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6-08-23
기존 브랜드 이름을 철저히 감춘 블랙&데커의 ‘작전명 서든 임팩트’…‘디월트’ 공구는 기술자 시장을 파고든 독립 브랜드 전략의 결과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서브 브랜드(sub-brand)

독립 브랜드(independent brand)

더운 여름에 가구를 사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배달된 조립식 가구에 딸려온 수많은 수나사와 암나사들은 쳐다보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듯했다 결국 전동 드라이버를 사기로 했다. 그때, 인터넷 쇼핑몰마다 접속해 전동 드라이버를 찾다가 만난 브랜드가 디월트(DeWalt)였다.

디월트는 쇼핑몰마다 전동 드라이버 목록에서 가장 값비싼 물건을 내놓고 있었다. 이 브랜드가 붙었다 하면 중국산보다 열 배도 더 비싸, 20만원을 훌쩍 넘기기가 일쑤였다.


△ 블랙&데커는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브랜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기술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디월트’라는 새브랜드를 만들었다. 노란색으로 꾸며진 디월트 홈페이지.

그저 궁금증에서 자료를 찾던 나는 디월트가 생활가전으로 유명한 미국 회사 블랙&데커의 자회사에서 나오는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득 미국 유학시절 블랙&데커의 무선청소기를 12달러(약 1만2천원)에 구입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1만2천원짜리 전기청소기와 20만원짜리 드라이버라, 뭔가 속은 느낌이었다.

기술자들의 자존심을 위하여

왜 블랙&데커는 전동공구를 만들면서, 자기 회사 제품이라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디월트’라는 브랜드로 포장했을까? 왜 ‘블랙&데커’를 그냥 쓰거나 ‘블랙&데커 공구’ 같은 ‘서브 브랜드’(sub-brand)를 쓰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기존 브랜드의 인지도나 영향력이 새로운 제품으로 쉽게 이전됐을 텐데 말이다.

사실 블랙&데커의 미국 내 브랜드파워는 대단했다. 미국 조사기관인 랜더 어소시에이츠 분석에 따르면, 블랙&데커는 1990년 미국 7위 브랜드파워를 자랑했다. 코카콜라, 월트디즈니, 펩시콜라, 코닥, NBC, 켈로그, 맥도널드, 허시 초콜릿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브랜드였다.

이 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 전동공구 및 전기 잔디깎기 생산업체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무선청소기, 다리미, 토스터 같은 소형 생활가전 제품에서도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블랙&데커가 이렇게 강력한 브랜드를 버리고 ‘독립 브랜드’(independent brand)를 통해 전동 드라이버를 팔기 시작한 데에는 전략적 이유가 있었다. 이야기는 1992년 시작된 ‘작전명 서든 임팩트’라는 프로젝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연히 새로운 제품을 만들 때면 기존 블랙&데커 브랜드를 붙여서 파는 것이 정석이었다. 회사는 그런 식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런데 단 한 군데, 고가 전동공구 부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품질은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두 인정했다. 바로 브랜드 전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전동공구 시장은 크게 세 개로 나뉘어 있었다. 기업시장, 소비자시장, 그리고 자영 기술자 시장이었다. 기술력을 인정하는 기업 고객이나, 블랙&데커 브랜드에 친숙한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는 걱정이 없었다.

문제는 공구통을 들고 다니면서 직접 소비자를 방문해 수리해주는 자영업 기술자 시장이었다. 세 부문 가운데 가장 빨리 성장하던 이 시장에서 블랙&데커는 시장점유율 10%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부문에서 최고 45%까지 점유하고 있는 블랙&데커가 유독 여기서만은 헤매고 있었다. 최고의 품질과 브랜드의 힘을 갖추고도 바닥을 기는 시장점유율.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프로젝트가 ‘작전명 서든 임팩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벌인 자영 기술자 현장 인터뷰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블랙&데커는 좋은 회사지. 우리 마누라도 거기서 나온 청소기 정말 좋아해. 하지만 내가 공구를 사는 건 ‘폼나게’ 일하기 위해서인데….” “사람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공구를 주목하죠. 내가 갑자기 청소기 상표가 붙은 드릴을 꺼내면 다들 비웃을걸요.”

자영 기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품질도 인지도 높은 브랜드도 아니었다. 자존심이었다. 자기들의 고객이나 동료 기술자들에게 뭔가 전문적임을 뽐낼 수 있는 이미지였다. 블랙&데커 브랜드는 거기에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모두가 다 아는 브랜드이니, 그리고 ‘청소기나’ 만드는 브랜드이니 말이다. 기술자들은 자기가 작업에 사용하는 전동 드릴 상표가 청소기와 같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상황 파악이 되고 나서 ‘작전명 서든 임팩트’는 새로운 브랜드 ‘디월트’ 출범 전략으로 구체화됐다. 기존 브랜드명을 감추기 위해 아예 그 사업 부문을 분사했다. 새 브랜드는 눈에 잘 띄는 노란색으로 디자인했다. 80년간 지켜온 진회색과 정반대 이미지였다. 광고는 대중매체 대신 전문 기술매체에만 했다.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를 탄생시킨 것이다.

한 곳에서의 강점이 다른 곳에서는 약점

그러고서야 성공이 찾아왔다. 1991년 8%에 그쳤던 블랙&데커의 자영업 기술자 시장 점유율은 1994년 40%까지 뛰어올랐다. 직장생활에서의 강점이 가족생활의 약점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경영에서도 한 시장에서 구축된 이미지가 다른 시장에서는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독립 브랜드 전략이 등장한다. 블랙&데커가 자기 이름을 숨기는 마케팅 전략을 펼칠 수밖에 없던 이유도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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