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7-02-02
주5일 시대에 전문직 퇴근 시간이 점점 더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소비자가 정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서비스의 가치를 입증하려면 힘들어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timelast@hani.co.kr

이주의 용어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

일요일 오후면 습관적으로 가벼운 절망에 빠져든다. 꿀맛 같은 이틀 동안의 휴식이 벌써 끝물에 다다랐다는 냉혹한 현실 탓이다. 시곗바늘이 움직이면서 깊어만 가는 절망을, 이렇게 위로해보기도 한다. “일주일에 6일 일하던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쉬었는데 뭘.”

잘 나가는 사람들의 불쌍한 인생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서 주 5일 근무제는 정말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토요일부터 쉬기로 한 회사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사실 법적으로 주 5일 근무제가 도입된 때, 더 구체적으로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어든 때는 2004년 7월이다. 그런데 불과 2년 반이 지난 지금, 이제 토요일에 출근해야 해서 모임에 못 나간다고 말하면 친구들은 모두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어쩌다 그렇게 뒤떨어진 회사에 다니냐’는 눈빛을 함께 보내면서 말이다.


△ 변호사니 회계사니 하는, 잘나간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야근과 주말 출근을 자주 하는 사람들이다. 밤늦도록 불빛이 꺼지지 않는 서울의 한 빌딩. (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토요일 출근은 분명 비정상적인 일이 됐다. 금요일 오후가 되면, 다들 주말에 어떻게 휴식을 취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지 고민하고 있는 게 정상적인 사무실 풍경이다. 사실 이런 흐름은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관찰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일이 다 끝나고도 직장 상사가 언제 퇴근하나 눈치를 살피는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과거처럼 눈치 보지 않고 저녁 약속이 있다고 말하면서 제시간에 퇴근하는 신세대 직장인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흐름에도 예외가 있다. 이른바 ‘전문가’라고 불리는, 주위의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라. 펀드매니저니, 변호사니, 회계사니, 컨설턴트니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퇴근 시간이 점점 더 늦어지는 듯하다. 주말도 없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돈은 많이 벌지 몰라도, 어쩐지 불쌍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주 40시간 근무라는 법 조문이 쑥스러울 정도로, 이들은 주말 출근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 이들에게는 긴 근무시간 이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모두 지식 서비스 업종에 종사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긴 근무시간에는 이유가 있다. 지식 노동자와 고용주, 또는 지식 소비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이 그것이다.

어떤 물건은 소비자가 정보를 거의 정확히 알 수 있다. 컴퓨터 같은 것이 그렇다. CPU는 인텔 것인지 AMD 것인지, 메모리는 어떤 게 들어가는지, 하드디스크 용량은 얼마인지, 그건 어느 회사에서 각각 만든 것인지, 이런 정보가 정확히 나와 있고 이를 통해 품질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이때 정보는 대칭적이다.

그러나 중고차를 생각해보자.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사고가 났던 차인지 아닌지, 이 차의 전 주인이 차량 정비를 잘 했는지 안 했는지 알기가 어렵다. 파는 사람만이 그 정보를 안다. 여기서 정보 비대칭성이 생긴다.

지식 노동에서도 정보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컨설턴트에게 경영컨설팅을 받고 나서 그 가치를 입증하려면, 몇 년에 걸쳐 지루한 실행과 평가를 반복해야만 한다. 게다가 몇 년이 지난 뒤 기업과 시장 상황은 이미 처음의 경영컨설팅 결과가 나왔을 때와는 딴판이 되기가 쉽다. 물론 컨설턴트 본인은 자신이 고안한 경영 전략이 고객 기업에 어느 정도 가치가 있을지를 잘 알 수 있다. 문제는 입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컨설턴트는 고객에게 자기 지식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신호를 보내려 한다. 그중 대표적인 신호가 바로 야근과 주말 근무다. 컨설턴트가 고객사 담당자보다 늘 늦게 퇴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늦게 일하기 경쟁, 루즈-루즈 게임

따지고 보면 단순 업무를 제외한 사무직 노동 전반이 그렇다. 블루칼라 노동의 결과물은 생산 라인에서 제품으로 쏟아져나오기 때문에 불량률을 점검해 평가할 수 있지만, 지식 노동은 단기적으로 그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식 노동자는 본능적으로 노동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한 장치를 고안해낸다. 이런 경제학적 배경과 한국적 문화가 겹쳐져, 근무시간은 지식 노동자가 자기 지식의 가치가 높다는 것을 입증하려 고용주나 소비자에게 보내는 중요한 신호가 됐다.

지식 노동자의 야근은 중고차 판매상의 도색 작업과 같다. 중고차의 품질을 정확히 알려주기 어렵기 때문에, 중고차 판매자는 차를 팔기 직전에 아주 깨끗이 닦고 칠을 해둔다. 어차피 정보 비대칭성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좋은 차’라는 신호를 여러 각도에서 주는 것이 중요해진다.

문제는 다른 모든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경쟁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유별나게 힘들여 일하고 늦게까지 일한다는 신호를 고객에게 보내면, 경쟁자들은 쫓아가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모두가 패자가 되는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 된다.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생산성은 떨어진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야근의 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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