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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만난 사람] ‘사회적 기업’ 흙살림 이태근 회장



» 이태근 회장이 충북 오창 흙살림 본사의 작은 텃논에 살고 있는 우렁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 회장은 2~3평의 도시텃논에 여러 종의 토종벼를 재배하는 도시텃논 보급에 나서고 있다.


흙살림의 이태근(52) 회장. 이태근과 흙살림은 한국 유기농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유기농 운동 초기인 1990년대 초반, 한국형 유기농 기술의 체계적인 개발에 나섰다. 이태근이 세운 흙살림은 처음에는 연구소로, 그리고 사단법인으로, 주식회사로,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흙을 살리자. 흙살림은 그런 뜻을 액면 그대로 담은 이름이다. 지금도 그 뜻은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 한다. 유기농을 제대로 하자면 가장 기초가 되는 흙을 살리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농민운동가로 출발한 이태근의 흙살림은 ‘민간 최초’라는 기록을 여럿 갖고 있다. 민간 최초의 친환경농산물 인증기관이고, 민간 최초로 농약 분석과 유전자조작농산물(GMO) 분석을 했고, 유기농업에 필요한 많은 유기농 자재를 개발했다. 그런 점에서 이태근은 혁신적 기업가이다. 


이태근은 한해 매출 100억원을 일으키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가이기도 하다. 농민운동과 주식회사를 결합한 성공모델이라는 점에서도 독보적이다. 최근 이태근은 농촌에서 도시로 흙살리기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도시형 유기농 텃밭과 텃논’을 만드는 운동을 시작했고, 도시의 1만 가정에 유기농산물을 배달하는 꾸러미사업의 시동을 걸었다. 쌀 과잉 타개를 위한 이태근의 소신 또한, 유기농이다. 



쌀, 어찌하오리까? 


- 쌀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요. 찜통더위 영향으로 유례없는 풍년이 예고되고 있는데, 농민들은 걱정이 앞선다고 합니다. 쌀의 구조적 공급과잉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유기농을 주장한다고 들었습니다. 


“유기농으로 가야지요. 정부는 쌀 생산을 줄이기 위해 논을 밭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밭으로 바꿔놓으면, 다시 논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쌀이 부족할 때는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쌀 재배면적을 억지로 줄이려 할 게 아니라,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을 줄이는 쪽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논에 ‘석유화학제품’을 덜 투입하는 거지요. 석유로 만든 화학비료를 덜 쓰면 그만큼 생산량이 줄어들지만, 대신 품질은 고급화됩니다. 그게 바로 유기농 쌀이잖아요. 저희들이 경험해 보니까, 유기농으로 화학비료와 농약 쓰는 관행농법의 85% 정도까지 생산량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 대신 농민들은 고품질의 쌀을 좀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는 증산을 쌀 농가의 최고 덕목으로 생각했지요. 그러다 보니 생산이 남아도는데도 쌀 생산을 계속 늘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제는 고투입-다수확 농업에서 저투입-저수확 농업, 곧 고급 유기농 생산으로 농정의 큰 줄기를 틀어가야 합니다. 쌀뿐 아니라 전체 농업과 축산까지, 그런 방향으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 유기농은 보완적인 방책이지, 기본적인 정책이 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물론 모든 농민이 전면적으로 또는 일시에 유기농으로 전환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고요. 정책의 큰 목표를 그렇게 설정하자는 뜻입니다. 그것이 농민도 살고 우리의 땅과 물도 살리는 길입니다. 한번 논에 나가보세요. 논두렁마다 풀 한포기 없이 벌겋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초제 때문입니다. 논에는 화학비료와 농약이 대량 살포됩니다. 결국, 석유 찌꺼기가 흙을 해치고, 급기야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유기농은 개방시대의 대책도 됩니다. 쌀값을 내려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하지만, 우리의 좁은 땅덩어리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격보다는 품질로 경쟁할 때, 우리 쌀 시장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할 텐데요. 


“화학비료와 농약 보조금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지금은 정부가 비용을 지원해 주니까, 농민들이 화학비료와 농약을 부담 없이 사용합니다. 여차하면 보조금을 더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지요. 정부 보조금이 석유화학 농자재의 대량투입과 쌀 과잉생산을 부추기는 셈입니다. 이제는 비료와 농약 대금을 직접 지원할 것이 아니라, 퇴비를 만드는 농민에게 보조하는 식으로 정책을 개선해야 합니다. 농민들도 정부에만 책임을 묻고 정부에 기대는 안이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과잉생산의 당사자는 농민 자신이고, 직접적 피해자 또한 농민 자신입니다. 쌀 생산이 과잉이라면, 수확량을 줄이면서 소득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고투입-다수확-생산과잉의 악순환은 그대로 둔 채, 정부가 어떻게 해결해 주겠지 또는 정부는 뭣하느냐고 탓만 하고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그래서는 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화학비료·농약으로 거둔 쌀의 공급과잉 걱정

‘고품질 저수확’ 생산으로 농정 큰 줄기 바꿔야

“정부 보조금 정책, 유기농 농가에 집중할 때” 



유기농의 기본은 흙 살리기 


- 사회적기업 흙살림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어떻게 흙 살리기 운동에 나서게 됐나요?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1984년에 충북 괴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농민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이었지요. 1991년에는 지금 흙살림의 모태라 할 수 있는 괴산미생물연구회를 세웠습니다. 농업 자체의 경쟁력을 살려야 농민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유기농과 흙 살리기에 매달렸습니다. 유기농의 기본은 흙 살리기입니다. 살아있는 흙에 농사를 짓는 것이 바로 유기농이지요. 그전까지 우리 유기농은 그런 기본에 충실하지 않았습니다. 유기 농자재도 모두 일제 수입품이었습니다. 우리 흙을 살리고, 거기에 필요한 미생물과 농자재, 그리고 농법을 개발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1993년에는 괴산미생물연구회의 이름을 아예 흙살림연구소로 바꾸었습니다.” 


- 이제 흙살림은 대표적인 사회적기업이면서 성공적인 농촌형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농민운동가에서 기업가로 변신하는 과정이 궁금하네요. 


“제가 주식회사 대표이기는 하지만 기업가라고 하기는 좀 그렇네요. 주식회사 흙살림을 세운 것은 2000년이었습니다. 농민운동 형태로 사업을 계속 끌고가는 데 한계가 보이더군요. 현장 농민과 젊은 과학자들이 개발한 퇴비와 미생물 따위의 유기농자재를 본격적으로 보급하자니, 기업이라는 틀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농민운동을 계속하는 사단법인 흙살림과 유기농자재 개발·판매사업을 하는 주식회사 흙살림으로, 조직을 나누었습니다. 유기농자재 사업은 그때부터 순풍을 탔고, 흙살림은 해마다 적잖은 이익을 창출했습니다. 지금은 직원이 60명이고 올해 매출은 100억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 흙살림의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무엇이고, 사회적기업으로 끌고가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가장 소중한 자산은 역시 농민이지요. 저희들은 처음부터 생산농가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유기농자재를 개발할 때도 현장 농민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기에, 우리 땅에 가장 잘 맞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흙살림의 친환경 인증을 받은 1900여 농가를 포함해, 전체 1만이 넘는 회원 농가는 흙살림 사업의 가장 큰 밑천입니다. 최근에 시작한 꾸러미 사업도 두어 달 만에 300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했는데, 회원농가에서 입소문을 내준 덕분이지요. 또하나, 인적 네트워크를 들 수 있겠습니다. 흙살림이 독보적인 유기농자재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연구자들과 직접 생산하는 농민들이 잘 협력했던 덕분입니다. 가장 어려운 점도 역시 사람입니다. 체계적으로 사람을 훈련시키는 우리의 역량이 부족하고, 그나마 좀 훈련시켜 놓으면 쉽게 떠나버리곤 합니다.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낮은 급여 문제를 극복하는, 그런 좋은 일터를 만드는 것이 큰 숙제입니다.” 



농촌 흙살림 운동 20년, 이젠 도시로 눈돌려

텃밭 유행인데 더 중요한 건 ‘도시텃논’ 보급

“아파트 옥상·마당의 논이 도시 열섬 줄여줘” 



도시에 텃논을 만들어보자 


- 최근에는 도시텃논 만들기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농촌 흙살림 운동을 했는데, 앞으로 20년은 도시 흙살림 운동을 할 생각입니다. 도시텃밭 만들기가 유행인데, 사실은 도시텃논 보급이 더 중요한 사업입니다. 도시 빈공간에 2~3평에서 10평짜리 정도의 논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아파트 놀이터 한쪽 공간에도, 도시 건물의 옥상에도 논을 만드는 겁니다. 도시의 작은 텃논은 곳곳에 물을 가두고, 빗물을 저장하는 구실을 합니다. 도시의 뜨거운 열섬화에 대응하는 좋은 방책이 되지요. 그리고 논에는 미꾸라지와 우렁이를 키우도록 합니다. 원래 논은 쌀 창고만이 아니라 단백질 창고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논에서 단백질원을 얻었지요. 농약 때문에 그런 생태계가 다 무너진 겁니다. 토종벼를 여러 종 심어놓으면, 꽃필 무렵에 화원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제각기 검은색, 흰색, 빨간색을 자랑하고, 키도 다르고 꽃피는 시기도 모두 다릅니다. 사람들은 논에서 자연스럽게 농업과 생태계의 중요성을 배우고, 심성도 저절로 좋아질 겁니다. 또 생명이 다양하다는 사실도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지금 논의 벼가 다 비슷한 것은, 키 크고 힘센 놈만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산업화·획일화 시대의 유산이지요. 내년 봄에는 도시텃논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한포기 모를 나눠주는 캠페인을 한겨레와 함께 벌여볼까요?(웃음)” 


- 유기농산물을 가정으로 직접 배달하는 꾸러미 사업에 뛰어들었는데요. 새로 시장을 개척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1만여 회원농가의 판로를 열어주는 것이 저희 흙살림의 핵심 과제입니다. 생산농가의 판로를 열어주기 위해서라도 유통에 뛰어들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저희들이 갖고 있는 3만3000㎡의 직영농장이 꾸러미 사업의 큰 밑천이 되고 있습니다. 매주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게 상품 구색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직영 농장에서 일하는 15명의 농민에게는 월 100여만원 정도의 급여가 지급됩니다. 지금은 노동부의 지원을 많이 받지만, 이제는 정부 지원이 끊어져도 꾸러미 사업의 수입으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시의 꾸러미 회원을 1만가구까지 늘린다는 큰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농민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의 관계가 깊어져야 합니다. 소비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가 선택한 농산물을 믿고 먹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해야 하는 거지요. 그때쯤이면 유기농에도 새바람이 불 것입니다.” 



중소농을 살려야 농업이 산다 


- 농업이 미래산업이라고 다들 구호 외치듯 합니다. 지금의 농업정책에 대해 쓴소리 한마디 보탠다면? 


“농업을 워낙 우습게 보는 세상이 됐습니다. 농업이 각광받는 시대의 기운은 열리고 있지만, 농업 내부의 내발성이 약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삼성 같은 대기업이 농업을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고, 결국 농업 내부의 자발성과 자생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농민이 스스로 생산하고 가공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겠지요. 기업에만 유리하고 농민의 직접가공이 어렵게 돼 있는 식품산업의 규제부터 풀어야 합니다. 농민들이 자기 농산물을 직접 가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요. 미국도 일본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중소농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인터뷰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 이태근 회장이 매주 도시의 가정으로 직배달하는 흙살림의 유기농산물꾸러미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한겨레경제연 이원재 소장이 말하는 이태근 회장

배우고 연구하는 농촌기업가

그를 처음 마주쳤을 때, 그는 학생이었다. 이태근 회장은 2008년 한겨레경제연구소가 연 ‘HERI 사회적기업가 MBA’ 교육과정의 수강생이었다. 그래서 이 회장을 처음 본 장소는 강의실이었다.

그는 열심히 필기를 하면서 경영, 경제, 사회적기업 관련 강의를 듣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나는 기업 경영에 필요한 미시경제학 강의를 네 시간 동안 진행했고, 그는 네 시간 내내 매우 신기한 이야기를 듣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0주간의 교육기간 동안 그 태도는 이어졌다.

교육 첫날 있었던 자기소개 시간에 그는 교육 참가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동안 농업에 관련된 분을 많이 만났는데, 이제 다른 분야 사람도 좀 만나고 상상력도 좀 키워 보려고 합니다.’ 그러고는 전혀 다른 지역, 전혀 다른 분야 분들과 어울리면서 신사업을 개척해 나갔다.

그를 그다음 마주쳤을 때, 그는 한 세미나장의 강연자였다. 짤막한 강연을 통해, 이 회장은 자신이 어떻게 농민운동을 시작했고, 그 운동이 어떻게 연구개발로 이어졌고, 그 연구개발이 어떻게 사회적기업 흙살림으로 이어졌는지를 풀어놓았다.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인 사업 이야기였다. 사회운동가가 그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사회적기업가로 변신하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연구 거리이기도 했다. 그는 백전노장 농민운동가였지만, 강의실에서는 성실한 학생이었고, 세미나에서는 훌륭한 발표자였다. 그리고 이제는 ‘HERI 사회적기업가 MBA가 나를 기업가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회적기업가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마음은 흙 속에, 농민의 삶 속에 있는 것 같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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