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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태일이 꿈꾸던 ‘노동가치’ 인정하는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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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장충동 사회적기업 ‘참신나는 옷’ 매장에서 사회적기업 탐방단이 지난 6일 전순옥 대표(앞줄 가운데)와 이야기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YeSS 최주희씨, 신지혜씨, 함께일하는재단 이고운 컨설턴트, 앞줄 왼쪽부터 참여성노동복지터 오순애 이사, 전대표, ERISS 안치용 소장. 김문석기자


노동집약적 수출산업이 번성하던 1960년대 서울 동대문 인근 창신동.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이른바 ‘공순이’ ‘시다’들이 휴일도 없이 하루 16시간씩 일하던 곳이다. 동대문 고가도로에서 혹시라도 공장 내부가 들여다 보일까봐 창문은 검게 가려진 채 늘 꼭 닫혀 있었다. 백열등 조명 아래에서의 긴 중노동을 마치고 공장문을 나서면 여공들은 싱싱한 나이임에도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여공애사’는 이제 흘러간 과거지사일까. 그러나 아직도 창신동에는 그때의 여공들이 남아있다. MK패션산업발전협회에 따르면 동대문 지역 패션산업 종사자는 27만명에 이르며, 3만여개의 봉제공장 가운데 70%는 사업자 등록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감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옷 한 벌당 받는 공임은 1980년대에 비해 거의 오르지 않았으며 일부 품목에서는 오히려 하락했다. 여전히 여공들은 하루 14시간씩 일하고 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통상 옷 한 벌 만드는 공임은 재단과 봉제를 합쳐 4000~5000원. 공장주가 주문을 받아오면 이 공임을 미싱사와 공장주가 나누고, 미싱사는 또 조수(시다)와 나누기 때문에 미싱사나 ‘시다’가 옷 한벌 만들고 손에 쥐는 돈은 대략 1000원 정도다. 창신동의 시계는 오래전부터 멈춰 있는 것이다.

서울 창신동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장충동. 그곳에도 여공들이 있다. 그러나 창신동 여성 봉제노동자들과는 판이한 노동환경과 대우를 받는다. 의류를 생산하는 사회적기업 ‘참신나는 옷’ 직원들이다. ‘참신나는 옷’은 노동환경과 임금체계에서 ‘탈 창신동’을 선언하고 실천한 것으로 유명하다. 동시에 대표이사가 한국 노동운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분신한 청계피복노동자 전태일의 동생 전순옥씨인 것으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전태일의 여동생이 대표이사로 있는 의류회사”라는 몇마디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설명된다. 물론 이 같은 후광과 명료함은 전숙옥 대표에게 소중한 자산이지만 더불어 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나아가 도약을 위해 벗어던져야 할 과거일 수도 있다.

전 대표가 영국에서 노동사회학과 사회적기업에 관해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귀국한 게 2001년. 그러나 창신동은 변한 게 없었다. 오빠가 몸을 던져가며 부르짖은 모범업체를 창신동에서는 찾기 힘들었다. 모범업체라는 게 별 게 아니다. 적정 수준의 생계가 가능한 임금과 건강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노동환경을 보장하는 업체. 소박한 요구라고 믿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노동현장으로 곧 바로 복귀해 2003년 ‘참여성노동복지터’를 설립했고 여성 봉제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일했다. 모범업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아예 봉제분야 사회적기업을 만들기로 계획하고 2007년 1월 설립준비에 착수했다. 그해 10월부터 미싱을 돌렸고 2008년 12월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이제 본격적으로 오빠와 그리고 자신이 평생 소망한 모범 봉제업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참신나는 옷’은 주 40시간의 노동시간을 지킨다. 일하는 사람들은 동종업계 평균을 넘는 대우를 받는다. ‘참신나는 옷’에서 책정한 공임은 생산품 판매가격의 20%로 ‘창신동’과는 공임체계가 다르다. ‘후려치는’ 방식으로 옷 한 벌 당 4000~5000원으로 순수 공임만 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임을 최종상품의 판매가격과 연동하도록 한 것이다. 거창하게 설명하면 이 같은 방식은 최종 상품과 노동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

이곳 노동자들은 일한 만큼의 공임을 받기 때문에 일감에 따라서 벌이가 달라져야 하지만 지금은 130만~200만원의 월급을 받아간다. 사업초기라 일감이 부족해 적정한 수입을 올리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이다. 이후 회사가 정상화하면 기본 월급에 ‘판매가의 20%’인 추가 공임수입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곳의 ‘제자’(참신나는 옷에서 ‘시다’를 부르는 말)의 벌이가 창신동 공장에서 주 72시간 근무하는 미싱사의 월급과 비슷한 수준이다. 노동환경을 쾌적하게 만드는 것도 필수다. 건물 입구를 통유리로 마감했고, 작업장에는 큰 유리창을 설치해 채광과 통풍이 잘 되도록 했다. 직원들은 4대 보험에 가입되고 퇴직금을 보장받는다. 동대문 봉제 노동자의 4대 보험 가입률은 10%선에 불과하다.

‘참신나는 옷’은 전 대표가 상임대표를 맡고 있는 사단법인 참여성노동복지터의 기술교육부서 ‘수다공방’과 협력관계를 유지한다. ‘수다공방’은 한마디로 미싱사를 교육하는 곳이다. 생업으로 미싱을 돌리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술수준에 따라 과정을 나눠 주 1~2회씩 최소 4개월의 교육과정을 진행한다. ‘수다공방’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은 ‘참신나는 옷’에서 수습과정을 밟거나 아예 정규직 미싱사로 일자리를 얻는다. 

‘참신나는 옷’과 ‘수다공방’의 ‘모범정신’이 알려지면서 젊은이들도 몰려들고 있다. 현재 수다공방에서 봉제 교육을 받고 있는 송모씨(25)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단기 인턴 자리를 전전했다. 결국 일이 하고 싶어서 ‘수다공방’을 찾았다. 수다공방 초보 과정을 밟고 있는 19명 중 7명이 20대 여성이다. 송씨는 “동대문 공장 이미지가 고착돼 있어 사람들이 봉제 일을 기피한다”며 “그러나 주 40시간 노동 및 복지후생이 보장된다면 이 직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생계를 침해하지 않고 건강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모범업체를 통해 생산된 의류가 ‘정당한 옷’이다. ‘참신나는 옷’의 ‘정당한 옷’은 판매가격에 경제비용뿐 아니라 사회·환경비용을 모두 포함했다. ‘정당한 옷’의 판매가격은 그러다 보니 ‘정당하지 못한 옷’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블라우스는 한 벌에 10만원을 넘나든다. 사실 노동의 가치를 인정한다손치더라도 어떤 소비자들에겐 다소 지갑을 열기 망설여지는 금액일 수 있다. 지금처럼 저가 상품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전 대표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정당한 옷에 대한 가치가 널리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유행하는 ‘깨끗한 옷 입기 운동’이 우리나라에도 정착된다면 ‘정당한 옷’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싸구려 옷을 충동적으로 샀다가 한두번 입고 버리거나 묵히는 대신 ‘정당한 옷’을 계획적으로 구매해 오래 입는 게 사회와 환경을 모두 살리는 소비라는 견해다.

‘참신나는 옷’은 일반 의류말고 교복·유니폼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쥐어짤 대로 쥐어짠 저가 의류시장에서와 달리 교복시장에서는 오히려 가격 경쟁력을 갖는다. 교복시장에 워낙 거품이 많기 때문이다. 기존 유명 기업의 교복 가격은 한 벌 당 25만원선. 학교·학부모회와 직접 협상해 직접 판매하면 한 벌에 15만원 정도로 ‘좋은 옷’을 납품할 수 있다. 경기 시흥·안산 쪽 소외계층 학생 중심으로 교복판매를 늘려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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