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메마른 일상 적시는 녹지와 문화

HERI 2011. 06. 27
조회수 6357

2009-04-23 [한겨레21]


[체험! 살기 좋은 대도시 ④ 도쿄]
공원 1만 개 넘고 미술관 촘촘… 보육시설·주택 공급 확대에 역점

도쿄란 도시는 매력적이다. 유럽의 도시가 이끼 낀 석조(石造)로 따뜻하다면, 도쿄는 거대한 철과 유리의 조합으로 차갑다. 그 차가움을 에도시대의 목조와 정원이 부드럽게 껴안고 있다. 깨끗하게 정리된 도쿄의 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상쾌하다. 그런 매력과는 무관한 것이 일상의 삶이다. 도쿄란 도시에서의 삶을, 서울보다 낫다고 쉽게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복잡한 지하철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 거리에서도 수없이 어깨를 부딪혀오는 바쁜 사람들. 서울과 너무도 닮은, 그러나 다른 도시 도쿄.

기자 또래의 평균적인 직장인의 삶을 엿보고 싶었다. 기자에게 대문을 열어준 이는 이토 고이치로(38)였다. 미쓰비시그룹 계열의 트럭 생산업체 사무직 노동자다.

» 우에노공원에 있는 일본 국립서양미술관 입구에 올해 2월부터 열리는 루브르 특별전 광고판이 우뚝 서 있다. 우에노공원에는 도쿄도미술관과 우에노모리미술관 등 대형 미술관만 3개가 몰려 있다. 또한 도쿄문화회관과 일본 예술원, 국립과학박물관 등도 함께 있어 공원 속에 문화공간이 밀집된 구조다. 도쿄 시민들은 100년 이상 된 우에노공원의 녹색 숲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것으로 일상의 삶을 살찌우고 있다.

서울과 너무 닮은, 그러나 다른 도시

이토의 집은 도쿄의 무사시노시 기치조지 히가시초에 있었다. 이코다테(1층 단독주택)와 니카이다테(2층 단독주택)가 처마와 처마를 맞대고 이어진 조용한 주택가였다. 이토는 미술을 전공한 부인 이토 에미(32)와의 사이에 4살 난 딸 린카와 첫돌을 갓 지난 막내 루카를 두고 있었다.

이토의 하루는 팍팍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6시30분쯤 지하철로 나선다. 회사 도착 시간은 아침 8시. 퇴근 시간은 저녁 8시. 저녁 식사는 보통 회사 식당에서 동료들과 함께 먹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밤 9시30분이다. 아이들은 보통 저녁 7시쯤 잠들기 때문에 얼굴을 볼 수는 없다. 한 시간쯤 텔레비전을 보다가 밤 11시를 전후해 잠자리에 든다. 부인 에미의 하루.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새벽 5시30분쯤 일어난다. 집안 청소를 마치고 두 딸과 먹을 도시락을 만든다.


오전 9시쯤 두 딸을 데리고 향하는 곳은 동네의 아동회관. 도쿄에는 공립 아동회관이 곳곳마다 있다.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두세 개 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갓난아기부터 청소년까지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에미는 보통 오후 3시까지 아이들과 아동회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노래, 체조, 공작, 게임 등 프로그램이 워낙 다양해 전혀 지루하지 않단다. 비용도 싸다. 집으로 돌아온 뒤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이른 저녁을 먹이고 텔레비전을 잠시 보게 하다가 저녁 7시를 전후해 재운다. 이때부터 남편이 돌아오는 2시간 정도가 유일한 자유 시간이다. 솔직히 아이들에게 ‘올인’하는 시스템이다. 적당한 보육시설이 있다면 맡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에미는 “보육시설은 정부나 시가 운영하는 국·공립시설과 민간에서 인가를 받아 하는 민간시설이 있는데, 국·공립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민간시설은 비싸고 시설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며 “보육지원 정책에서 보면 일본 정부는 0점”이라고 말했다.

동네 아동회관에 아이들 맡겨

도쿄시 정부도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다. 도쿄는 지난 2007년부터 ‘육아응원도시 도쿄’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도쿄시 복지보건국의 차세대육성지원 담당 카토 미호 부참사는 “도쿄도는 2010년까지 1만5천 명의 아동을 추가로 수용할 수 있는 보육시설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카토 부참사는 “기업체에서도 자체 탁아소를 설치할 경우 설치비용과 유지비용의 절반을 도쿄도가 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동 출생 때 지급하는 일시금도 종전의 35만엔에서 42만엔으로 올릴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아예 초등학교 취학 전 교육·보육 비용을 전면 무상화하는 정책을 검토 중이다. 집권 자민당은 소비세 인상으로 늘어난 세수 가운데 1%를 저출산 대책으로 충당한다는 구체적인 예산계획까지 마련한 상태다.

이토는 상대적으로 넉넉한 형편의 부모 덕분에 곧바로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남긴 땅에 지금의 2층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런 ‘유산’이 없는 이들에게는 장기주택대출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 이토 고이치로 가족의 다정한 모습. 주말이면 두 딸을 데리고 이노가시라공원 등 주변의 대형 공원에서 하루를 보낸다. 이토 가족을 찾은 날은 비가 온 탓에 공원에 가지는 못했다.

환상형 녹지로 도시 둘러싸

일본 전문가인 로고스커뮤니케이션의 이준재 본부장은 “도쿄 직장인들의 평균적인 주거 형태는 직장에서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 외곽 지역에 있는 방 3개의 32평형 맨션이라고 보면 된다”며 “이런 지역의 경우 보통 집값이 3천만엔에서 4천만엔 정도”라고 말했다. 상환 기간은 보통 25~35년이라고 한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야마모토 다케마사(39)는 4년 전 요코하마에 83㎡짜리 맨션을 30년 장기주택대출로 마련했다. 실구입비용 3300만엔을 상환하려면 매달 원리금 18만엔씩 갚아나가야 한다. 맞벌이라고 하지만 만만찮은 부담이다.

역시 서울과 너무도 닮은 도쿄였다. 그러나 도쿄에는 너무도 다른 탈출구가 있었다.

이토 부부는 주말이면 아이들과 집 근처의 이노가시라공원을 찾는다. 걸어서 1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공지영과 쓰지 히토나리가 함께 쓴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서 한없이 매력적으로 그렸던 그 공원이다. 집 근처에 있다고 규모를 얕봐선 안 된다. 유람선이 오가는 대형 연못과 동물원까지 갖춘 대형 공원이다. 이노가시라공원의 반대쪽으로 가면 젠부쿠지공원도 있다. 역시 20분 정도만 걸으면 된다. 젠부쿠지공원 역시 거대한 연못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주변의 소공원과 정원은 셀 수도 없을 정도라고 했다. 에미는 “주말이라고 차를 타고 멀리 갈 필요 없이 집 주변에서도 충분히 여유를 즐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도쿄의 공원 수는 깜짝 놀랄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도쿄 내의 공원은 크고 작은 것을 합쳐 모두 1만714개에 이른다. 공원 녹지 면적은 7116ha. 녹지 면적에 축구장을 짓는다면 1만 개 넘게 지을 수 있다. 서울에서 경관이 좋은 곳마다 주상복합들이 앞다퉈 들어서는 동안, 도쿄에서는 공원이 조성되고 있었다. 도쿄에서의 삶을 건강하게 받쳐주는 토대는 이렇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녹지와 공원이다.

도쿄시는 2006년부터 환경과 문화예술 인프라를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10년 후 도쿄’ 계획을 수립해 실천하고 있다. 도쿄시 환경국의 노무라 요스히로 부참사는 “도쿄만의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섬에 88ha의 대규모 녹지공원인 ‘바다의 숲’을 조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도쿄 안팎에 1천ha의 녹지와 공원을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쿄시는 환상형의 녹지로 도시 전체를 완전히 둘러싸는 구도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조성한 녹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까지 2000년의 25%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입장까지 70분’ 대기줄 늘어서

공원을 더 풍부하게 하는 것은 미술관 등 문화시설이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원조인 우에노공원. 공원 안에 국립서양미술관과 도쿄도미술관, 우에노노모리미술관 등 대형 미술관이 3개나 들어서 있다.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밀집이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역시 기타노마루공원 안에 있다.

» ‘베르메르전’이 열리고 있는 도쿄도미술관 입구. 비 오는 궂은 날씨에도 입장에만 1시간10분이 걸릴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광적일 정도인 일본의 서양미술 사랑이 느껴졌다.

이토 부부와 함께 우에노공원을 찾았다. 도쿄도미술관에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베르메르전이 열리고 있었다. 네델란드 델프트 태생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델프트를 떠난 적이 없다는 베르메르. 평생 36점의 작품밖에 남기지 않은 과작의 작가.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신비로운 미소처럼 일생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작가. 베르메르의 작품이 대부분 전시됐다는 점 때문이었을까.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은 우산으로 비를 가리며 꾸역꾸역 우에노공원을 향했다. ‘설마 미술관으로 가는 사람들일까?’ 도쿄도미술관 앞에서 경악했다. 안내원들이 ‘입장까지 70분’이라는 팻말을 들고 사람들을 관람대기줄로 유도하고 있었다. 주말에는 평균 2시간 정도 걸린다는 게 안내원의 말이었다. 유명한 곳마다 줄을 서는 것이 일본인들의 전통이라고 해도 미술관 앞에서 70분이라니. 동행한 이미경씨는 “일본에서는 주말엔 미술관에서 그림을 구경하고, 미술관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이 최고의 여가 코스로 자리잡고 있다”며 “어느 미술관이든 최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일본인들의 미술 애호는 광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인상파 그림에 몰두했다. 자신들의 판화그림(우키요에)이 19세기 유럽의 인상파 화풍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판화(<가나가와 바다의 거대한 파도>)에 감동한 고흐가 그 그림을 모사한 적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도쿄에는 정부와 도시, 그리고 기업이 만든 미술관들이 서울의 교회만큼이나 촘촘히 들어서 이런 욕구를 채워주고 있다. 아니, 이런 시스템이 더 많은 미술광들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른다.

일본 정부가 도쿄의 도심 중앙인 롯폰기에 국립신미술관을 개장한 것이 2007년 1월이다. 세계적인 건축거장 구로카와 기쇼가 설계한 국립신미술관 한가운데는 미슐랭의 별 3개를 받은 요리사 폴 보퀴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있다. 국립신미술관의 외벽은 대형 통유리들이 물결치듯 굽이쳐 있는 ‘글라스 커튼 월’(유리커튼벽)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경씨는 “주변의 일본인들을 보면 상당수가 국립신미술관이 구로카와 기쇼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미술관의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도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소비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립신미술관에서는 피카소 특집전이 열리고 있었다. 피카소 특집전 역시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롯폰기에는 또한 모리타워 52층과 53층에 들어선 모리미술관이 있다.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란 찬사를 듣는 이 미술관 역시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했다. 문화를 통한 기업의 사회적 기여라고 할까.

문화를 통한 기업의 사회적 기여

미술관의 접근도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머물고 있던 호텔 프런트에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 어디인가”라고 물어봤다. 5분 만에 미술관 약도를 인쇄해 건네준다. ‘하라미술관’. 호텔에서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고즈넉한 주택가 안쪽에 자리잡은 미술관에서는 캐나다 출신 작가의 설치미술전이 열리고 있었다. 하라미술관의 오자키 미호코는 “하라 도시오라는 기업가가 자신의 부친이 살던 집을 개조해 만든 미술관”이라며 “평일에는 보통 100명 정도, 주말에는 300명 정도가 찾는다”고 말했다. 1천엔의 입장료로는 미술관 운영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라 집안이 계속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단다. 도쿄에는 이렇게 개인들이 세운 미술관 역시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자전거 천국인가 지옥인가

사고 잦아 규제 엄격… 전용차선 시범 운용

» 비 오는 날 도쿄 도심의 인도에 쓰러진 채 방치된 자전거들. 일본의 자전거들은 보통 야외에 놓아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빨리 낡는다.
이토 에미에게 소원을 물어봤다. ‘자전거 구입’이라고 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 고이치로가 손사래를 친다. 에미는 “자전거에 아이들 둘을 태우고 움직이면 활동 가능한 공간도 넓어지고 얼마나 좋으냐”고 했다. 이토는 “위험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전거의 천국’으로 유명한 도쿄에서 자전거가 위험하다니. 지하철 입구마다 새카맣게 줄지은 자전거는 뭐란 말인가. 일본의 자전거 보유 대수는 2005년 기준으로 8600만 대(일본자전거산업진흥회 추산)에 이른다.

로고스커뮤니케이션의 이준재 본부장은 “자전거가 많다고 해서 도쿄가 자전거 천국이라는 생각은 명백한 오해”라고 잘라 말한다. 도쿄 시민들이 자전거를 애용하는 것은 비싼 대중교통 요금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이 없어 전체적으로 평탄한 도쿄의 지형은 여성도 쉽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도쿄의 도로는 비좁다. 좁은 도로 위에서 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사람들이 뒤섞이다 보니 각종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도쿄의 자전거 관련사고는 연평균 1만5천 건.

지하철역 옆에 주차된 자전거들은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바람이 불면 그대로 쓰러져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낡아진 자전거를 그대로 타다 보니, 끼익끼익하는 마찰음을 내는 자전거가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러니 일본의 자전거 관련 규제는 엄하다. 밤에 전조등을 켜지 않았다가 단속에 걸리면 벌금이 5만엔이다. 도로에서 ‘일시 정지’ 표시를 무시해도 5만엔 벌금이다. 자전거를 사면 경찰서나 자전거 전문점에서 사용자 등록을 하고 고유번호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은 ‘자전거 지옥’이란 말인가?

도쿄도 건설국의 아이바 아쓰시 안전시설과장의 답. “지난 2006년 이후부터는 자전거와 자동차, 그리고 보행자가 조화롭게 다닐 수 있는 도로 구조를 만드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도쿄시가 집중하는 정책은 자전거 전용도로 만들기. 인도 폭이 3m 이상일 경우는 인도 옆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도록 했다. 현재 772km 구간에 전용도로가 만들어졌다. 서울의 버스전용차로와 유사하게 색깔로 구분한 자전거전용차로도 지난해 3월부터 시범 운용 중이다. 그래도 아직은 자전거를 위한 전용 공간은 부족해 보인다.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천재적인 기질을 보여온 일본. 과연 자전거 안전을 위한 공간 활용에서는 어떤 새로운 해법을 내놓을까.

도쿄(일본)=글·사진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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