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9-02-04


철거민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는 용산의 한 옥상에 진입작전을 지시한 지휘관은 그 순간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법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과 직업의식 이외에, 혹시라도 대형 참사가 날 위험이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랬다면 그 확률은 몇 퍼센트쯤이라고 생각했을까?

경영대학원 재학 때, 리먼브러더스의 기업설명회에 간 일이 있다. 학교를 찾아온 채용 책임자는 무척 도도했다. ‘리먼은 예금이나 지키는 그저 그런 은행이 아니라,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금융공학으로 무장하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투자은행’이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엄청나게 큰돈을 벌고 있었고,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인재들도 몰려왔다. 당시 글로벌 투자은행은 모두 그랬다.

그런데 그들이 파산하고 무너진 이유도 결국 이 똑똑함과 자신감에 있었다. 투자은행들이 우쭐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스스로 ‘위험’을 다스렸다고 믿었던 데 있었다. 여러 종류의 위험을 가진 금융상품을 섞어서 재포장하고 나면, 위험은 정리되고 줄어들고, 무엇보다도 예측 가능하게 됐다. 금융공학이 제공하는 현란한 모델과 복잡한 숫자 속에, ‘위험’은 완전히 정복됐다고 믿어졌다.

투자은행이 리스크를 다스린 가장 중요한 도구가 투자손실한도(VaR; value at risk)이다. 투자손실한도란 일정한 확률 아래, 최악의 위험 발생 때 잃을 수 있는 최대 가능 손실 액수를 뜻한다. 이 수치가 높으면 위험이 발생했을 때 잃을 수 있는 자금이 크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 ‘일정한 확률 아래’가 중요하다. 이 조건은 여론조사에서 늘 등장하는 ‘95% 신뢰구간’ 같은 것이다. 그 범위 안에서만 해당하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투자손실한도 역시 가장 높게 잡아도 99% 확률 아래서 계산됐지만, 이 숫자로 모든 위험을 다스렸다고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 1%의 위험은 계산 속에 없었다.

이 1%가 현실화했을 때 모든 문제가 일어났다. 전혀 계산되지 않은 드문 일이 생겨났을 때, 금융공학의 화려한 회로는 모두 망가졌다. 세계 금융시장은 일거에 혼란에 빠졌다. 이게 글로벌 금융위기다.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이렇게 말한다. “폭풍이 무엇인지 모르는 조종사가 모는 비행기를 계속해서 타고 간다면, 어떤 일이 생겨날까요?” 1%의 위험이란, 이렇게 아주 드물지만 일어나면 매우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폭풍우였다.

‘똑똑함’은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투자은행들은 이 투자손실한도를 직원 성과평가 척도로 삼았다. 99% 확률 아래 얼마나 덜 위험하게 투자자산을 관리했는지를 평가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그 직원들은 이런 평가틀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들은 투자자산의 상당 부분을 평가대상에서 빠진 1%안에 몰아넣었다. 아주 드물지만, 일어날 경우 엄청나게 파괴적일 수 있는 위험에 고객 자산을 노출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더 위험한 곳에 투자한 직원이 더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위험 관리 시스템은 무너져 갔다. 전세계는 계산되지 않은 위험에 노출됐다.

위험한 시위 현장을 지키는 경찰은 존중받아야 한다. 준법에 대한 사명감도 존경받아야 한다. 그러나 ‘1%의 위험’을 무시했다면, 그 지휘자는 존중받아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오만함은 더욱 존중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 태도가 용산의 망루도 무너뜨렸고, 세계 금융시장도 위기에 몰아넣었다. 오만함을 부추기는 사회는, 고객을 파괴적 위험 안에 몰아넣는 ‘똑똑한’ 사람들을 키우게 된다. 그런 사회에 미래는 없다.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삶과경제] 더 쉬는 대한민국이 필요하다

2010-01-30 2010년 첫 출근날, 아침부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눈에 갇혀 있다는, 차가 막힌다는, 조금 늦는다는 연구원들의 전화였다. 서울 전체가 마비 상태였다. 기업에서도 시무식을 연기하는 일이 잇따랐다. 국무회의에 지각...

  • HERI
  • 2011.06.27
  • 조회수 4251

[이원재의 5분 경영학]그 커피숍엔 커피에 ‘다방의 향기’를 섞었다

2009-12-30 [이원재의 5분 경영학]고객 가치 구성 ‘관계·체험·추억’ 넣어 전혀 다른 상품으로 문화적 체험 판다는 스타벅스가 배워 갔나 인테리어도 세련됐다. 메뉴에는 카페 라떼도 카푸치노도 에스프레소도 있다. 테이크아웃도 된...

  • HERI
  • 2011.06.27
  • 조회수 5461

평생고용 한솥밥…‘풍년밥솥’의 고집

2009-12-30 PN풍년의 ‘뜨끈한’ 크리스마스 “직원 행복해야 좋은 제품” 첨단 자동화설비 갖추며 직원이 할 몫 남겨둬 인력감축 판단 설땐 공장인수 등 확장 자제 » 피엔(PN)풍년은 ‘직원 만족’ 경영을 통해 55년 전통을 ...

  • HERI
  • 2011.06.27
  • 조회수 5491

회장부터 말단직원까지 ‘행복나눔’

2009-12-30 [나눔경영] 대기업 사회공헌 활발 SK그룹 » 조를 지어 봉사활동에 나선 에스케이(SK)브로드밴드 신입사원들이 한 어르신의 얘기를 듣고 있다. SK그룹 제공에스케이(SK)그룹에서 사회봉사와 나눔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

  • HERI
  • 2011.06.27
  • 조회수 3829

포스코 ‘자립형 사회적기업’ 첫삽

2009-12-30 친환경 건축 독자기술 보유 ‘에코 하우징’ 포항서 착공식 취약계층 30% 고용 계획 » 포스코가 16일 경북 포항시 흥해읍 연료전지공장 터에서 연 자립형 사회적기업 ‘포스 에코 하우징’ 착공식에서 임태희 노동부장...

  • HERI
  • 2011.06.27
  • 조회수 4733

문화재·환경보호로 밝은 세상 ‘예금’

2009-12-30 [나눔경영] 희망 대출하는 금융기업 신한은행 » 지난 23일 이백순 은행장(가운데) 등 신한은행 임직원들이 서울시 중구 예장동 소재 아동양육시설인 ‘남산원’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 등 봉사활동을 펼쳤...

  • HERI
  • 2011.06.27
  • 조회수 3603

직원만큼 회사도 기부 ‘2배 나눔’

2009-12-30 [나눔경영] 나누고 지키고 현대제철 » 혼자 사는 어르신의 헌집을 고쳐주는 사랑의 집수리 활동을 펼쳐온 현대제철 직원들. 현대제철 제공 현대제철은 지난해 대표이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회책임위원회를 발족하며 사...

  • HERI
  • 2011.06.27
  • 조회수 3536

[사설] 사회책임투자 활성화 위한 제도 정비 서두르길

2009-12-23 경제적 이윤 추구와 동시에 기업 지배구조, 환경 등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책임경영(CS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책임경영 수준이 높은 기업에 집중 투자하는 사회책임투자(SRI)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

  • HERI
  • 2011.06.27
  • 조회수 4111

공익재단 사회책임투자…영국은 절반, 우린 없어

2009-12-23 사회책임투자 전문가 좌담회 김성환 기자 <script></script> »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피터 웹스터 아이리스(EIRIS) 대표를 비롯해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기업책임시민센터 이사), 윤정숙 아름다운재단...

  • HERI
  • 2011.06.27
  • 조회수 5011

“사회책임투자 평가지수 만들자”

글로벌 사회책임경영 콘퍼런스서 제안 » 16일 서울 여의도 시티클럽에서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한 ‘2009 글로벌 사회책임경영(CSR) 콘퍼런스’에서 한국 실정에 맞는 사회책임투자 평가지수의 필요성 등을 놓고 토론하고 있다. 왼쪽...

  • HERI
  • 2011.06.27
  • 조회수 5117

사회책임경영 대상에 포스코·가스공사·KT

2009-12-23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정 포스코, 한국가스공사, 케이티(KT)가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 사회책임경영 성과가 가장 좋은 기업으로 꼽혔다. 한겨레신문사 부설 한겨레경제연구소는 15일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2009 글로벌 사회...

  • HERI
  • 2011.06.27
  • 조회수 4910

소비자 55% “사회책임기업 제품 사겠다”

2009-12-14 한겨레경제연구소 1천명 조사…2년전보다 11%p 늘어 대기업 18곳중 유한킴벌리·포스코·삼성 순으로 평가좋아 » 주요 기업의 사회책임경영 평가와 지출규모의 비교 이제는 사회공헌을 포함한 사회책임경영(CSR)이 선택이 아...

  • HERI
  • 2011.06.27
  • 조회수 5957

다솜이재단 ‘지속가능 경영보고서’ 펴내

2009-12-14 국내 사회적 기업 1호인 다솜이재단이 ‘사회적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지속가능 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 다솜이재단은 8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조직 성과를 측정, 공개하고 안팎의 이해관계자에게 책임 있는 활동...

  • HERI
  • 2011.06.27
  • 조회수 4699

[삶과경제] ‘두바이 실패’ 이후의 창조경영

2009-12-10 2006년 10월8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창조경영’이라는 화두를 꺼낸다. 두바이의 삼성물산이 건설중이던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 현장에서였다. 그는 “셰이크 무하마드가 두바이를 세계가 주목하는 발전모델...

  • HERI
  • 2011.06.27
  • 조회수 4875

‘사회적 기업’ 내년 지원대상서 무더기 탈락

2009-12-10 정부, 심사 한달전 기준 강화…절반 넘게 떨어진듯 예산 30% 삭감 따른 결과…“실업자 대책 마련 시급” » 사회적기업에 관한 노동부 심사 지침 변화이익 추구보다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펼치는 데 중점을 두...

  • HERI
  • 2011.06.27
  • 조회수 4225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발 빼는 정부 속내

2009-12-10 [초점] 지식경제부 “SR 국제표준 세미나 후원자 명단서 빼라”… 노동·인권·환경 단체 힘 실어줄까 우려한 듯 지난 9월3일 서울 숭례문 근처 대한상공회의소 건물에서 ‘SR 26000’ 관련 교육 세미나가 열렸다. 이름...

  • HERI
  • 2011.06.27
  • 조회수 5511

“의를 좇는 아시아적 가치로 사회책임경영을”

2009-12-10 UN 글로벌 콤팩트 한·중·일 라운드테이블 열려 최태원 회장 “경영철학 재정립, 국제표준 도입 토양” » 아리마 도시오 유엔(UN)글로벌콤팩트 일본협회장(맨왼쪽)이 13일 오전 서울 한남동 그랜드서울하얏트호텔에서 열린...

  • HERI
  • 2011.06.27
  • 조회수 4383

사회공헌도 민생 현장 속으로

2009-12-10기업들, 단순 기부 넘어 소외된 이들의 필요에 맞춘 활동에 주력 기업이 이윤 추구와 더불어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도 노력해야 한다는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가 기업 사회공헌 활동의 새...

  • HERI
  • 2011.06.27
  • 조회수 5486

지속가능경영 핵심은 이해관계자 참여

2009-12-10기업의 사회적 책임 갈수록 증대 ISO 26000은 인증 아닌 지침 서울=환경일보】김경태 기자 =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은 기업경영의 기반이며 지속가능경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의 이해자 참여 사례를 공유하고...

  • HERI
  • 2011.06.27
  • 조회수 7843

사회적기업 적극적 맞춤지원 ‘절실’

2009-10-28 [실업급여 100만명 시대 고용정책 판을 바꾸자] 공익·수익 모두 잡는 길 험난“조례 만들어 실질 지원해야” » 사회적 기업의 업종별 유형 사회적기업의 성공은 사회서비스 확대로 이어진다. 사회적기업의 절반이 ...

  • HERI
  • 2011.06.27
  • 조회수 4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