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7-02-15
소득 증가에 따라 제품이 극단적으로 다양해지는 극차별화 현상…소비자의 평가가 엇갈리는 제품에서 발생, ‘안티’를 두려워말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timelast@hani.co.kr

이주의 용어

극차별화(hyperdifferentiation)
공명 마케팅(resonance marketing)

본디 모든 커피는 같았다. ‘다방 커피’였다. 커피 두 숟가락, 설탕 한 숟가락, 프림 두 숟가락에 약간의 뜨거운 물을 넣고 휘휘 저으면 그게 커피의 표준이 됐다.

지금 모든 커피는 다르다. 자바, 콜롬비아, 모카, 에스프레소, 라테, 캐러멜 마키야토…. 듣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종류도 많다.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이제 커피의 표준은 없다.


△ 커피는 대표적으로 극차별화가 진행된 상품이다. 다방 커피에서 헤아리기도 힘든 다양한 제품으로 진화한 원인은 무엇보다 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이다.(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수평적 차별화와 수직적 차별화

커피라는 제품에 벌어진 현상을 경영학자들은 ‘극차별화’(hyperdifferenti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제품이 차별화되다 못해, 극단적으로 다양해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제품이 소비자 개개인의 기호에 가장 가깝도록 바뀌어가는 모양을 뜻한다.

농산물 시장은 대표적으로 극차별화가 시작되는 곳이다. 커피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지만, 다른 농산물도 조금씩 커피의 차별화 과정을 닮아가는 모양새다.

과거에는 사과도 배추도 한 종류만 갖다놓았지만, 요즘은 원산지별로 국산이다, 중국산이다, 타이산이다 하는 식으로 다른 제품들을 갖다놓는다. 여기다 유기농이다 친환경이다 하는 고급 카테고리도 만들어져, 다양성은 더욱 커진다. 같은 제품도 재배 방법에 따라 가격 차이가 꽤 난다.

서비스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일반우편과 등기우편, 속달우편 세 가지밖에 없던 우편 서비스를 보라. 일반우편, 빠른등기, 일반등기, 익일배송, 택배, 오토바이 퀵서비스, 트럭 퀵서비스 등 배송 수단이 아주 다양해졌다.

극차별화의 원인은 무엇보다 소득의 증가에서 찾을 수 있다. 소득 증가는 두 가지 효과를 갖는다. 공급 측면에서는 소비 규모가 커지면서 다양한 제품 공급이 가능한 기반이 갖춰지고, 수요 측면에서는 소비자 기호 자체가 다양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수요 측면은 간단히 설명된다. 사람이 소득이 늘더라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의 절대량이 크게 늘지는 않는다. 따라서 여윳돈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일정 수준 이상 늘어난 소득 증가분은 상당 부분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비에 사용되기 마련이다.

공급 측면은 좀더 복잡하다. 경제 전체로 봤을 때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커진다. 그러면 시장 규모가 커진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 시장 규모가 작을 때는 생존할 수 없던 틈새상품들이 생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다 쓰는 일반적 제품의 경우, 시장 규모가 작아도 어떻게든 시장에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시장의 소수가 좋아하는 기호품이나 마니아 제품들, 즉 틈새상품은 그렇지 않다. 시장 규모가 작으면 아예 생존하기 어렵다. 제품 하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최소 규모 시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 수요가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임계수준’을 넘어서기 전까지는 기업이 그 제품을 생산할 유인이 아예 없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유기농 농산물을 보자. 과거에도 부자는 있었으니, 유기농 농산물을 먹을 만한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유기농 농가나 전문 슈퍼마켓은 아예 발을 붙이지 못했다. 유기농 농산물을 더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할 의사가 있는 소비자군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 소비자들은 다른 소비자들처럼 값싼 일반 농산물을 먹어야만 했다. 아예 생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전체 소득이 늘어나면서, 유기농 농산물 수요가 임계치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소수이겠지만, 그래도 유기농 농가가 먹고살 수 있을 만한 수요를 창출하게 된 것이다. 일단 생산자가 생기고 나니, 시장이 점점 더 속도를 받아 팽창하면서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극차별화 안에서도 종류가 있다. 수직적 차별화와 수평적 차별화로 나뉜다. 수직적 차별화는 한 제품이 고급과 대중 제품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앞서 든 유기농 농산물이 대표적 사례다. 기존 농산물이 그대로 있는 가운데, 더 비싸고 품질 좋은 유기농 농산물이 새로 나온 경우다. 품질이 상하로 나뉘기 때문에 수직적 차별화라고 한다.

수평적 차별화는 품질이 좋고 나쁜 게 아니라, 단지 제품 성격이 달라지면서 분화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커피가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커피’로 알고 있던 제품이 이제는 아라비카 커피다, 콜롬비아 커피다, 자바 커피다, 모카다 하는 식으로 분화된다. 이들은 품질이 좋고 나쁘거나 가격이 높고 낮은 것은 아니고, 그저 다양화되는 것이다.

미적지근한 다수 대신 마니아층을

극차별화가 진행되는 제품은, 일반적으로 소비자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리는 제품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에릭 클레먼스 교수가 내놓은 결론이다.

클레먼스 교수팀은 업소에서 직접 만드는 수제 맥주(craft beer) 시장을 연구했다. 미국에서 맥주는 극차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제품이라 연구 대상으로 선정됐다.

연구팀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소비자 제품 리뷰를 조사했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수제 맥주의 경우, 특정 맥주에 대한 평가가 평균적으로 좋으냐 나쁘냐는 매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맥주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수록, 즉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양쪽이 모두 많을수록 그 맥주의 매출이 늘어났다.

극차별화가 진행되는 시장에서는, ‘안티’ 팬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대신 ‘마니아’층을 형성하라. 미적지근한 다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열광적인 소수가 제품을 먹여 살린다. 소수의 강한 만족에 소구하라. 이게 극차별화 시대의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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