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HERI의 눈

지난주 우리는 약 3900여명의 ‘지역 리더’를 선택했다.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상대를 비하하거나 ‘아니면 말고’ 식의 네거티브 선거는 여전했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황당한 공약도 속출했다. 변함없는 선거 관행과 풍토에 또 한 번 상처받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리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1975년 베네수엘라에서 빈민층 청소년을 위해 오케스트라 엘시스테마(El Sistema)를 설립한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절망 속에 살아가던 빈곤 청소년들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발돋움시켰다. 아브레우 박사가 엘시스테마를 설립한 이유는 간단했다. 빈곤에서 헤어날 길이 막막했던 청소년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였다. 가난 때문에 다친 마음은 빵이나 돈이 아니라, 결여된 자기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존재인지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음악이 제격이라고 봤던 것이다.

하지만 엘시스테마가 결성되기까지 적잖은 어려움이 있었다. 설립 초기 100명을 예상하고 기부를 통해 악기 등을 마련했지만 교육 장소에 나타난 청소년은 고작 11명에 불과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교육을 그만둬야 할 위기에서 아브레우 박사는 명확한 비전으로 빈곤 청소년들을 오케스트라 연습장으로 불러 모았다. 엘시스테마를 통해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될 수 있고, 이는 개인과 가족, 그리고 지역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득했다. 가족과 이웃이 엘시스테마에 관심을 갖도록 해 참여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고취시켰다. 35년이 지난 지금, 베네수엘라 각지에 221개의 엘시스테마 음악교육센터가 개설되어 6000명의 음악 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엘시스테마에서 바이올린과 지휘를 배운 구스타프 두다멜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활약 중이다.

연이은 국가 재난 속에 우리 사회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희망’이다. 아브레우 박사가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에게 주고자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대규모 개발과 대기업 유치를 통해 지역을 개발하고 많은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다. 빵과 돈보다, 결여된 자기 정체성 회복을 통해 스스로 보다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인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이후 가족과 지역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동기부여를 갖도록 도와야 한다. 지역사회의 리더를 자처한 당선자들의 당면과제다.

서재교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jkse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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