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사회공헌도 민생 현장 속으로

HERI 2011. 06. 27
조회수 6815
2009-12-10
기업들, 단순 기부 넘어 소외된 이들의 필요에 맞춘 활동에 주력

기업이 이윤 추구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가 기업 사회공헌 활동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은 지난해 1월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창조적 자본주의를 제안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실은 기고문에서도 “자본주의는 그동안 수십억 명의 인생을 도와줬다. 그러나 아직도 수십억 명이 뒤처져 있고 그들은 빈곤과 질병에 허덕이고 있다. 그들만의 힘으로는 너무 오래 걸리는 작업인 만큼 기업의 참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사회공헌정보센터, 전국경제연합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민국 사회공헌 대축제’가 2008년 10월1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가운데, 어린이들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사진 한겨레 신소영 기자

장애인·다문화가정 등 약자 배려

빌 게이츠 전 회장이 창조적 자본주의를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사회보장 시스템으로는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려운 만큼 기업이 나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자는 것이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냉혹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친절하고 따뜻한 자본주의가 돼야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 때문에 창조적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미래’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도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창조적 자본주의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기업들이 있다. 이들은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있다. 기부를 통한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사회공헌을 뛰어넘어 지속적으로 소외된 사람을 보듬어주는 사회공헌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꿈은 6개월 뒤 작은 노래 공연을 여는 것이다. 23명. ‘아이소리앙상블’ 합창단원들이다. ‘작은 공연을 여는 게 뭐 어렵겠냐’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들은 모두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13살 미만의 청각장애인이다. 인공와우는 청각장애인의 달팽이관에 인공적으로 삽입한 보조공학기구로, 전기신호로 소리를 인지하도록 돕는 장치다. 듣고 말하는 게 가능하면 노래도 역시 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인공와우 기술 수준은 음성 인식에 제한돼, 노래 소리 등 상대적으로 음역이 넓은 부분까지 인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청각장애인의 음악 활동은 클라리넷·피아노 등 악기를 이용한 연주 활동에 국한돼왔다.

“공연을 성공한다면 기적이라고 봐야 할 거예요. 청각장애가 있는 아동이 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노래에 도전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여겼거든요.”(최은경 파라다이스복지재단 복지사업팀 팀장)

아이들을 돕고 있는 단체는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이사장 윤성태)이다. 파라다이스그룹이 1994년 설립한 이 재단은 그동안 장애인 교육과 복지 향상에 특화된 활동을 펼쳐왔다. 재단은 지난 4월 참가자를 공모해 5월 합창단을 꾸렸다. 아이들은 올해 12월까지 주 1회씩 가창력 개발을 위한 기초 학습, 음악 재활 연습, 노래 연습 등을 한다. 연말에 발표회를 여는 게 목표다. 최은경 팀장은 “참가자 중 엄마 없이 아버지·할머니와 사는 다섯 살배기 여자아이의 경우 얼마나 노래를 하고 싶었는지 시각장애인인 할머니가 직접 찾아와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효성그룹도 장애인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효성중공업 임직원들은 2007년부터 매달 한 차례 정신지체 장애인 시설인 정문학교 학생들과 놀이동산·한옥마을·수족관 등을 찾는다. 혼자선 움직이기 불편한 장애인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활동의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지난 4월에는 정문학교 학생들과 함께 국립과천과학관의 다윈전을 관람하며 과학 체험도 했다.

기업들은 우리나라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나름의 기여를 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교육 불평등, 고령화 문제 등에서 활발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섬마을 아이들 위해 원어민 영어교실 운영

» 맨 위부터 포스코 사회봉사단원들이 주거여건이 좋지 않은 태국 촌부리 지역에서 ‘사랑의 집짓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예스24가 수도권 보다 문화 접근이 떨어지는 지방 사람들을 위해 ‘책 읽는 강의실’이란 전국 투어 강연회를 진행하고 있다. 파라다이스복지재단이 청각장애 어린이 합창단 ‘아이소리앙상블’을 창단하고 ‘작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 맨 위부터 포스코·예스24·파라다이스복지재단 제공

지난 7월29일 경남 진해에 사는 이아무개씨는 새집을 얻었다. STX복지재단이 그를 위해 집을 지어준 것이다. 이씨는 정신지체로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다, 9년 전 한 종교단체의 주선으로 필리핀 이주여성 빅토리아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현재 아내는 갑상선 질환으로 거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부에겐 두 자녀가 있다. STX복지재단은 이씨의 쓰러질 것 같았던 옛집을 허문 뒤 터 면적 192㎡¸ 건축면적 71.85㎡ 규모의 새집을 지어주었다. 아이들을 위해 컴퓨터가 설치된 공부방도 꾸미고, 거동이 불편한 부인의 동선을 고려한 주방과 욕실도 마련했다. 이는 STX복지재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나눔의 집’ 사업으로 가능했다. 이 프로그램은 정부나 지원단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소외계층을 위한 주거환경을 개선해주고 있다. 2007년 4월 경남 진해 서중동의 조손 가정을 시작으로 진해에 4채, 마산에 2채의 새집을 지어 소외계층과 장애인 부부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해왔다.

섬마을 아이들은 영어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물론 교재도 얻기 힘들었다. GS칼텍스는 도시에 견줘 교육환경이 열악한 섬 지역 학생들의 교육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전남 여수의 섬 지역 어린이를 대상으로 원어민 영어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2007년부터 3년째 진행해오면서 지역 주민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외국인의 왕래가 육지보다 적은 섬마을 어린이들에게 원어민 영어교실은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한편, 외국 문화를 접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석이조로 평가받는다. 지난 3월 개강한 2009년 원어민 영어교실은 여수 남면·화정면·삼산면 등 3개 도서 지역 22개 초·중·고교(11개 분교 포함) 학생 362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CJ그룹도 CJ나눔재단의 교육사업인 ‘도너스캠프’를 통해 교육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도너스캠프는 지역아동센터·공부방·지방 분교 등의 선생님들이 홈페이지에 현장에서 필요한 교육 제안서를 올리면 기부자가 직접 제안서를 선택해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CJ나눔재단은 기부자의 기부금과 동일한 금액을 더해 기부를 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고령화 문제에 주목하고 노인요양 시설을 세우는 데 애쓰고 있다. 하나금융은 지난 3월 금융권 최초로 경기 남양주 수동면에 노인 전문 요양시설인 ‘남양주 하나케어센터’를 세웠다. 하나케어센터는 지상 3층 연건평 1200여 평으로, 100여 명의 노인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규모다. 현대자동차 계열 건설사 엠코도 매월 셋쨋주 토요일이면 양로원과 독거 노인을 찾아가 청소, 목욕 봉사, 나들이, 생신잔치 등 사회공헌 활동을 벌인다.

세계 수십억 인구는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현지에선 시장도 정부도 이들을 돌볼 능력이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국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이처럼 힘든 다른 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LS전선은 지난 8월 국제 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와 함께 인도 남부 무두말라이 지역에 12일 일정으로 대학생 봉사단인 ‘마음’ 20명을 보냈다. 무두말라이에선 임산물 채취가 자연보호의 이름으로 금지돼, 주민 대부분이 하루 소득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한다. 마음 봉사단은 보카푸람 초등학교 학생 200여 명을 대상으로 미술·음악·체육 등을 가르쳤다. 또 코끼리 같은 야생동물을 막기 위한 담장 설치, 학교 시설 보수 등의 활동을 했다.

‘착한 초콜릿’으로 공정무역 알리기

인터넷서점 예스24는 제3세계에서 노동 착취로 만들어진 상품이 아닌,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고 생산한 상품을 사용하자는 ‘공정무역’ 캠페인을 벌였다.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를 생산하는 아프리카 농장의 어린이 노동자들을 취재한 <한겨레21> 745호 ‘초콜릿은 천국의 맛이겠죠’가 보도된 뒤, 예스24는 ‘밸런타인데이엔 착한 초콜릿!’이라는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했다. 예스24 홈페이지에서 <한겨레21> 관련 기사와 사진을 보고, 이를 담아간 블로그·카페 주소와 함께 소감을 올리면 포인트를 주는 식이다. 공정무역 초콜릿에 대해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회원들의 반응과 뜻깊은 행사에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격려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환경과 문화 부문에서도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활발하다. 금호건설은 8월29~30일 이틀에 걸쳐 서울 홍제동 ‘개미마을’에 테마별 벽화거리 ‘빛 그린 어울림 마을 1호’를 탄생시켰다. 이번 벽화마을 프로젝트는 낙후된 지역 공간(주택)을 아름다운 벽화거리로 바꾸기 위해 민·관·학을 연계한 활동이었다. 추계예술대 등 5개 대학 140여 명의 미술전공 학생들이 자원봉사자로 참가했다. 현대건설도 ‘창덕궁 지킴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월 2회씩 임직원들이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창덕궁 내부를 청소한다. 창덕궁의 대조전·옥류천·신선원전 등을 돌며 먼지 쌓인 마루를 닦고 잡초를 뽑는 일이다.

최근 기업 사회공헌 활동의 또 하나의 흐름은 기업 특성에 맞고 그 기업이 잘하는 분야를 선택해 집중하는 것이다. 다른 기업이 하는 것을 덩달아 따라하는 안이한 생각에서 벗어나, 사회공헌 활동 역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중소기업 고객이 많은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과 관련한 사회공헌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기업은행은 기은복지재단을 통해 중소기업 직원 가족 251명에게 치료비 12억원을 후원해왔으며, 그 밖에 중소기업 직원 장학금 9억원, 중소기업 발전을 위한 학술연구 7억원 등 2006년 이후 총 28억원을 후원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 7월 난치성 질환 등 중증 질환을 앓는 중소기업 직원 가족 37명에게 치료비 2억3천만원을 전달했다.

기업 특성 살린 사회공헌 아이디어도

현대증권은 사회공헌 활동이 단발성 후원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전국의 지점망을 활용한다. 지방자치단체 소개로 선정한 대상자 70여 명을 각 지점과 자매결연을 맺어주는 것이다. 해당 지점이 이들에게 매월 생활자금을 지원한다. 자매결연을 통한 사회공헌은 지난해 충남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났을 때 빛을 발했다. 태안 지역 인근의 서부지역본부가 후원해 임직원들의 자원봉사를 주도했고, 각 지점들도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신한카드는 2005년부터 국내 금융권 최초의 기부 전용 카드인 ‘아름다운 카드’를 출시한 뒤 국내 금융권 최초의 기부 전용 사이트 ‘아름人’(arumin.co.kr)도 열며 소액 기부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결과 올 6월 말 현재 고객 모금 누적 금액이 24억원에 이르렀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회적 기업’

복지 보완하고 일자리 만드는 새로운 사회공헌 활동

기업의 사회공헌은 변화·발전하고 있다. 과거 사회공헌 활동은 전시성 이벤트 성격이 강했다.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고아원·양로원 방문, 수익의 일부분 기부 등 소극적인 측면이 도드라졌다. 하지만 요즘 기업의 사회공헌에서는 더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프로그램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기업들도 사회공헌을 과거처럼 사회적 이슈를 돌파하기 위한 일시적 방편이나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데서 벗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일자리를 만들고 일감을 주는 사회공헌 활동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회와 고객을 떠난 기업은 결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기업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나눔 문화 활성화를 위한 사회적 기업의 확대와 육성을 준비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기업 스스로 어떻게 사회와 조화롭게 살아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지난 8월24일 노동부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공동 주최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과 사회적 기업 구상’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대기업이나 전경련이 사회공헌과 사회적 기업에 적극적이지 않다. 기업의 사회적 공헌과 사회적 기업 육성은 반자본주의적·반시장적 개념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약자에게 복지 서비스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공익적 목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을 말한다. 시장의 원리로 사회적 가치를 이루려는 새로운 시도다. 기업의 최대 목적이 이윤 극대화인 반면, 사회적 기업은 사회 서비스 제공이나 취약계층의 일자리 만들기 등이 주목적이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사회공헌이라는 점에서 기부와 차이를 드러낸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오는 2012년까지 사회적 기업을 통해 일자리 1천 개를 만들기로 했다. 일단 부산 지역의 대표적 사회적 기업인 ‘사단법인 안심생활’의 지점망 확대와 사업 다각화를 도와 800여 개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안심생활은 노인과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차량 이동, 전문 케어, 방문 요양·간호 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현대·기아차는 2012년까지 울산·창원 등 그룹의 사업장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안심생활의 지점망 20개를 새로 설치해 일자리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는 사회적 기업 두 곳을 추가로 발굴해 200~300개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포스코는 직접 사회적 기업을 만들기로 했다. 내년까지 포항·광양·경인 지역에 3개의 사회적 기업을 세우기로 했다. 일단 오는 11월 광양제철소의 신설 공장 외주회사를 설립하고, 12월엔 포항에 스틸하우스 제작·시공 회사를 만든다. 내년 3월엔 경기도에 글로벌 연구개발센터 관리회사도 설립할 계획이다. 이들 기업은 소외계층 등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수익을 남길 경우 일자리를 더 늘리는 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SK는 2011년까지 사회적 기업 지원을 위해 500억원 규모의 기금 조성을 검토하고 있다. 또 그룹 차원의 사회적 기업 지원을 위해 관계사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사회적 기업이 거둔 수익은 재투자를 통해 일자리 만들기 등에 쓰이도록 할 방침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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