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가난한 초원에 전하는 ‘자립 노하우’

HERI 2011. 10. 21
조회수 6405
가난한 초원에 전하는 ‘자립 노하우’
[한겨레] 이재명 기자 기자블로그

지구촌나눔운동, 유목민에게 축산·농업기술 전수
현지인 리더십 양성 초점…“삶의 질 향상에 일조”

갓 돌이 지났을 법한 딸아이를 가슴에 안은 체랭돈도그(28)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번졌다. 한 달 뒤면 짓게 될 마을회관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그는 얼마전 구청으로부터 마을회관를 세우는 데 필요한 땅과 함께 480만 투그리크(500만원)를 지원받았다. 공사는 주민들이 직접 할 예정이다. “마을 사람들의 회의와 교육 장소로 활용할 겁니다. 공터엔 나무를 심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꾸밀 거예요. 앞으로 공동 미용실과 목욕탕도 지을 생각입니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북서쪽으로 60㎞ 떨어진 자르갈란트. 지난 1일 찾은 이곳엔 벌써 첫눈이 내렸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곳곳 야트막한 구릉들 사이로 한 무리의 집들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체랭돈도그가 마을회관을 짓기로 결심하고 재정지원을 요청한 건 올해 초다. 마을 청년 5명과 함께 지난겨울 지역개발교육센터가 운영한 주민지도자 양성과정에 참여한 게 직접적 계기였다. 일주일 동안 영농·축산 기술은 물론 위생, 지역개발의 중요성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합숙’을 통해 이웃마을 주민들과 지역개발, 소득 개선 등에 관해 밤늦은 시간까지 토론을 벌이는 과정 자체가 문화적 충격이었다. 공동체 생활과 교육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던 경험이 그에게 소박하지만 변화를 꿈꾸고 이를 실천에 옮기게 하는 단초가 된 셈이다.


» 지난 1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북서쪽으로 60㎞ 떨어진 자르갈란트 지역의 초원 위에서 말들이 풀을 뜯고 있다. 울란바토르/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행복의 땅’이란 뜻의 자르갈란트는 초원의 지독한 가난과 혹독한 자연환경을 피해 도시 진입을 꿈꾸는 이들의 정거장이자, 도시화와 산업화의 그늘로부터 한발짝 떨어진 반정착 유목민 마을이기도 하다.


좀더 나은 삶을 꿈꾸는 이곳 주민들에게 손을 내민 건 한국의 기업과 시민단체, 정부였다. 몽골은 급격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빈곤율은 줄었지만 소득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유목민들은 잦은 기상이변까지 겹치면서 생계수단인 가축을 잃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거나 절대적 가난에 내몰리고 있는 처지다.


이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대표적인 국내 기업으로는 포스코가 있다. 포스코는 시민단체인 지구촌나눔운동, 국제협력재단(코이카)과 함께 지역개발교육센터를 운영하면서 유목민들이 홀로 서는 데 필요한 축산·농업 기술과 생활교육을 하고 있다. 주민공동체를 통해 스스로 빈곤 등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디딤돌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11월 현지 교육센터 시설부터 새롭게 꾸몄다. 교육프로그램은 1970~80년대 한국 농촌개발의 동력이 됐던 새마을운동과 가나안농군학교를 참고했다. 자조·협동·개척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우면서도 몽골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기울였다. 또 강사와 교관 대부분을 몽골인으로 선발해 한국인들이 떠난 뒤에도 홀로 설 수 있도록 현지인 리더십 양성에 초점을 뒀다. 친구이되 간섭하지 않고,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교육의 원칙으로 삼은 것이다.


» 한국을 방문한 몽골 연수생들이 지난 9월29일 오전 경북 영천 임고면의 한 블루베리 농장을 찾아 교육을 받은 뒤 농장을 둘러보고 있다. 영천/신소영 기자

지난달에는 경북 영천에 설립한 유기농 영농지원센터 ‘에코팜’에서 몽골 우수교육생 6명을 초청해 연수를 실시했다. 귀농을 희망하는 은퇴자들을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활용해 한국의 농촌개발 노하우와 친환경 농업교육을 전달하는 교류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30일 찾은 이곳에선 몽골 교육생들이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채소재배, 농기계 조작법과 블루베리 등 농산물가공·유통 과정을 배우느라 한창이었다. 몽골 농업진흥원 공무원인 세르쓰마는 “몽골에서 최근 채소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며 “여기에서 배운 농업 기술이 주민들의 수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채소는 우유와 함께 자르갈란트 주민들의 주요한 소득원이다.


애초 자르갈란트에 터를 닦은 건 지구촌나눔운동이다. 1999년부터 3년여 동안 이어진 영하 52도의 혹한으로 가축의 30%가 희생된 직후 이 지역에서 가축은행과 사료은행을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젖소를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을 대출해 스스로 생계수단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파르티잔 마을의 어윤체체그 부동장은 “1800가구 중 407가구가 가축은행의 지원을 받았다”며 “주민들의 소득 향상은 물론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지구촌나눔운동은 가축은행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개발을 위한 교육사업을 추진했다. 코이카는 재정 지원과 함께 몽골 정부가 각 지역정부와 연계해 교육생을 선발하고 강사를 제공하는 데 협조를 이끌어 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르갈란트의 교육사업은 몽골 안에서도 성공적인 유목민 자립 대책으로 호평받으면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김상일 포스코 사회공헌실 과장은 “몽골 주민지도자 양성교육은 기업과 시민단체, 공공기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바람직한 협력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며 “더딜지라도 몽골 농촌사회의 변화와 함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몽골 자르갈란트, 경북 영천/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수도권 거주자, 소득은 쥐꼬리에 빚더미 - HERI 경제뉴스해설(11/14)

1. 수도권 거주자의 삶은 피곤하다 서울에 사는 월급쟁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푸념이다. 그 말이 근거없는 푸념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지방 거주자보다 소득은 약간 많은 반면 빚은 훨씬 많은 것. -- 어떤 조사인가...

  • HERI
  • 2011.11.14
  • 조회수 7308

이탈리아 충격으로 주가 폭락, 전망은? - HERI 경제뉴스해설(11/11)

1. 어제 ‘이탈리아 충격’으로 한국 주가는 많이 떨어졌는데...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전이된 유럽 재정위기. 이날 허용된 공매도(空賣渡) 같은 기술적 문제까지…. 두 개의 난관을 함께 만났다. 한국 주가는 100포인트 가량 내...

  • HERI
  • 2011.11.11
  • 조회수 6960

경제대국 이탈리아에 위기 오나-HERI 경제뉴스해설(11월10일)

1. 이탈리아 위기 오나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견주면 부채 규모가 워낙 커서 걱정이다. 이탈리아의 공공부채는 약 1조9천억 유로(3천조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120%에 이른다.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 등의 공공부채...

  • HERI
  • 2011.11.10
  • 조회수 6562

HTC폰의 약진, 꾸준함이 반짝거림을 이긴다 - HERI 경제해설(11월7일)

1. 그리스 문제 가닥 잡나 그리스 여야가 2차 구제금융안 비준을 위한 거국내각을 출범시키기로 합의했다. 현 파판드레우 총리는 퇴진하기로 했다. -- 구제금융안은 어떻게 되나요? 파풀리아스 대통령은 총리와 야당인 사마라스 신...

  • HERI
  • 2011.11.07
  • 조회수 8652

오지마을 우물가엔 시원한 웃음 넘쳤다

경제 경제일반 오지마을 우물가엔 시원한 웃음 넘쳤다 [한겨레] 김재섭 기자 웅진코웨이, 캄보디아 ‘식수 해결’ 5년째 우물파기 2015년까지 1000개 목표…마을 영아사망률 감소 소문퍼져 앞다퉈 신청…개인이름 우물기증도 활발 ...

  • HERI
  • 2011.11.04
  • 조회수 6804

내가 만약 한국인이라면 우선 재생에너지 힘쓸것 원전은 최후 선택이어야

경제일반 내가 만약 한국인이라면 우선 재생에너지 힘쓸것 원전은 최후 선택이어야 [한겨레] 등록 : 20111103 20:30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ㅣ 트리 뭄푸니 2011년 막사이사이상 » 트리 뭄푸니 2011년 막사이사이상트...

  • HERI
  • 2011.11.04
  • 조회수 5923

EU 같은 경제공동체 동아시아선 비현실적 한·중·일 FTA 모색을

경제 경제일반 EU 같은 경제공동체 동아시아선 비현실적 한·중·일 FTA 모색을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⑤ » 허시유 푸단대 교수 허시유 중국 푸단대 교수(42·경제학)는 한·중·일 경제공동체 구상에 대해 균형...

  • HERI
  • 2011.11.03
  • 조회수 6816

협동조합 은행이 투자자 소유 은행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사회 사회일반 협동조합 은행이 투자자 소유 은행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한겨레] 김현대 기자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④ » 존스턴 버챌 스털링대학 교수스코틀랜드 스털링대학의 존스턴 버챌(60) 교수는 세계 협동조합계...

  • HERI
  • 2011.11.02
  • 조회수 6016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재생에너지 중심 재건 실험중”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재생에너지 중심 재건 실험중”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③ 원전족, 일본 전력시장 장악 손정의 등 녹색에너지 세력 발전차액지원제 등으로 도전 » 앤드루 드윗 릿교대 교수앤드...

  • HERI
  • 2011.11.01
  • 조회수 6820

서구가 답하지 못하는 문제 아시아가 해답 들려줄수도

서구가 답하지 못하는 문제 아시아가 해답 들려줄수도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② 중국은 근대 국민국가 아닌 그들 나름의 문명국가 성장 지진해일·원전사고 충격 일본사회 변화 방향 고민 문명의 중심축이 유...

  • HERI
  • 2011.10.31
  • 조회수 5720

“댐 완공땐 마을 침수…새 집 지어준다니 꿈같아”

“댐 완공땐 마을 침수…새 집 지어준다니 꿈같아” [한겨레] 조기원 기자 소수민족 아이타족, 이사비용 턱도 없는 가난한 삶 코이카·아시아나·굿피플 새집 70채 지어 이주 계획 보건소도 세워…“자립기반 마련해주는 게 장기과...

  • HERI
  • 2011.10.28
  • 조회수 6871

유로권 재정위기는 과잉복지 탓 아닌 금융허브 몰입한 탓

경제 경제일반 유로권 재정위기는 과잉복지 탓 아닌 금융허브 몰입한 탓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 연사에게 듣는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빚에 억눌린 정부·기업·가계 쓸돈 없으면 불황 가속화...

  • HERI
  • 2011.10.24
  • 조회수 5823

가난한 초원에 전하는 ‘자립 노하우’

경제 경제일반 가난한 초원에 전하는 ‘자립 노하우’ [한겨레] 이재명 기자 지구촌나눔운동, 유목민에게 축산·농업기술 전수 현지인 리더십 양성 초점…“삶의 질 향상에 일조” 갓 돌이 지났을 법한 딸아이를 가슴에 안은 체랭...

  • HERI
  • 2011.10.21
  • 조회수 6405

사막에 울창한 숲을…쿠부치에 심은 ‘녹색 희망’

경제 경제일반 사막에 울창한 숲을…쿠부치에 심은 ‘녹색 희망’ [한겨레] 박영률 기자 ‘대표적 황사 발원지’ 쿠부치 사막에 ‘길이 28km·폭 8km’ 숲 조성 “황사·사막화 방지에 도움 보람”…일본도 1992년부터 녹화사업 모래...

  • HERI
  • 2011.10.14
  • 조회수 7917

‘블랙아웃’ 걱정, 2차전지에 맡겨라

경제 경제일반 ‘블랙아웃’ 걱정, 2차전지에 맡겨라 [한겨레] 최현준 기자 작고 가벼운데 용량 큰 ‘반영구적 전기창고’ 삼성SDI, 소형 2차전지서 일본 제치고 1위 중·대형 박차…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추진 지난 4일 찾은 ...

  • HERI
  • 2011.10.07
  • 조회수 6630

[싱크탱크 광장] ‘빚더미’ 대한민국·서울시 건강재정 되찾을 묘안은

사설.칼럼 칼럼 [싱크탱크 광장] ‘빚더미’ 대한민국·서울시 건강재정 되찾을 묘안은 나라살림 현황과 해법 [한겨레] 등록 : 20111004 19:45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후보로 뽑혔다. 경선 막바...

  • HERI
  • 2011.10.05
  • 조회수 6922

“안철수 현상은 □ 다”

정치 정치일반 “안철수 현상은 □ 다” [한겨레] 이지은 기자 등록 : 20110929 21:28 한겨레·싱크탱크연합 토론회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안철수 현상’은 무엇에서 비롯됐는가?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불어닥친...

  • HERI
  • 2011.10.04
  • 조회수 7382

태양광 전지판 전세계 80개국에 펼치다

경제 경제일반 태양광 전지판 전세계 80개국에 펼치다 [한겨레] 김경락 기자 등록 : 20110929 20:30 | 수정 : 20110929 22:13 창업 9년만에 실리콘 태양광 모듈 세계 1위 지방정부 지원·과감한 R&D투자로 고속성장 최근 ...

  • HERI
  • 2011.09.30
  • 조회수 6840

[싱크탱크 시각] 위기의 본질 / 이원재

사설.칼럼 칼럼 [싱크탱크 시각] 위기의 본질 / 이원재 [한겨레] 한국 기업은 이미 위험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 위험한 것은 개인이다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경제위기’가 다시 입에 오르내린다. 원화 환율이...

  • HERI
  • 2011.09.26
  • 조회수 7127

페르시아만 바닷물을 ‘사막의 생명수’로

경제 경제일반 페르시아만 바닷물을 ‘사막의 생명수’로 [한겨레] 김경욱 기자 UAE 루와이스 200만㎡거대 물공장 가동 시작 폐열·폐증기 이용한 ‘다단증발방식’ 친환경 기술 22곳에 450만톤 규모…하루 1500만명 이용 가능 무...

  • HERI
  • 2011.09.23
  • 조회수 7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