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9-04-23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독립영화 신기록 제조기’ 고영재 피디

»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워낭소리>의 또다른 주역이 고영재 프로듀서다. 그는 <워낭소리> 이전에도 <우리 학교>로 당시 독립영화 흥행기록을 세웠던 독립영화계 최고의 승부사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아, 이거요? 뻐드렁니예요. 신경이 죽었대요. 이번에 고치려고요. 기왕에 돈 벌었는데!”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고영재(40) 프로듀서는 까맣게 변한 이를 드러내며 멋쩍게 웃었다. <워낭소리> 흥행 수익금의 30%를 독립영화 발전을 위해 내놓겠다고 밝힌 뒤, 그는 많이 편안해진 표정이었다. 그는 “더이상 (돈을 요구하는) 이상한 전화가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낭소리>가 대성공을 거두자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돈’으로 쏠렸다. 배급 비용을 포함한 전체 제작비 2억5천만원짜리 영화가 25일 현재 45억원(관객 약 150만명 기준)의 수익을 올렸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류 영화였다면 <워낭소리> 제작자이자 투자자인 고 피디가 수익 대부분을 가져갔을 것이다. <워낭소리> 투자금은 그가 일본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일상을 3년5개월에 걸쳐 담아낸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로 번 돈의 일부와 누나한테 빌린 돈, 은행 대출금 등을 합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독립영화 기부와 제작자·감독 몫으로 각각 30%씩, 할아버지·할머니에게 10%를 드리기로 했다. <우리 학교>의 수익금도 비슷한 방식으로 나누었다. 홋카이도 조선학교와 김명준 감독, 그리고 고 피디가 3분의 1씩을 나눠 가졌다. 그는 “그동안 너무 위축됐는데, 이제 관객들에게 감사도 표시하고, 주변의 고마운 분들에게 술도 사야겠다”며 “나의 결정을 이해하고 따라준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젊은 감독들, 어디서 본듯한 작품만 만들어
메이저 영화사 낙점만 바라니 우습게 보지”

‘우리학교’서 공동체 상영·디지털 배급 실험
“그때 경험 없었다면 150만 관객도 없었다”

-<워낭소리>를 처음 만난 것은 언제인가?

“2007년 9월, 평소 알고 지내던 한 감독의 소개로 디브이디를 보게 됐다. 간단한 코멘트만을 해줬는데, 이충렬 감독이 만나자고 했다. 이 감독은 ‘영화로 만들고 싶은데 영화를 모른다. 고영재를 찾아가라는 말을 세 명한테서 들었다. 어떤 사람은 바지 자락이라도 붙들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우리 학교>를 정리하고, <농민가>라는 새 작품에 돈이 들어가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머리 복잡해서 안 된다, 대신 조언은 해주겠다고 하고, 방송용 <워낭소리> 제작자와 이충렬 감독 앞에서 영화 배급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2시간 동안 브리핑을 했다. 당시 나는 충성 관객이 없는 이 영화는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고 생각했다. 피디를 해달라고 해서 마지못해 후반작업(편집, 사운드 믹싱 등)과 개봉만을 맡겠다고 했다. 편집을 다시 했다. 지쳐 있던 이 감독도 “이제 서광이 비친다”고 말했다. 그런데 방송용 제작자가 ‘이민을 가게 됐다’며 통째로 사가라고 했다. 고민 끝에 아내를 설득해 모든 판권과 저작권을 인수하게 됐다.”

-이충렬 감독이 고 피디에게 “50만명까지 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가 “독립 영화를 너무 모른다”고 핀잔을 들었다고 하더라. 결과적으로 고 피디가 틀린 셈이 됐다.

“스크린 20개일 때 50만명을 얘기하니까 황당했다. 그때 난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제 막 10만명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극장들은 확대를 꺼렸다. 설 연휴 때 매진을 기록하고 1주일이나 지났는데도 변화가 없었다. 그때 평소 알고 지내던 씨너스 극장주가 <워낭소리>를 틀겠다고 했다. 관객 폭발의 시발점은 씨너스 강남이었다. 씨지브이도 좌석점유율이 좋으니까 스크린을 풀기 시작했다. 롯데, 메가박스가 움직인 건 그 뒤였다. 롯데와 메가박스는 애초 한두 개 정도 열고 반응을 보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영화를 먼저 알아주고 틀어준 씨지브이와 씨너스를 설득할 명분이 없다, 풀려면 확실히 풀라고 해서 받아들여졌다. 갑자기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그게 40만명 시점이었다.”


-외국의 경우 다큐멘터리 흥행 기록은 주류 상업영화 최고 흥행기록의 10분의 1 정도가 된다고 하더라. 우리도 <워낭소리>로 비로소 그 대열에 끼게 됐다. <우리 학교>를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워낭소리>의 성공도 없었을 것 같다.

“<우리 학교>는 내가 처음 제작한 영화다. 편집부터 사운드 믹싱까지, 영화 제작의 알파에서 오메가를 다 할 줄 몰랐다면 디지털 배급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학교> 예고편, 사운드 믹싱 등을 내가 다 했다. 디지털 상영 설비가 안 된 극장이 많아, 내가 직접 설치하고 다녔다. <우리 학교> 개봉 당일 나는 울산에서 디지털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 개봉할 때 처음부터 나는 극장에 너무 의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제작 교육, 미디어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이 전국에 퍼져 있었다. 공동체 상영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7개 스크린으로 시작했다. 당시 1만7000명이면 꽤 많이 본 것이었는데, 극장들은 영화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공동체 상영 숫자를 공개했다. 공동체 상영은 관객 아닌가. 그걸 언론이 써 줬고, 결국 재개봉을 하게 됐다. 극장과 공동체 상영 합쳐 11만명이 봤다. 독립영화치고는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실을 옮겼고, 한-미 에프티에이 저지 독립영화 실천단 사무실을 얻었다.”

-<워낭소리>의 성공은 주류 상업영화에 대한 염증이 크다는 증거다. 그런데 요즘 독립영화도 규모만 작을 뿐, 주제나 스타일 면에서 주류 상업영화를 따라 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말해 ‘미친놈’이 별로 없다. 이것저것 재지 않는 미친놈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절박한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망한다. (곧 개봉할)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이 사랑스러운 건 그래서다. <우리 학교>의 김명준 감독도 부인이 죽고 나서 절박했다. 그 절박함 때문에 성공했다. 이충렬 감독은 허접한 프로그램 만들어 방송사에 납품하고, 정작 공들여 찍은 건 퇴짜를 맞았다. 악에 받쳐 만든 게 <워낭소리>다. 요즘 젊은 감독들의 단편 영화들은 잘 만들기는 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어떻게든 메이저 영화사의 낙점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니 메이저들은 감독이 지천에 깔렸다고 우습게 본다.”

-독립영화건 주류 영화건 상관없이 요즘 한국 영화는 곧 잊혀진다는 의미에서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에 속해 있는 것 같다. 아무리 흥행을 해도 역사에 남을 만한 영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작자는 사회심리적 분위기를 읽어야 한다. 트렌드나 마케팅에 몰두하니까 답이 안 나오는 거다. 안타까운 건, 한국 영화 잘나갈 때 돈 벌었던 선배들이 그 돈을 다 어디다 썼느냐는 거다. 제작사 대표가 프로듀서 월급 받고 술값도 비용으로 청구하는 과정을 겪다보니 투자자들은 제작자들을 안 믿게 됐다. 정·반·합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제작사가 큰소리치던 시대가 지나고 투자자 우위의 시대가 됐는데 이대로 가면 공멸이다. 더는 네 탓만으로는 안 된다.”

-지금도 독립영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영화 만드는 운동 있을 수 있다. 나는 리얼리즘을 원한다. 시대적 감성을 제대로 짚자는 거다. 나만 해도 애들 교육 문제나 주거 문제 등 현실 모순을 겪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문제를 다룬 극영화는 없나. 대중들에게 신자유주의라고 하면 못 알아듣지만, 영화는 다르다. 제작자로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수익금 30% 기부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대부분 우호적이다.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재단이나 사회적 기업을 만들려고 한다. 사람에 투자하는 인력 창출 기업이 될 수 있다. 외국에 나가면 가장 부러운 게 사람에 투자하는 문화였다. 가능성 있는 감독이나 활동가, 평론가에게 2년 정도 생활비를 대주는 거다. 외부 지원을 포함하면 100억원의 기금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분위기가 좋다.”


고영재는 누구?

영화판 담금질 15년…‘우리 학교’ 이어 연타석 홈런

» ‘독립영화 신기록 제조기’ 고영재 피디
1969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영화를 좋아했던 큰누나의 영향으로 중2 때부터 1주일에 한 번씩 동시 상영관을 다니며 영화를 봤다. 영화 보는 습관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문학 동아리 활동을 했다. 자신의 시에 대해 낭만적이라고 비판하는 후배에게 “그럼 넌 대체 뭘 읽냐?”라고 물어 <철학 에세이>를 알게 됐다. 고3 때는 학생회장을 했다.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재수 끝에 경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학과와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내고 ‘마지막 방위’로 입대했다. 졸업 뒤 진로를 고민한 끝에 영화에 대한 열망을 되살려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95년 서울에 와 선배들과 함께 영화를 공부했다. 감독이 되려고 ‘문화학교 서울’에 다녔는데 시나리오가 잘 써지지 않았다. 단편영화도 찍고 배우도 해봤지만, 주위에서는 “사람 엮는 걸 보니 연출보다 제작이 낫겠다”고 권했다.

제작을 하려면 모든 걸 꿰뚫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97년 용인대 예술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같은 학교 다니던 정윤철 감독(<말아톤> <좋지 아니한가>)한테서 편집을 배웠고, 사운드 믹싱과 녹음을 홀로 익혔다. 반년이 지나자 편집과 믹싱을 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왔고, 한때 별명이 ‘스페셜 쌩스 투’일 정도로 거의 모든 단편영화에 이름을 올렸다. 남들은 “영화 한다면서 왜 만날 스페셜 쌩스 투 신세냐”고 놀렸지만, 그는 “지금 몸을 만들고 있다. 제대로 쓰일 때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2003년 한국독립영화협회 중앙운영위원이 됐고, 2006년 한-미 에프티에이 저지 독립영화실천단 단장을 맡았다. 같은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가 부산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2007년 개봉해 독립영화 흥행 기록을 세웠다. 2007년부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로테르담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 상을 받은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와 농민들의 에프티에이 저지 투쟁을 담은 <농민가>를 올해 개봉할 예정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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