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미래포럼 기획] 1부 한국형 불평등을 말한다
⑤ 복지국가의 열쇠

여론조사서 드러난 복지의식의 균열

저학력·보수일수록 불평등 인식 낮지만
생활에선 힘든 일 더 많이 겪는 ‘역설’
좋은 사회에 대한 학습 적은 탓인 듯
“가난·해고 등을 빨갱이 때문이라 여길 수도”

학력·소득·계급 따른 차이 일관성 없어
조직화 방법 등에 따라 복지정치 변화 가능성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을 국가가 보장하는 복지국가는, 인류가 빈곤이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려고 이용하는 해법 가운데 최상으로 꼽힌다. 이런 복지국가로 나아갈 것이냐 말 것이냐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정치적 결정에 달려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일반적으로 복지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학력, 소득, 계급 등에 따른 차이가 일관되지 않은 것으로 오랫동안 분석돼왔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에 맡겨 전국 성인 800명을 상대로 6~7일 실시한 복지 의식 관련 전화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무선전화 80%, 유선전화 20%. 신뢰 수준 95%에서 표본오차 ±3.46%포인트).

그렇다면 “객관적 삶의 상태와 사회정치적 의식이 ‘계급정치’로 선명히 연결되지 않고, 복잡한 관계”(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에 놓여 있는 한국엔 복지국가로 변모할 가능성이 없는 것일까? 이번 조사 결과를 신진욱 교수와 함께 분석했다.

■ ‘불평등도가 높다’와 ‘불평등 때문에 힘들다’의 차이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의 불평등도가 높다’고 여기는 사람과 ‘불평등한 구조 때문에 힘들다’고 여기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적인 불평등 정도는 0점(전혀 불평등하지 않다)에서 10점(매우 불평등하다)으로 볼 때 6.34점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중간 수준보다 더 불평등하다(6점 이상)고 답한 사람이 10명 가운데 6명 가까운 58.9%나 돼, 불평등도가 높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았다. 불평등도가 높다는 인식은 학력이 높을수록 더 높아져, 고졸 이하는 48.1%였지만 2년제 대학 졸업 이하는 62.4%, 4년제 대학 졸업 이하는 63%였고, 대학원 재학 이상은 72%에 이르렀다. 정치의식으로 보면, 자신이 보수(54%)나 중도(57%)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진보(64.7%)라는 사람 중에 불평등이 심하다는 답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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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불평등한 구조 때문에 힘들다고 느끼냐’는 질문에선 이런 경향이 뒤집혔다. 고졸 이하(82.6%)에서 ‘힘들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2년제 대학 졸업 이하(72.9%), 4년제 대학 졸업 이하(64.1%), 대학원 재학 이상(61.3%)으로 갈수록 힘들다는 이가 적었다. 또 진보(65.5%)보다는 보수(73.3%)와 중도(73.5)에서 ‘힘들다’는 이가 많았다. ‘한국의 복지 수준이 어떻다고 보느냐’는 질문에서도 ‘낮다’는 의견이 고졸 이하는 45.8%, 대학원 재학 이상은 34.7%였다.

상대적으로 불평등이 심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 그로 인한 고통을 오히려 더 많이 느끼는 것은 역설적이다. 이는 객관적으로 한국 사회가 불평등하다고 판단하는 것과 삶에서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불평등이 다를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학력이 낮고 보수적인 사람일수록 ‘좋은 사회는 이래야 한다’는 학습을 적게 했을 가능성이 커,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인식이 낮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집단은 학력이 높고 진보적인 사람보다 저소득·저자산층이 많아 실제 생활은 힘들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신진욱 교수는 “하층계급이 직접 경험하는 현실은 가난, 해고, 질병, 불안, 모욕감 같은 것이지 ‘불평등’이 아니다. 그런 현실은 ‘빨갱이’ 때문이라거나 대통령 때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며 이들이 개인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이 곧 불평등이라고 여기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 비일관성과 균열…열린 가능성 ‘불평등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과 ‘힘들지 않다’는 사람 중엔 ‘한국의 복지 수준이 높다’는 응답이 각각 51.7%와 56.2%로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복지 수준이 높다’는 사람과 ‘낮다’는 사람 사이에도 ‘불평등 때문에 힘들다’는 답변 비율(각각 69.1%, 72.9%)에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는 ‘복지 확대를 위한 세금 인상이 불필요하다’는 사람의 72.9%, ‘복지 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없다’는 사람의 77.6%도 불평등 때문에 힘들다고 답했다.

‘복지 확대로 삶이 좋아질 것이냐’에서도 ‘불평등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66.8%)과 ‘힘들지 않다’는 사람(67.4%)의 답변이 비슷했다. 이 질문엔 ‘불평등에 국가 책임이 있다’는 이(67.5%)와 ‘없다’는 이(62%), ‘한국의 복지 수준이 높다’는 이(65.6%)와 ‘낮다’는 이(68.6%)의 응답도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서로 충돌하고 일관성 없어 보이는 답변과 관련해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여유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흥미로운 진단을 내린 바 있다. 이들은 ‘한국인의 복지 태도: 비계급성과 비일관성 문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한국에서 복지는 “선택 가능한 대안, 구체적 정치세력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구도가 아니라, 막연하고 추상적인 재분배 문제로 원자화된 개개인한테 던져지는 구도”라고 분석했다. 불평등과 복지의 문제를 정치·사회구조의 문제로 연결하지도, 정치를 통해 풀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다시 확인된 이런 비일관성은 복지정치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균열’, 즉 사회 전체의 변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대립구도가 매우 복잡함을 보여준다. 뒤집어 말하면 정당이나 시민정치세력이 이 대립구도를 어떻게 조직화하느냐에 따라 정치가 변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얘기다. 실제 사례도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야당은 시민사회의 무상급식 의제를 적극적으로 받아안아 당시 여당과 대립구도를 형성했고, 그 결과 당 지지율에서 크게 앞서던 여당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신진욱 교수는 “한국에서 진보적 복지정치의 균열 구조는 고등교육을 받은 중간계급, 계급의식이 싹트고 있는 하층계급 일부, 계급배반적 고령층, 그리고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초고소득·초고자산층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현실 위에서 어떻게 ‘최대다수의 복지동맹’을 만들어 확장할 것이며, 지속가능한 복지동맹으로 공고화할 것인가를 깊이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