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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의 산업혁신 톺아보기]

금융권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금융권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자본주의는 스피드를 추구한다

“스피드가 힘이다”, “빠름은 강함을 이긴다.”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나오는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신체적 조건이 열악한 선수가 빠른 발 등을 활용하여 상대방을 농락하며 움직임을 제압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통쾌감을 느끼며 속도의 중요성을 확인하게 된다. 스피드의 강조는 단지 스포츠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전쟁과 같이 상대방과 대결을 하거나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상대방보다 더 빠름은 항상 강조되고 있다. 물론 경제에 있어서, 특히 상대방과 경쟁하며 수익을 획득하는 경영과 금융투자에서 빠름은 남들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는 데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경영이나 금융투자에서 스피드의 전략이 똑같은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 경영의 경우에는 생산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기술을 개발하여 주어진 시간에 상대방보다 상품을 더 많이 생산을 하거나 상대방보다 빠른 시간에 신상품을 개발하여 이익을 취한다.

반면 금융 투자자의 경우에는 시장에서 발생하는 불균형 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빠름을 활용한다. 동일한 상품 및 투자자산의 시장별 가격 차이나 아직 공적으로 전파되지 않은 투자 관련 정보 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경쟁자보다 빨리 시장에 참여하여 그 차이나 불균형이 사라지기 전에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속도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결국 기업 경영에서는 균형적 시장에 불균형(기술적 격차 등)을 만들어 특별이윤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속도를 중요시 하는 반면, 투자자는 시장이 불균형에서 균형으로 가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스피드를 강조하는 것이다. 전자가 시장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능동적, 도전적 또는 혁신적 기업가(innovative entrepreneur)의 방식이라면 후자는 만들어지는 상황 변화에서 발생하는 빈 틈을 활용하는 수동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치고 빠지는 금융이 기업의 미래를 망친다.

경제발전에 스피드의 두 가지 접근 방식이 모두 기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혁신적 전략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수동적 전략 역시 시장의 불균형을 빠르게 해결해줌으로써 경제의 안정화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금융 투자자적 빠름의 전술이 짧음으로 이어지고, 단기적 투자가 경영으로까지 빠르게 침투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투자자들은 시장의 변동성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변동성이 시장의 균열 및 투자의 기회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시장 상황이 빠르게 변동하면 투자결정을 빠르게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개별 투자의 기간은 단축된다. 그 결과 짧은 시간 내에 수익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는 투자전략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결국 스피드의 전략이 단기실적 극대화 전략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투자방식이 금융시장에서 단기적 쏠림 현상을 만들며 시장의 변동폭 및 불안정성을 확대시켜 단기 투자에 대한 의존성을 더 높이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시장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금융시장의 발전으로 기업의 금융화(financialization), 즉 금융 이해의 기업경영 반영도가 높아짐에 따라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금융의 속성이 기업으로 전이되고 있다.

영미권을 중심으로 발전한 주주자본주의는 기업의 경영목표를 주주 이익의 극대화로 삼고 있다. 결국 주주, 즉 투자자가 불확실한 미래의 큰 수익보다 안정적인 단기적 수익을 요구하면 그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은 불확실성이 높은 미래를 위한 투자에 비용을 지출하기보다는 투자자의 현재의 수익률을 높이는 데 경영의 목표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OECD 국가 기업들의 금융화 수준과 장기 기술혁신 투자간 관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금융화 수준이 높을수록 혁신을 위한 투자가 축소되고 단기실적에 치중한다는 사실은 확인되고 있다.

국내 기업 배당률 상승, 벤처캐피털의 단기화 등 단기실적 중심 경향 확대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들의 단기실적주의의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로 사용되는 것이 기업의 배당률과 투자자산의 분포이다. 배당률은 당행 연도의 이익 중 주식 투자자가 가져가는 부분으로 배당률이 높아질수록 현재의 투자자는 이익을 보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재원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업의 경우 2008년까지 배당을 실시한 기업의 비중이 65% 수준이었으나 2018년에는 72%로 증가하였고 배당률 역시 2008년 25%에서 2018년에는 30%에 육박했다. 이러한 수치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 대비 낮은 수준이나 상승하는 추세는 뚜렷하다.

상장기업 배당률 추이. 자료: 국회예산정책처(2019)
상장기업 배당률 추이. 자료: 국회예산정책처(2019)

기업의 투자자산이 얼마나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가를 자산의 구성으로 보면, 국내 기업의 고정자산 대비 금융자산 투자 비중은 2006년 5.3%에서 20015년에는 27%로 급증하였고, 제조업 기업들의 총설비투자에서 부동산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12%에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한 2014~16년 사이에는 21~26%대로 급등하였다. 자금이 미래를 위한 R&D에 투여되기보다는 단기적으로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자산에 투자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기업의 단기이익 추구가 무조건 기업경영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래를 위한 투자 없이 기업 성장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거의 불문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금융투자의 단기화는 기존 기업들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창업 기업에 대한 투자의 과정에서도 나오고 있다. 창업 기업에 대한 투자는 위험도가 높아 일반적인 금융보다는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벤처캐피털이 투자하는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창업활성화를 위한 벤처캐피털 산업육성 정책으로 벤처캐피털의 규모가 2014년 1.6조원에서 2019년에는 4조원을 돌파하며 급성장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벤처캐피털의 경우 평균 투자기간이 2013년 8.1년에서 2019년에는 6.6년으로 짧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른 투자금융보다 장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선진국(10년)보다 매우 짧은 수준이다. 특히, 국내 벤처캐피털은 창업기업이 평균적으로 수익을 내는 시점인 4년차부터 투자해 이후 7년(IPO가 이루어지는 시점) 정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벤처캐피털에 요구되는 역할인 수익이 나기 이전까지 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해주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금융의 단기실적주의가 기업의 투자 및 성장을 촉진시키는 본래의 목적을 방기하게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벤처펀드 평균 존속기간. 자료: 은행권청년창업재단, 한국성장금융(2020)
벤처펀드 평균 존속기간. 자료: 은행권청년창업재단, 한국성장금융(2020)

국가가 나서서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을 공급해야 기업 성장 유지

문제는 금융투자자의 이러한 단기이익추구적 행위를 비난할 수는 있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투자를 보장하는 자본주의에서 법적인 차원에서 금지하거나 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나의 방식은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들에게 장기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보조금 또는 세금혜택을 주어도 미래의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유인책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국가가 시장 변동성에 반응하지 않고 단기적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 인내적 자본(patient capital)으로 직접 나서는 방식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정부가 시장에, 특히 금융시장에 개입하는 것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시장 실패의 영역에 대한 개입이다. 합리적인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가 거시경제적으로 나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많은 정부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금융시장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인내자본적 역할을 더 부가하자는 것이다.

정부 시장개입의 정당성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정책의 수단과 방법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조성한 모태펀드의 활용을 주장하고 있으나 민간자본과 공동으로 출자된 형태인 펀드가 정책적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일단 정부가 전적으로 투자 위험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정책금융기관이나 국부펀드와 같은 공공펀드를 인내자본의 공급자로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정부 역시 단기실적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눈앞에 나타나는 결과에 초심이 흔들리지 않기는 개인이나 조직이나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우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산업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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