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 SV위원장

SK ESG전략 총괄하며 최태원 회장 보좌
“기업 부담 증가 우려는 엄살 아닌 현실
그러나 무섭다고 머뭇거리면 우리만 낙오”

전기료 인상 따른 경쟁력 유지 대책 절실
“원전 정치논쟁 변질…필요한 논의 실종”

‘CEO 인사’ 이사회 이양…재계 우려 전화도
‘총수 중심 재벌체제’ 일대 전환점 예고
연말 CEO 인사에 ESG성적 최대 50% 반영


이형희 위원장
이형희 에스케이(SK)수펙스추구협의회 에스브이(SV)위원장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종로1가 에스케이 서린빌딩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경제계 화두인 이에스지(ESG) 경영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탄소 감축은 기업들이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 경기와 같다.”


이형희 에스케이(SK)수펙스추구협의회 에스브이(SV·사회적 가치)위원장은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종로1가 에스케이 서린빌딩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2050 탄소중립’과 관련해 “기업의 부담이 큰 것은 엄살이 아니고 현실”이라면서도 “미국·유럽 등 모두가 앞으로 뛰어가는데 우리만 머뭇거리면 낙오할 수 있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재계가 정부와 탄소중립위원회가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40%로 높이는 것에 강력 반대하는 상황이라 주목된다.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은 국내 기업의 이에스지(ESG) 경영을 선도하고 있다. 이에스지는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를 중시하는 경영과 투자의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다. 이 위원장은 에스케이의 이에스지 경영전략 총괄책임자로, 최 회장을 보좌한다.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도 맡아 이에스지 정책 결정에도 핵심 역할을 한다.

이 위원장은 탄소중립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과 같은 기업 부담 증가에 대해 “탈원전 정책을 수정해 전기요금 상승을 막거나, 탈원전을 고수한다면 전기요금 상승 부담을 법인세 인하 등으로 상쇄시켜줘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원전 문제가 너무 정치논쟁으로 가다 보니 필요한 논의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최고경영자(CEO)의 평가·선임을 각 사 이사회에 맡기는 ‘이사회 중심 지배구조 혁신 방안’에 대해 “(재계로부터) 에스케이가 너무 앞서간다는 항의성 전화를 받기도 했지만 수십조, 수백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 자금을 금융시장에서 조달하려면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조처가 총수 중심의 재벌체제에 대전환점이 될 가능성에 대해 “회장의 가장 큰 권한인 시이오 인사권을 내려놓는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올해 말 에스케이 사장단 인사에서 시이오 평가에 이에스지 성적이 10~50% 반영된다고 밝혔다. 대기업 사장 인사에 이에스지가 전면적으로 반영되는 것은 에스케이가 처음이다.

―위원장을 맡은 지 2년10개월이 됐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과,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나?

“어려운 일을 이루면 그만큼 보람이 크다는 점에서 둘은 같은 얘기다. 1년 전 사용전력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RE100’에 가입했다. 올해 6월에는 탄소 순배출량이 0이 되는 넷제로(탄소중립) 조기달성 추진을 선언했다. 기후 문제 해결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최태원 회장의 의지가 워낙 강해 할 수 있었다. 결국 시이오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해줘서 선언이 이뤄지고 실행계획을 수립했다.”

―최 회장의 의지를 강조했는데?

“지난해 여름 시이오 세미나가 열렸다. 그해 실적과 다음해 계획을 발표하는 중요한 자리다. 이때 최 회장이 모든 시이오와 이에스지 경영에 관해 두달간 원온원 카운슬링(1:1 면담)을 했다. 초반에 발표한 시이오와 후반에 발표한 시이오의 이에스지 내용이 달랐다. 회장과의 만남을 통해 이에스지 경영의 글로벌 추세가 매우 빠르게 가고 있음을 절감한 것이다.”

―최 회장이 연초 ‘거버넌스(지배구조) 스토리’를 경영화두로 제시했는데, 지난 11일 이사회 중심 지배구조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외부에서 전화를 많이 받았다.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핵심은 시이오의 평가·보상·선임을 각 사 이사회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중이 60% 이상이다. 앞으로는 회장이 시이오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지배구조는 이에스지 중에서 지(G)에 해당하는 핵심 요소다. 이번 발표의 배경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돈이 120조원이다. 미국 배터리 공장 투자에는 30조원이 필요하다. 각 사가 벌어들이는 이익만으로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외에는 방법이 없다. 금융자본이 투자할 때는 반드시 이에스지를 본다. 환경(E)과 사회(S)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지배구조(G)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의 가치는 디스카운트(저평가)가 많이 됐다. 지정학적 요인도 있지만 지배구조가 큰 요인이다.”

―2003년 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때도 이사회 중심 경영을 선언했는데, 이후 총수일가 횡령 사건이 일어났다.

“글로벌 사태 이후 상대적으로 개선됐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사회 중심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거수기’ 지적을 받는 사외이사에 실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 사외이사 구성은 교수와 관료 중심이다. 앞으로는 좀 더 골고루 선임해야 한다. 선임 방식 개선도 이사회에서 논의 중이다.”

―재벌체제의 두가지 특징은 가족승계와 총수의 절대적 권한 행사다. 시이오 인사권을 실제로 이사회에 넘긴다면 총수 중심 재벌체제에 대전환이 이뤄진다고 볼 수 있는데?

“동의한다. 회장의 가장 큰 파워는 시이오 인사권인데, 그것을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엄청난 변화다.”

―최 회장은 이에스지 성과를 시이오 인사에 반영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시이오 인사를 아예 안 했는데, 올해 말 인사에서는 시행되는가?

“지난해 인사를 안 한 것은 회장과 이에스지 카운슬링을 처음으로 한 게 고려된 것 같다. 올해는 그룹에서 이에스지 평가 결과를 각 사에 넘기면, 이사회가 시이오 평가에 반영할 이에스지 비중을 10~50%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석유화학업체인 에스케이이노베이션처럼 업종의 특성상 탄소 배출이 많을 수밖에 없는 회사는 좋은 평가를 받기 쉽지 않은데?

“점수가 처음부터 우수한 회사도 좋지만, 처음에는 50점이었지만 피나는 노력을 통해 80점, 90점으로 높아진 회사를 더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노베이션 계열이 대표적이다. 배터리 사업을 새로 벌이고, 원유에서 만들던 플라스틱도 폐플라스틱을 활용한다. 모든 회사가 실질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려고 고민한다. 이런 공감대가 이뤄진 것이 큰 성과다.”

―정부도 공시제도 구축과 평가지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정부나 금융시장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11월에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비재무 정보 공시에 관한 지속가능 회계기준 기본원칙을 정하기 위해 국제지속가능성표준위원회(ISSB)를 만든다. 금융기관이 이에스지를 평가할 때 표준화된 방법으로 하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평가기준을 정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이에스지를 평가하고 활용하는 것은 글로벌 시장이다. 정부가 기준을 만들면 기업은 두가지 시험을 모두 봐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정부는 이에스지 평가가 시장 안에서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면 된다.”

―정부와 탄소중립위원회가 9일 2030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줄이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안을 냈다. 경제단체는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추진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하고, 시민단체는 너무 늦다고 맞선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많은 기업이 탄소배출량 감축목표 상향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되고, 탄소배출권 거래가격이 급등해 원가 부담이 커지면 어떻게 국제 경쟁을 하느냐고 걱정한다. 엄살이 아니고 현실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보면 온실가스 감축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큰일 난다. 탄소국경세 등 무역장벽이 현실화하고 있다. 에스케이로서는 탄소 감축은 꼭 넘어야 할 장애물 경기로 인식한다. 미국·유럽은 모두 뛰어나가 물을 건너는데, 우리만 무섭다고 머뭇거리면 골인 지점에 도달하는 시간이 늦어지거나 아예 낙오할 수 있다. 에스케이는 지금 뭐가 어찌 될지언정 일단 뛰고 보자는 각오다.”

―온실가스 감축이 국가나 국민만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과 상황이 다르다는 인식도 있는 것 같다.

“애플·월마트 등 세계적 기업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는 기업과는 거래하지 않기로 했다. 삼성이나 에스케이도 중소기업을 포함한 전체 서플라이 체인에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다. 모든 기업이 이에스지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질 수 있다. 이에스지를 먼 나라, 남의 이야기로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재계는 탄소중립 달성과 전기요금 인상을 막기 위해 탈원전 정책을 수정 또는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대응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싼 전기요금을 유지하기 위해 원전을 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원전에 대한 정의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린에너지다, 아니다 왔다 갔다 한다. 나라별로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너무 정치논쟁으로 가다 보니 논의가 제대로 안 된다. 다른 대안들과 비교해서 원전 금지 내지는 축소가 최상의 전략인지, 아니면 기업의 경쟁력을 살리고 경제 문제를 고려하는 게 최상인지 논의해야 한다.”

―두번째 방법은?

“지금 이대로 가면 전기요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탄소배출권 거래 가격도 단기간에 두배, 세배로 오를 것이다. 기업들이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법인세를 낮추든지, 다른 부담금이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주지 않으면, 결국 죽는다.”

―경제단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에도 반대한다. 최근 유럽연합(EU)이 ‘소셜 택소노미’를 발표했는데 인권보호가 핵심이다. 산업재해가 빈발하는 기업은 투자 유치와 거래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제대로 보지 않는 것 같다.

“이에스지에서 다른 거 아무리 잘해도 산업재해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금융시장의 투자액이 수천억원 깎일 수 있다. 기업들로서는 사고가 안 나게 하려면 투자를 해야 한다. 이에스지 경영에서 법적 기준 달성은 기본이다. 최고 등급을 받으려면 훨씬 더 높은 수준을 달성해야 한다.”

―상의는 회원사 요구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와 국민 이익도 살피는 균형추 역할을 했다. 다른 경제단체가 요청해도 경제와 국민의 이익에 배치되면 동참하지 않았다. 상의가 이에스지에서 다른 경제단체와 좀 더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최근 ‘대한민국 아이디어 리그’ 행사를 통해 국가 발전을 위한 국민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았다. 사회문제가 많이 있다. 기업이 여태까지 해야 했지만 안 했던 일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그다음은 기업이 하지 말아야 할 게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몇달간 이야기를 들었고, 지난 13일 서울상의 회장단 회의에서 그 결과를 놓고 토론했다. 연말까지 기업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 구체화하는 게 목표다. 지금까지 재계 스탠스에서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산업계와 재계가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한다. 재계가 원망과 비난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한겨레>가 20~21일 개최하는 제12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는 기후위기와 코로나로 인한 불평등 심화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공존을 위한 대전환’이 논의된다. 기업이 기여할 부분은 무엇일까?

“공존은 이에스지에 대단히 중요한 키워드다. 기업이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지 않는 게 우선이지만, 저탄소·디지털 경제로의 대전환 과정에서 고용 불안을 최소화하는 ‘저스트 트랜지션’(공정한 전환)도 실질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있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새로운 에너지와 기후환경 정책 예산의 15~40%를 공정한 전환 예산으로 책정했다. 우리나라는 매우 적을 것이다.”(정부는 지난 7월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을 내놨는데, 예산은 발표한 적이 없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녹취 김슬아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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