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6-01-11
택시 과잉공급을 불러온 대리운전 성업은 ‘대체재 관계’로 설명 가능
한 시장에서 경쟁하는 다른 상품들을 파악하는 것이 ‘시장 획정’의 기본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한국에 처음 도착한 외국인 친구를 싣고 서울의 밤거리를 운전했다. 휘황찬란한 야경과 밤늦도록 북적거리는 거리에 감탄하던 그 친구는 문득 물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들 뭘 하느라 밤늦도록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거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만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들어가는 거다. 친구는 되물었다. 그러면, 다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한다는 뜻인가? 그 친구는 대한민국의 신성장 업종인, 대리운전을 몰랐다.

수요 대체성과 공급 대체성

친구의 무지는 당연했다. 잠깐 외국 생활을 하고 돌아온 나조차도 처음엔 그 문화가 생소했으니 말이다. 예전 대리운전은 나 같은 월급쟁이에게는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 사치재였다. 그러나 귀국 뒤 한국 풍경 중 가장 먼저 눈에 띈 변화 중 하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몰고 술을 마시러 가서는 태연하게 대리운전을 불러대는 친구들의 행동이었다. 대리운전은 이제 생필품이 됐다.

여기에 맞먹을 정도로 눈에 띄는 변화를 한 가지 더 꼽자면, 그건 밤늦도록 지하철 역이나 버스정류장 근처에 죽 늘어서 있는 빈 택시의 행렬이다. 체감지수로 볼 때 택시시장은 분명히 공급과잉 상태로 접어들었다.

몇 번의 관찰 뒤 내가 내린 결론은, 동떨어져 보이는 이 두 가지 현상, 대리운전 성업과 택시 과잉공급 사이에는 아주 명료한 경제학적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대체재(substitute goods) 관계다. 이 두 가지 제품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어, 한 제품의 가격이 내려가거나 품질이 개선되면 다른 제품의 수요가 줄어들게 된다는 얘기다.

경영학 중 경쟁이론에서 제품 사이의 대체성(substitutability) 분석은 중요한 이슈다. 이 개념을 통해서만 시장 획정(market definition)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만들어 팔려는 제품이 어떤 시장에서 어느 제품들과 경쟁하게 될지를 파악하는 과정에 필수적인 분석인 것이다. 누구와 경쟁하게 될지를 알아야 가격과 생산량을 정하고 마케팅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대체성에는 수요 대체성(demand substitutability)과 공급 대체성(supply substitutability)의 두 가지가 있다. 경영학에서는 두 개 이상의 제품 사이에 이 두 가지 대체성 중 하나가 매우 높을 때 그들이 같은 시장에 속해 있는 경쟁 제품이라고 일컫는다.


△ 대리운전과 택시의 경쟁은 애초부터 택시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게임이다. 한 승용차의 유리창에 꽂힌 대리운전 광고 전단.. (사진/ 류우종 기자)

수요 대체성은 특정한 제품에 대한 수요자가 다른 제품의 수요자와 겹치는 경우에 높아진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역 부근의 음료시장에서 커피와 녹차 사이의 수요 대체성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커피 공급자의 사정으로 그 지역 커피 가격이 일제히 오른다면 강남역 근처에서 만난 사람들은 커피 소비를 줄이고 녹차 소비를 늘릴 것이다.

공급 대체성은 특정 제품의 공급자가 겹치는 경우에 높아진다. 예를 들어 항공사의 서울~부산 노선과 서울~광주 노선 사이에는 공급 대체성이 높다. 외부 요인 때문에 서울~부산 노선의 가격이 높아지면, 항공사들은 서울~광주 노선에 투입되던 항공기들을 바로 빼내 서울~부산 노선을 늘릴 것이다. 이 경우 서울~부산 노선과 서울~광주 노선은, 소비자에게는 전혀 별개의 서비스지만 기업한테는 같은 시장에 속해 있는 경쟁 제품이 된다.

시장 획정은 특히 반독점 관련 소송이나 행정 조처에서 중요하다. 한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지 여부는 시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맥주시장의 강자 하이트맥주가 소주시장의 강자 진로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독과점 논란에서도, 시장 획정이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맥주와 소주가 ‘술’이라는 같은 시장에 속해 있다면 하이트의 진로 인수는 특정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법적 규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다른 시장에 속해 있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체성에 대한 판단 문제다.

대리운전과 택시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분명히 두 산업 사이에는 대체성, 특히 수요 대체성이 높다. 그런데 이건 택시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게임이다.

택시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게임

택시는 중앙 및 지방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하는 규제 산업이다. 택시 대수와 요금, 즉 택시 산업에서의 생산량과 가격은 일률적으로 규제된다. 브랜드 택시가 나온 일도 있지만 곧 사라졌다. 이렇게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는 전략적 선택의 여지가 없어 차별화가 성공할 수 없다. 그런데 대리운전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조차 명확하지 않다. 가격 책정도 생산량도 멋대로다. 급기야 전국적으로 광고를 하는 브랜드 대리운전도 성업하고 있지 않은가. 택시의 수익성 악화와 대리운전의 부상은 경영학적 필연이다.

좁은 국토와 많은 인구로 고생하는 대한민국의 정부는, 그동안 국민들의 승용차 사용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려고 무던히 노력해왔다. 버스와 지하철에 막대한 세금을 투입했고 휘발유에 엄청난 세금을 매겼고 10부제 실시도 해봤다. 그러나 지금, 대리운전 성업 사태로 마이카 시대는 그 절정에 다다랐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처음부터 택시를 집중적으로 키웠다면 어땠을까?

이주의 용어
시장 획정(market definition)
대체성(substitut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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