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삶과경제) 다양성과 생산성

HERI 2011. 06. 27
조회수 5202
2008-09-17 

처음 유학길에 올랐을 때 이야기다. 내가 속했던 경영대학원의 엠비에이 과정에서는 대부분의 수업을 팀별 프로젝트 수행 형식으로 진행했다. 팀 동료에 따라 성적과 졸업 여부가 좌우될 수 있었다. 
학교에서 강제로 배정해 준 여섯 명의 팀 동료는 그 배경이 정말 다양했다. 미 해군 장교이며 미식축구광인, 당연히 매우 보수적인 팀원이 있는가 하면, 스페인 바스크 지방 출신의 사회주의자 컨설턴트도 있었다. 바이오 벤처기업에서 일하던 과학도가 있는가 하면, 정당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팀 동료도 있었다. 서로 도무지 대화가 이어지지 않던 첫 팀 회의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순간, 그대로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과연 이들과 어울려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 쪽에서는 일부러 서로 다른 사람들을 같은 팀에 배치했다고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경영을 배울 수 있다는 취지도 알게 됐다. 학교 쪽 생각이 옳았다. 결국 나의 팀 동료들은 졸업 뒤에도 문제에 부닥쳤을 때 연락할 수 있는, 국적과 가치를 초월한 국제 네트워크가 됐다. 

추석 직전 문을 연 ‘사회적 기업가 엠비에이(MBA)’라는 이름의 경영교육 과정에서 나는 일종의 데자뷔(기시감)를 경험했다. 30여명의 수강생은 놀라울 만큼 다양했다. 평생 농민이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만 힘을 쏟던 농민운동가도 있었다. 대학병원의 경영을 맡고 있는 의료경영 전문가도 있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의 중견사원이나, 중소기업 경영자, 변리사와 노무사 같은 전문직도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을 해보려 한다는 점뿐이다. 

과거 같으면 전혀 만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법한 사람들이 모여, 한 학기 동안 경영이론 강의도 듣고 경영사례를 놓고 토론하기도 하며 사업 아이디어를 개발한다. 군인과 사회주의자, 과학도와 정치전문가가 팀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외국의 엠비에이 과정과 꼭 닮았다. 다양한 가치가 어울려야 성공할 수 있다는 시대의 흐름을 국내외에서 확인한 셈이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일류대학을 나오고, 전문 자격증이 있고, 시험 성적이 좋다고 해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점점 더 많아진다.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짜내는 아이디어는 한계가 있다. 전혀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내놓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진다. 다양한 경험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모일수록 조직이 활용할 수 있는 문제해결 도구가 늘어나는 셈이다. 

미국 미시간대 스콧 페이지 교수는 최근 낸 <다름: 다양성은 어떻게 더 나은 집단, 기업, 학교, 사회를 창조하는가>라는 책에서 이를 통계학적으로 입증했다. 페이지 교수는 다양성이 높은 뉴욕 같은 도시가 생산성이 높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사가 포진한 이사회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리며, 직원의 배경이 다양한 기업이 더 혁신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국내에서도 다양성은 경영의 주요 테마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 경영도 영리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사회책임 경영이 화두다. 자연스레 사회적 가치를 이해하는 임직원이 필요하다. 한편 비영리조직도 효율성을 높이려면 경영전문가가 나서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고용 다양성을 높이려는 적극적 고용개선 조처가 펼쳐지는가 하면, 대학 입시에 소수자 배려 규정을 넣기도 한다. 모두 다양성을 높이려는 노력이다.

우리가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올바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성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다양성이 생산성으로 연결되는 사회가 오고 있다. 


이원재/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1970년대 본고사 그 ‘어둠의 역사’

2009-04-21 “음악시간에는 수학책 가져가야” “수학시험 어려워 평균 10~20점” “우열반 위화감으로 싸움 나기도” “과외 못 받으면 등수 한참 밀려” 결국 80년 7월30일 본고사 퇴출 <script></script> » 현재 일부 대학이 부활...

  • HERI
  • 2011.06.27
  • 조회수 11419

배당금 잔치는 끝났다…미 삭감기업 5배 늘어

2009-04-21 S&P 분석…미 현금확보 비상 주주몫 잇단 축소 단기실적 치중 병폐따라 장기경영 전환 움직임 류이근 기자 <script></script> » 미국 기업 배당 추이 ‘주주 자본주의’의 퇴색과 함께 배당의 황금시대도 저물고...

  • HERI
  • 2011.06.27
  • 조회수 6389

[삶과경제] ‘MBA 2.0’이 필요하다

2009-04-21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전세계의 각종 비영리 사업을 위해 제가 조달해 준 자금이 지금까지 2억5천만달러(약 4천억원)쯤 됩니다.” 최근 영국에서 열린 스콜세계포럼에서 만난 조지 오버홀저는 비영리 자금조달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689

[삶과경제] 불황과 기부

2008-11-12 스타벅스의 실적이 추락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서늘해졌다. 이 다국적 커피 브랜드의 최근 분기 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0분의 1도 되지 않는 주당 1센트로 떨어졌고, 뉴욕증시 상장주식의 가격은 연일 하락세를 보...

  • HERI
  • 2011.06.27
  • 조회수 5836

[삶과경제] 기업이 왜 다른 기업을 돕나요?

2008-12-10 어느 대기업 중견 간부를 만났다. 마주 앉아 경제 걱정을 한참 하던 중, 그는 뜻밖의 의문을 던졌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난한 사람이 더 가난해지는 것은 맞다. 그래서 사회공헌활동 예산은 어려울 때 더 늘려야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801

도보 여행, 컴포트 푸드, 빅3의 귀환

2009-01-04 [한겨레] [매거진 esc] 여행에서 엔터테인먼트까지, 2009년에 꼭 알아야 할 esc 트렌드 열쇠말 100을 읽는다 | 여행 | 1 도보 여행 올해 여행의 화두는 걷기가 될 것 같다. 유럽발 ‘카미노 데 산티아고...

  • HERI
  • 2011.06.27
  • 조회수 6677

짜릿하다 첫경험, 궁금하다 트렌드 3

2009-01-03 [한겨레] [매거진 esc] 신년특집 한복여행단 고! 격투기 출전 큐! 괜찮아, 잘 될거야♬ 2009년 50인이 꿈 꾸는 첫경험 “계획을 지우자! 이기적이 되자!” 가능하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머리를 텅 비우는 해...

  • HERI
  • 2011.06.27
  • 조회수 5294

[삶과경제] 글로벌 금융위기와 용산 참사

2009-02-04 철거민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는 용산의 한 옥상에 진입작전을 지시한 지휘관은 그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법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과 직업의식 이외에, 혹시라도 대형 참사가 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했을...

  • HERI
  • 2011.06.27
  • 조회수 5354

“신자유주의 자식들”↔“보이지않는 저항”

2009-02-24 한겨레 시민포럼]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 김경락 기자 <script></script> » ‘2009 희망 만들기 한겨레 시민 포럼’이 열린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가운데)씨가 ‘빈곤의 덫의 복귀, ...

  • HERI
  • 2011.06.27
  • 조회수 4917

[삶과경제] 스타벅스 구조조정이 슬픈 이유

2009-03-04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2008년 4분기에 1억2천만달러(약 18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기업이 있다.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해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면서, 시장 참여자 모두가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229

잭 웰치 “주주가치 집착…어리석었다”

2009-03-13 자신이 창시한 주주가치 원칙 부정 비용 줄이려 구조조정에 치중 단기실적·시장만능주의 반성 류이근 기자 » 잭 웰치 GE회장. 이종근기자잭 웰치(74)는 1981년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자가 된 직후 미국 뉴욕시 피에...

  • HERI
  • 2011.06.27
  • 조회수 5732

낯선 외국 조직과 10분만에 파트너십 이루기

2009-04-01 ‘파트너십’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습니다. 영리와 비영리간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비슷한 미션을 가진 사회적기업이나 NPO끼리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등 많은 이야기를 듣지요. 하지만 어떤 목적에서든, 처음 만난 사람...

  • HERI
  • 2011.06.27
  • 조회수 5201

“세계 경제권력 시민사회로 이동중”

2009-04-01 영국서 열린 ‘스콜세계포럼’을 가다 이원재 기자 <script></script> » 스콜세계포럼에서는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모여 경제위기 이후의 권력 이동 전망을 논의했다. 맨 왼쪽부터 레이 수아레즈 미국 기자, 캘라시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704

[삶과 경제] 새해 경제 열쇳말 '착한경제'

2008-12-31 이번 송년 모임의 화제는 모두 암울하기만 했다. 도대체 이 경제의 향방이 가늠되지 않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주류였다. 불황의 끝이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경제는 결국 다시 기지개를 켤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258

[삶과 경제] 글로벌 금융위기와 금융참사

2009-02-04 철거민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는 용산의 한 옥상에 진입작전을 지시한 지휘관은 그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법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과 직업의식 이외에, 혹시라도 대형 참사가 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 HERI
  • 2011.06.27
  • 조회수 4433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

2009-02-24 “신자유주의 자식들”↔“보이지않는 저항” [한겨레 시민포럼] 청년실업과 88만원 세대 김경락 기자 <script></script> » ‘2009 희망 만들기 한겨레 시민 포럼’이 열린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88만원 세대>의 저...

  • HERI
  • 2011.06.27
  • 조회수 6199

'황제 경영'은 정말 바뀔 것인가

2008-07-24 [한겨레21] ‘황제 경영’은 정말 바뀔 것인가 전문 경영인 체제 확립·개별 기업 독자성 실현해야…이재용 전무 복귀에 관심 집중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회실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199

좋은 일 하고 돈도 버는 창업 없을까

2007-12-02 ‘노리단'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의 문화예술분야 창업팀 중 하나인 뮤직퍼포먼스그룹이다. 2004년 6월에 만들어진 이 팀은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업폐자재, 생활용품 등을 이용해 스스로 만든 악기를 ...

  • HERI
  • 2011.06.27
  • 조회수 4552

사람냄새 나는 돈이 세상을 바꾼다

2007-05-14 요즘 대학가에 ‘착한 돈 바람’이 불고 있다. ‘정치 구호’가 사그라든 대학가에 경제 쪽 관심은 날로 새롭다.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이들은 전사회적으로 몰아치는 신자유주의적...

  • HERI
  • 2011.06.27
  • 조회수 5455

[나라살림가족살림] 사회적 기업과 경영능력

2008-04-30 7년 전, 이철종 대표이사의 꿈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취업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사람도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했다. 그래서 직접 나서서 일자리를 만들기로...

  • HERI
  • 2011.06.27
  • 조회수 5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