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21 아시아미래포럼>
인류에 내재된 ‘협력의 스위치’를 켜라

특별강연: 뤼트허르 브레흐만

홉스의 성악설, 인류 역사와 달라
대부분이 자발적 공존·공감 택해
‘문명’ 이후 권력자·언론의 선전 탓
왜곡돼온 인간 본성 ‘분출’시켜야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2017년 4월 테드(TED) 강의에서 ‘빈곤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강연했다. 유튜브 제공.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2017년 4월 테드(TED) 강의에서 ‘빈곤과 기본소득’을 주제로 강연했다. 유튜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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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골딩의 소설을 영화화한 &lt;파리대왕&gt; 포스터. &lt;휴먼카인드&gt;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파리대왕’의 실제 사례를 찾아내 소설속 전개와 달리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거나 공격적이지 않았다”라며 새로운 사실과 관점을 제기한다.
윌리엄 골딩의 소설을 영화화한 <파리대왕> 포스터.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파리대왕’의 실제 사례를 찾아내 소설속 전개와 달리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거나 공격적이지 않았다”라며 새로운 사실과 관점을 제기한다.

인간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각종 사회 제도와 교육의 목표와 방향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동양과 서양의 숱한 철학자들과 사회사상가들이 수천년 동안 다양한 답변을 내놓은 이 거대 질문에 대해 주목할 만한 답변이 새로 제시됐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휴먼카인드>를 펴낸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답변이다. 그는 “인간 본성은 이기적이지도 악하지도 않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품위있고 선한 존재다”라고 주장한다.

브레흐만은 오는 20일 개막하는 제12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위기, 인류에 내재된 ‘협력의 스위치’를 켜라’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한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광고없이 후원제로 운영되는 혁신적 독립언론 <드 코레스폰던트>의 창립 기자이자 역사학자다. 인류는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을 서로 협력하고 평등하게 공존해온 ‘꽤 품위있고 선한 존재’라는 게 브레흐만의 논지다. 심층보도 전문 언론인이자 역사학자답게 브레흐만은 널리 알려진 사건들의 진실을 직접 취재와 사료 조사를 통해 재조명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낸다.

브레흐만은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인다는 토머스 홉스의 사상은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자연상태에서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선행을 베푸는 공존과 공감의 존재인데, 그동안 권력자들과 언론에 의해 진실이 잘못 전달되어 왔다는 얘기다.

브레흐만이 근대 법률과 사회제도의 사상적 근거를 제공한 홉스적 성악설에 맞서 논지를 펼쳐나가는 방법은 독특하다. 성악설의 주장과 논리의 근거를 제공한 역사적 사건과 그 실체에 대한 추적과 접근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고 이를 통해 해당 주장을 공박하는 방식이다. 그는 저서에서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의 현실적 구현으로 언급된 1966년 표류 사건과 1차 세계대전 때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 ‘방관자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낸 1964년 뉴욕시 캐서린 제노비스 살인사건 등을 추적해,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사건에서 인간은 서로에게 선한 존재였고 기꺼이 돕는 관계였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메일로 진행한 사전 인터뷰를 통해 브레흐만이 펼치는 ‘협력하는 선한 인간’의 논지와 근거를 살펴본다.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는 관점이 왜 ‘급진적’ 견해인가?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못한다면 왕과 왕비, 관리자와 사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층적이고 관료적이며 불평등한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근본적으로 품위 있고 서로를 믿을 수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왕과 왕비, 경영자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 우리는 훨씬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선함을 믿는 것은 혁명적인 행위다.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견해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개념에 개반을 두고 학교, 직장, 민주주의와 감옥을 건설해왔다. 하지만 이는 많은 경우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사회와 국가의 지배적 이념이 홉스적 인간관이었지만 인류 역사에서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 복지는 지속 개선되어오지 않았나? 이는 홉스적 인간관이 잘 작동해왔으며 유용성을 보여주는 증거 아닌가?

“지난 200년간,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인류가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는 약 30만년 역사의 95%를 수렵채취인으로 살아왔다. 그 시기 상당히 평등하게 살았다는 고고학적·인류학적 증거가 많이 있다. 농업을 발명하고 도시와 마을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잘못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역사의 비극이었다. 문명은 우리에게 전쟁, 노예제도, 장시간 노동과 전염병을 가져왔다. 상황이 호전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핀란드·스웨덴처럼 가장 번영한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는 관점을 갖고 있다.

-폭격당한 도시의 시민이나 허리케인 카트리나처럼 재난 현장에서 자발적 연대 의식이 형성되는 현상이 있음에도 왜 재난이 극복되면 왜 그러한 연대의식은 사라지게 되는가? 어떠한 노력을 통해, 인류는 비재난 상황에서 공감과 연대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가?

“재난이 있은 지 몇 달 후에 즉각적인 연대감이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건 사실이다. 자연스런 현상이다. 1990년대 젊은이들 사이엔 냉소주의가 유행이었다. 지난 40년간은 이기주의와 경쟁이 지배적인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하지만 그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롭고 현실적인 시각에 입각해 연대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20년과 코로나19가 전환점이라면 놀랄 일도 아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서부전선의 크리스마스 휴전은 감동적이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이후로도 전쟁과 적대적 행위는 줄어들지 않았다. 무수한 전쟁과 적대적 행위의 역사 속에서 ‘크리스마스 휴전’ 사례가 인류의 평화 선호를 끌어내는 논거가 될 수 있는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전쟁은 예외였고 평화였다. 하지만 평화롭고 즐겁게 지내는 사람에 관한 뉴스보다 테러 기사가 많은 것처럼, 역사책엔 평화보다 전쟁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다. 역사가와 언론인들은 부정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은 특별하지 않았다. 스페인 내전과 보어 전쟁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고, 미국 남북 전쟁, 크림 전쟁, 나폴레옹 전쟁에서 비슷했다. 전쟁사 학자는 1914년 크리스마스를 ‘빙산의 갑작스런 등장’이라고 묘사했다. 전쟁 중엔 항상 평화가 분출할 ‘위험’이 있다. 정치인과 장군들은 이를 막기 위해 선전, 거짓말, 가짜뉴스, 무력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인간 두뇌는 전쟁을 선호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고고학자들은 전쟁이 지난 1만5천년 동안 아주 최근에 발명되었으며, 그 기간에도 예외였다고 말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사회와 국가의 역할은 더욱 두드러졌다. 백신 접종과 방역 지침 등에서 강한 사회적 압력과 통제를 적용한 동아시아국가들의 피해가 적었다. 국가와 사회가 공중보건과 치안을 위해 개인에게 더 많은 통제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개인들의 선의를 강조하고 자치를 위임하는 문화는 줄어들지 않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코로나가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권위주의적인 중국 정부가 바이러스에 대한 진실을 오랫동안 억눌렀다는 사실부터 인정하자. 만약 중국 과학자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존중되었다면, 전세계적인 유행병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만, 한국, 베트남, 싱가포르와 같은 나라들은 바이러스를 더 잘 막아냈고, 서유럽 국가들은 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후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환경 사이의 균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리더십이 훌륭하고 신뢰할 수 있다면 좀더 권위적인 접근이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권력은 매우 위험한 약이다. 민주주의는 그에 대한 해독제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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