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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6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을수록 수요가 높아지는 네트워크 외부효과…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으로 주변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구매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ies)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편승효과(bandwagon effect)

100만원짜리 노트북이 나왔다는 소식에 나는 불쾌했다. 사양을 꼼꼼히 뜯어보고는 더 속이 터졌다. 2년 전 내가 220만원 주고 산 노트북 컴퓨터보다도 더 좋은 사양이었으니 말이다. 속도도 빠르고 메모리도 비슷하고 하드디스크도 더 컸다. 게다가 무게는 가벼웠다.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수요가 수요를 일으키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컴퓨터 값 떨어지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여 년 전, 내가 처음 써본 애플컴퓨터에는 하드디스크도 플로피디스크도 없어 카세트를 연결해 테이프를 10분씩 돌려 프로그램을 불러오고 저장했다. 메모리 크기는 64KB였다. 지금 파는 웬만한 컴퓨터는 메모리가 512MB다. 1MB는 1KB의 1천 배다. 그런 고물이 당시 돈으로 60만원이었다. 물가상승률이 매년 3%였다고 가정하더라도, 지금 돈으로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 컴퓨터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상품을 사용하고 있는지가 구매 결정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 서울의 한 전자상가 매장.(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사실 컴퓨터라는 물건은 가장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격이 줄기차게 떨어졌다. 그러나 품질은 점점 더 좋아진다. 품질이 좋아지면 소비자가 느끼는 만족이 커질 텐데, 그러면 가격이 올라가는 게 시장 원리 아닌가? 왜 컴퓨터 값은 거꾸로 움직이는 것일까?

컴퓨터 값이 급하게 떨어지는 데에는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ies)라는 경제 원리가 숨어 있다. 외부효과 가운데서도 특히 편승효과(bandwagon effect)가 나타나면서 컴퓨터 가격을 빠르게 끌어내린 것이다.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구매 의사 결정은 소비자 개인의 취항에 따라 이뤄진다. 소비자는 사용 만족도가 구입 비용보다 높은 상품을 구매하고, 그렇지 않은 제품은 구매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상품에서는 소비자 마음속의 취향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상품을 사용하고 있느냐가 구매 결정에 더 중요한 변수가 된다.

네트워크 외부효과가 바로 특정 상품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사용하고 있느냐가 소비자 수요에 끼치는 영향이다. 편승효과는 정(正)의 네트워크 효과다. 편승효과가 큰 상품은 다른 사람이 많이 갖고 있을수록 수요가 더 많아진다. 사람이 많이 몰려 줄을 서 있는 가게일수록 더 가서 물건을 사고 싶은 ‘떼거리 소비’ 심리를 나타낸 용어인 셈이다.

편승효과가 큰 상품은 가격을 내리면 매출 증대 효과가 매우 크다. 가격을 내리면 거기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는데, 단지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수요가 더 늘어난다. 떼거리 소비 심리가 발동하면서 편승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가격을 내려 수요가 늘어나고, 늘어난 수요 덕에 또 수요가 늘어나고, 또 늘어난 수요 덕에 또다시…. 이런 순환을 거치면서 매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컴퓨터는 대표적으로 편승효과가 큰 상품이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하면, 그들과 서류나 정보를 교환하며 함께 일해야 하는 나도 컴퓨터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면 꼭 컴퓨터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주변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컴퓨터를 사야 한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게 된다. 편승효과 때문에 가격 인하에 따른 매출 증대 효과가 너무나 커서, 가격 인하분을 다 메우고도 충분히 남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외부효과에 대해서 가장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미국 경제학자 베블런이다. 1899년 유명한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상류층의 사치품 소비심리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벌이는 과시적 소비”라고 지적했다. 베블런은 엇비슷한 보석이나 옷을 비싸게 사입고는 하류층과 달라 보인다는 사실을 즐기는 당시 상류층의 허영심을 비판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했다.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지적

이후 경제학에서는 ‘남들이 갖고 있으니까 나도 산다’는 소비심리가 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베블런 효과’, 또는 네트워크 외부효과라 부르면서, 시장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도구로 이용했다.

요즘의 편승효과는 ‘허영심’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남이 가진 것을 갖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그들의 네트워크에 들어갈 수 없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휴대전화가 그 대표적 사례다. 다들 문자메시지로 모임을 소집하니, 휴대전화 구입 대열에 편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예전에 휴대전화 업체들이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값에 전화기를 보급한 것도 이런 편승효과를 노린 전략이었다. 기술은 베블런이 지적한 ‘허영’이라는 심리적 구획짓기를 ‘문자메시지’라는 물리적 구획짓기로 전환시켰다.

일반적으로 편승효과가 가져오는 가격 인하 전략은 상품이 등장한 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가격 인하 전략이 애용된다. 에누리는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를 때쯤 사라지기 마련이다. 모두가 휴대전화를 갖게 된 지금, 휴대전화 업체들은 가격 인하나 보조금 지급에 전보다 시큰둥하다. 노트북을 구입할 예정이라면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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