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건강 불평등 분야 세계적인 학자 마이클 마멋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 김창엽 교수 이슈대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한겨레> 공동 주최
“미국, 남미, 유럽 등은 정책 시행으로 격차 줄여”

‘건강 불평등’은 2006년 <한겨레>가 국내 언론 사상 처음으로 기획기사를 내보낼 때만 해도 생소한 주제였다. 이제는 그때만큼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이를 당연한 현상으로 보거나, 정부나 사회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건강 불평등에 대한 인식은 왜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일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한겨레>는 최근 마이클 마멋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역학 및 공중보건학 교수와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을 초청해 대담을 열었다. 마멋 교수는 건강 불평등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석학으로 2005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 위원회’ 위원장과 세계의사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국내에서는 <건강 격차>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지난달 21일 열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창립 30주년 기념 학술대회 등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김창엽 소장 또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불평등 현황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연구와 실천을 꾸준히 해온 대표적인 학자로 명성이 높다.

이들은 대담에서 “건강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며, 사회통합을 해치는 불평등 현상으로, 사회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하고 해결 또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마멋 교수는 “제프 베조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세계 최고의 부자 세 사람이 미국의 소득 하위 50%에 속하는 1억6천만명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며 “모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건강에 있어서 형평성을 주장하는 것은 급진적인 논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특히 한국 상황을 언급하며 “한국에서는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발전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다, 대기업이 성장하면 결국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낙수효과’ 주장도 여전히 강하다”며 “새 정부에서도 건강과 보건은 사회정치적 우선순위가 낮은 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마이클 마멋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역학 및 공중보건학 교수(오른쪽)와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이 최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대담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마이클 마멋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역학 및 공중보건학 교수(오른쪽)와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이 최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대담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다음은 마멋 교수와 김 소장의 대담 요약이다.

김창엽(이하 김) 한국에서 불평등이 사회적 관심사가 된 것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그 가운데에서도 건강 불평등은 2000년대 초반인 것 같다. 하지만 사회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은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시급한 과제로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불평등 전반과 건강 불평등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우선 도덕적 차원 또는 가치의 문제로, 불평등이 ‘정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건강에 대해서는 이런 측면이 더 강하다. 또 한 가지 차원은 사회적·정치적 차원이다. 불평등이 심하면 사회는 나뉘고 갈등이 심해지며 통합성이 약화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심각한 불평등이 경제발전을 저해한다고 할 정도다.

마멋 먼저 모든 사람이 건강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개인 사이의 건강은 차이가 날 것이다. ‘유전자 로또’라는 말이 있듯 누군가는 장수하고 누군가는 조기 사망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건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서 어떤 사회적 특성에 따라 집단 사이에 건강 격차가 발생하고, 이것이 적절한 조처를 통해 피할 수 있는 격차라면 이것은 공정하지 않다. 왜 불평등이 중요한지는 사람들이 그런 격차에 대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부유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와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생애 기회가 달라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의 건강 불평등 보고서에서 제시한 최종 제안 세 가지 중 하나는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권력, 돈, 자원의 재분배가 필요하다는 제안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세계보건기구가 이런 종류의 제안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국제기구 기준에서 이런 종류의 통상적이지 않으며 어떻게 보면 정치적으로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 제안을 하는 부담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건강 불평등 논의를 ‘편향된’ 이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마멋 나는 스스로 그다지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보건기구 보고서가 권력과 돈과 자원의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일은 흔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놀라게 하려고 작정하고 한 제안이 아니며 그저 명백한 ‘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건강 불평등에 대한 가능한 모든 근거를 수집했고, 그랬더니 건강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권력, 돈, 자원의 불평등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을 뿐, 다른 수가 없었다.

건강 또는 건강 불평등은 여러 사회 불평등, 예를 들어 가난이나 비정규 노동 같은 불리한 조건이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체화’된 것 같다. 한국의 비정규 노동이 좋은 예인데,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보장되면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서는 소득 수준이 같아도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건강이 나쁘다. 비정규 노동은 소득 이외에도 고용 불안정, 자기 효능감, 자기 존중, 불확실성 등 건강에 해로운 여러 위험요인을 같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몸으로 나타나 건강 불평등으로 포착된 다른 예를 들어줄 수 있는지?

마멋 오랜 기간 관찰한 영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인데, 내가 책임을 졌다.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건강이 대체로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연구를 해보니 사회적 위계에 따라 건강에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직위가 높을수록 건강 수준이 좋고, 기대여명(평균수명)도 길었다. 건강 불평등은 가장 빈곤한 계층, 즉 가장 나쁜 환경에 있는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중산층이라도 전체 불평등이 줄어들면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라는 말을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다. 건강은 유전 등 타고난 것과 같은 요소 이외에도 소득, 교육 수준, 노동조건, 고용, 주거 등 여러 사회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쉽게 말해 가난이 대표적인 사회적 결정요인이라 하겠다. 그런데 사람들은 음주와 흡연 등 개인의 건강 행태나 건강식품, 명의, 명품 의료, 고급 건강진단에는 관심이 많지만 가난에 따른 건강의 구조적 문제에는 소홀하다.

우리 정부가 10년 전부터 공식적으로는 건강 불평등 해소를 정책 목표에 포함했지만 실제 시행되는 정책은 그리 많지 않다. 다른 나라는 정부가 먼저 나서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정책을 주도했다고 하는데 그런 정부의 동기는 무엇인가?

마멋 브라질에서는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룰라 정권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게 작동했던 것 같다. 룰라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건강 불평등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한 것이 단지 충분히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생각했다.

슬로베니아에서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체코를 비롯한 남동부 유럽 국가도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은 대체로 불평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이디어가 부족한 상황이고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외부의 자극이나 제안을 수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변화가 있다. 대만에서 우연히 미국 관료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세계보건기구의 건강불평등위원회나 보고서에 대해 전혀 들은 적이 없었는데, 그렇지만 중요한 보건 문제라며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말했다. 캘리포니아같이 진보적인 주도 아니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에서 온 보건 담당자가 우리가 주장하는 용어를 사용해 설명한다.

마이클 마멋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역학 및 공중보건학 교수.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마이클 마멋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역학 및 공중보건학 교수.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최근 영국에서 나오는 유명 의학 학술지인 <랜싯>에 2030년이 되면 한국 남성과 여성이 모두 세계에서 가장 긴 건강수명을 누리게 된다는 논문이 실렸다. 이는 한국 사회와 보건이 ‘성공’한 증거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것 같지는 않다. 주관적 건강 상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이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상의 삶도 어려움이 많고 사회적 불평등과 건강 불평등이 심해지는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점점 더 강해진다. 어떻게 보면 이런 역설 및 모순적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마멋 한국의 사회 및 경제 발전은 하나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아픈 나라에서 건강한 나라로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성취한 바에 대해 자랑스러워할 만하며, 건강수명의 증가 역시 경탄할 만하다. 하지만 경제와 건강수명이 성공의 잣대였다면 앞으로 무엇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지, 어떤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인지 정해야 한다. 미래에는 경제발전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는지, 삶의 질은 어떤지를 성공과 성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통역 및 정리 김새롬 서울대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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