 사용료를 높이다

이중가격제를 채택하기 좋은 시장은 소비자가 동질적인 시장이다. 똑같은 가격을 제시했는데 어떤 소비자는 놀이기구를 한 번만 타는 반면 어떤 소비자는 100번 타겠다고 나선다면, 이들에게 동일한 입장료를 매기기는 어렵다. 섣불리 이부가격제를 도입했다가는 한쪽 소비자는 놓치기 쉽다. 놀이공원이 입장료를 자꾸 높이는 이유는, 놀이공원을 방문하는 소비자의 소비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놀이기구 사용료를 높이거나 낮춰도 한번 놀이공원을 방문한 사람이 기구를 타는 횟수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부가격제가 휴대전화나 놀이기구처럼 서비스 산업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즉석식 사진기로 유명했던 폴라로이드는 이부가격제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중요한 사례다. 폴라로이드의 사진기 값은 일종의 입장료이고, 필름 값은 사용료다. 폴라로이드는 처음부터 사진기 값을 높여 이익을 남기고 필름을 싸게 팔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사진기를 싸게 팔고 필름에서 이익을 남길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필름에서 남기기로 결정했다. 놀이공원의 입장료와 반대로, 즉석사진기 사용자들의 성향은 매우 다양했던 것이다.

설명되지 않은 중요한 전제 하나. 기업이 독점력이 클수록 이부가격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폴라로이드와 전기·수도와 놀이공원과 휴대전화는 모두 독과점 성격이 짙은 산업이다. 즉석사진기를 사려면 폴라로이드를 떠올려야 했고,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서자면 대안이 별로 없다. 자꾸만 되새겨봐도, 기본요금이 더 높은 옵션으로 바꾸라는 휴대전화 회사의 전화가 그다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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