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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0
햄버거집 세트 메뉴처럼 ‘묶음 판매’로 다양한 고객을 만족시키는 전략… 소비자들의 메뉴에 대한 최대지불의사가 극단적으로 다를 때 효과 발휘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묶음판매(bundling)

순수묶음판매(pure bundling)

혼합묶음판매(mixed bundling)

식구들과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시장바닥처럼 시끌시끌하고 음식을 하나하나 직접 골라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날, 식탁 위에 새로운 메뉴가 하나 놓여 있었다. 뷔페 메뉴다. 전채요리와 주요리, 샐러드, 디저트 등을 모두 따로 판매하던 그 식당이 뷔페 메뉴를 추가해 묶음판매(bundling)에 나선 것이다.

실속형과 군것질형 모두 만족

음식을 단품으로도 사먹을 수 있고 뷔페로도 먹을 수 있다면, 식사량이 많은 사람은 뷔페 가격만 내고 더 많이 먹고 양이 적은 사람은 단품 메뉴를 고르지 않을까? 식당 쪽은 괜히 손해보는 장사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식당이 손해 입는 선택을 할 리는 없다. 많은 경우 오히려 돈을 더 벌게 된다. 묶음판매 기법의 마술이다. 사람마다 동일한 상품에 대해서도 최대 지불 의사(reservation price)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다.

단순화를 위해 주요리 스테이크와 디저트 아이스크림 두 가지 메뉴만 있고, 소비자가 뷔페 메뉴를 선택하면 스테이크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만 먹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내용을 뜯어보자. 그 식당의 뷔페 가격은 2만5천원으로 책정됐다. 단품으로 사는 스테이크가 하나에 2만원, 아이스크림이 1만원이다.


△ 묶음 판매는 각기 다른 최대 지불 의사를 가진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는 전략이다. 서울의 한 한식뷔페집. (사진/한겨레 이정아 기자)

이 식당 고객 중에는 세 가지 유형의 소비자가 있을 것이다. 우선 스테이크에 대한 선호도가 무척 높고, 아이스크림은 전혀 먹지 않는 실속형 소비자다. 이 사람의 스테이크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는 2만3천원이다. 대신 아이스크림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는 0이다.

실속형 소비자에게 뷔페 메뉴는 매력이 없다. 2만5천원이나 내고 2만3천원어치의 만족밖에 주지 못하는 메뉴이기 때문이다. 이 소비자는 2만원을 내고 스테이크 하나만 단품으로 사먹으면서 2만3천원어치 만족을 즐길 것이다.

스테이크와 아이스크림을 함께 좋아하는 평균적 소비자도 있을 것이다. 이 소비자에게 스테이크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는 1만8천원, 아이스크림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는 8천원이라고 하자. 평균적 소비자는 뷔페 메뉴를 선호할 것이다. 하나씩 사면 스테이크 가격도 아이스크림 가격도 자신의 최대 지불 의사보다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 합쳐놓은 뷔페 메뉴의 경우 가격이 2만5천원인데 자신의 최대 지불 의사는 2만6천원(스테이크 1만8천원+아이스크림 8천원)이므로 매력 있는 상품이 된다.

이번에는 스테이크 대한 선호도는 매우 낮고, 아이스크림만 좋아하는 군것질형 소비자를 생각해보자. 이 사람의 스테이크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는 0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최대 지불 의사 1만5천원이라고 하자. 군것질형 소비자는 실속형 소비자처럼 1만원에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만 사먹고 만다.

여기서 마술이 일어난다. 분명히 소비자들은 자기 양과 식성을 감안해 메뉴를 선택했다. 그런데 묶음판매를 할 때 식당은 단품 판매 때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된다.

묶음판매는 이 세 명의 소비자를 모두 잡는다. 결국 식당은 주요리 하나, 뷔페 하나, 디저트 하나를 합해 모두 5만5천원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모두 단품으로 판다면, 앞의 실속형 소비자와 군것질형 소비자는 잡을 수 있지만, 평균적 소비자를 놓쳐 매출은 3만원에 그치게 된다. 평균적 소비자의 최대 지불 의사를 각각의 상품 가격이 맞춰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품 판매만 하면서 평균적 소비자까지 붙잡아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을 스테이크 1만8천원, 아이스크림 8천원으로 내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평균적 소비자에게서 매출 2만6천원, 실속형 소비자에게서 1만8천원, 군것질형 소비자에게서 8천원을 얻게 되니 모두 5만2천원의 매출이다. 여전히 뷔페를 추가했을 때보다 적다.

묶음판매에는 순수묶음판매(pure bundling)와 복합묶음판매(mixed bundling)가 있다.

앞의 식당 사례는 기존의 단일 상품 판매도 병행하는 복합묶음판매의 경우다. 햄버거집의 세트메뉴가 대표적인 예다.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따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세트메뉴로 주문하면 두 개를 합친 가격보다 싸다.

어디서든 다양성은 풍요를 부른다

순수묶음판매는 단일 상품 판매를 하지 않고 묶음판매만 하는 경우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처음 개봉됐을 때, 배급사는 <거티의 양말 대님>(Getting Gertie’s Garter)이라는 무명 영화와 함께 묶어 극장에 제공했다. 둘 중 하나만 상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게 순수묶음판매 사례다.

언제 묶음판매 전략을 써야 성공할 수 있을까? 묶음판매는, 소비자가 판매 상품들에 대해 갖고 있는 최대 지불 의사가 서로 역의 관계에 있을 때 판매자에게 이익이 된다. 예를 들어 햄버거를 좋아하는 소비자는 감자튀김을 덜 좋아하고, 감자튀김을 좋아하는 소비자는 햄버거를 덜 좋아한다면 묶음판매가 유리하다는 이야기다. 거꾸로 햄버거를 좋아하는 소비자가 감자튀김도 좋아하고, 햄버거를 덜 좋아하는 소비자가 감자튀김도 덜 좋아한다면 묶음판매는 성립되기 힘들 것이다.

묶음판매 전략이 기업가에게 추가 이익을 가져다주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위에서 든 실속형이나 군것질형같이 극단적 성향을 가진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풍요를 부른다. 사회에서나 경제에서나, 생태학자에게나 장사꾼에게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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