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정책토론회]
주 52시간 준수가 화제가 되는 문화예술 노동 현실
법적 보호 사각지대에 방치된 ‘프리랜서’ 노동자
벨기에 ‘SMart’ 모델의 예술인 협동조합 대안 모색 
계약·행정 대행하고 프로젝트 사이 실업수당 추진
협동조합은 함께 문제 해결하는 집단적 보호장치
지난 1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8 간담회의 실에서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정책토론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8 간담회의 실에서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정책토론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10년이 흘렀지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2008년 8월 29일 새벽 ‘긴급출동 SOS 24’의 막내 작가가 서울 목동 사옥에서 투신한 일이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살인적인 노동강도가 비극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방송계 프리랜서의 노동환경은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하지만, 그 뒤로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6년 10월에는 공채 조연출 이한빛 피디가 세상을 등졌다. 유서에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2~3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라고 씌어 있었다. 프리랜서 노동자뿐만 이들을 관리하는 정규직 청년까지 심적 압박을 견뎌내기 힘든 상황이 이어져 온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주 52시간의 노동시간을 준수해 영화 <기생충>을 찍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는 건 방송계나 영화계의 험악한 노동 여건을 방증하는 사례이다.


예술활동만으로는 생계 유지 버거운 프리랜서 노동자


이들이 노동하면서도 근로기준법 등에 따른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것은 법적 근거조차 애매한 ‘프리랜서’라는 지위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방송사 관계자의 지휘를 받으며 일을 하지만, 최저임금이 지켜지지 않아도, 초과근무수당을 주지 않아도, 계약서 없이 일하다 갑자기 출근하지 말라고 해도, 임금이 체불되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월급제 노동자를 중심으로 짜여있는 노동관계법상 전업예술인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프리랜서를 보호할 장치는 찾기 어렵다. 방송· 영화계에 종사하는 창작자들이 이처럼 극한의 노동강도에 시달린다면, 연극이나 문학, 미술, 무용 등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은 단기 프로젝트 위주의 불안정한 일감과 저임금, 체불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일이 많다. 예술활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버거운 것이 프리랜서 예술인들의 현실이다.

1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8 간담회의 실에서 설훈 의원, 안민석 국회의원, 윤일규 국회의원실이 주최하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일하는사람들의협동조합연합회가 후원한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임병덕 씨엔 협동조합 이사장이 ‘예술인 프리랜서 현황 및 우산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1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8 간담회의 실에서 설훈 의원, 안민석 국회의원, 윤일규 국회의원실이 주최하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일하는사람들의협동조합연합회가 후원한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임병덕 씨엔 협동조합 이사장이 ‘예술인 프리랜서 현황 및 우산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협동조합을 통해 문화예술인 프리랜서의 노동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는 세미나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지난 1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설훈, 안민석, 윤일규 국회의원실이 주최하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일하는사람들의협동조합연합회가 후원해 열린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정책토론회’가 그것이다.


이 자리에서 임병덕 씨엔 협동조합(CN COOP) 이사장은 벨기에에서 예술인들이 직접 만들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한 스마트(SMart) 협동조합 사례를 소개하며 ‘한국형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활성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스마트 협동조합은 프리랜서 조합원과 사업을 의뢰한 고객 사이에서 계약행정과 사업관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인에게 행정서류 작업의 부담을 덜어줘 본연의 창작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창작활동을 위한 공간·장비·네트워크 등의 인프라 지원과 지급보증기금·사회보험 혜택·비즈니스 관련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임 이사장은 한국형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의 기능으로 “계약, 회계, 재무, 법무, 공간, 네트워크, 지급보증기금, 사회보험 혜택, 비즈니스 관련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꼽았다. 그는 특히 프로젝트 사이의 실업기간을 ‘연습 기간’으로 설정해 실업급여 등을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단기 프로젝트가 많은 문화예술계의 특성을 고려해, 프로젝트 사이의 실업기간을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공식화하자는 것이다. 임 이사장은 “예술인들이 연습(실업) 기간에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초단시간 근로 등 실업급여 자격 구간을 신설하자”며 “이에 근거해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을 통해 최소 2대 보험(고용 및 산재보험) 등 사회보험 혜택을 주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세전 소득 월 25만원을 기준으로 지금처럼 프리랜서로 일할 때와 ‘연습 기간’의 혜택이 주어지는 협동조합원으로 일할 때를 대비해 설명했다. 대학로 배우만으로 연 소득 500만원을 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월 25만원 기준이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표를 보면 예술인 입장에서 당장 협동조합에 가입해 각종 사회보험과 조합비, 자조 기금으로 빠져나가는 금액이 커 보이지만, 실업급여 자격 요건 충족 시 90일간의 실업급여와 교육훈련 등으로 다음 창작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여건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임병덕 씨엔 협동조합 이사장이 발제문에 수록한 표. 세전 소득 25만원인 예술인이 개인 프리랜서로서 일할 경우와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일할 경우의 비용과 수익을 비교해 제시했다. (단위: 월)
임병덕 씨엔 협동조합 이사장이 발제문에 수록한 표. 세전 소득 25만원인 예술인이 개인 프리랜서로서 일할 경우와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일할 경우의 비용과 수익을 비교해 제시했다. (단위: 월)


사업을 의뢰한 고객이 근로자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협동조합이 예술인과 직접 용역계약을 하고, 실업급여 자격 요건 구간을 고려해 근로자와 프리랜서의 이중 지위를 부여해 예술인들이 기초적인 사회보험을 이용하도록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임 이사장은 또 프리랜서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중소기업 복지지원단이 제공하는 혜택 등 각종 공공복지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예술인들이 기관의 관리를 받으며 근로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개 프리랜서 사업주로 인식되면서 정부가 제공하는 근로자의 혜택을 이용하지 못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덧붙여 임 이사장은 참여 예술인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는 예술인 협동조합 관련 세무 규정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을 파견업으로 바라볼 경우 10%의 부가세를 내야 해 현재는 주로 면세 사업자로 일하고 있는 그들을 보호할 길이 없다. 이 경우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과 계약한 극단이나 면세 사업자들이 부가세를 부담하거나, 예술인들이 급료를 10% 깎이며 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는 “협동조합이 행정을 대행하고, 근로자에게 이중 지위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세무 당국이) 행정대행의 새로운 업무편성으로 세금을 부담하는 구간을 새롭게 설정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예술인 노동 문제 해소를 위해 힘써 온 김상철 예술인소셜유니온 운영위원은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이 복잡한 제도적 매듭을 풀어가는 ‘과정적 해법’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는 “정공법으로 예술인의 노동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지만, 현존 노동보호 체계에서 많은 쟁점에 부닥쳤고, 실현까지 걸리는 시간도 매우 긴 게 현실”이라며 “제도상의 약간의 융통성이 있다면 몇 가지 정책과제를 통해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협동조합은) 기존 사회정책에서 표집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제된 예술인들을 공식적인 정책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매개조직으로서도 유의미하다”며 예술인들이 자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정부에서도 정책과 제도적 융통성을 발휘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협동조합은 공제 기능도 제공


최영미 일하는사람들의협동조합연합회 정책위원장은 “프리랜서가 협동조합으로 결합하는 큰 이유는 안정된 일거리를 얻기 위함”이라며, “온·오프라인에서 함께 모여 정보도 주고받고, 개인이 뛰어다니며 계약하는 게 아니라 협동조합이라는 집단의 힘으로 법인격의 지위에서 공공계약도 맺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협동조합의 가장 큰 역할은 집단적 보호장치라는 뜻이다. 그는 “문화예술인들이 상호부조기금, 혹은 공제를 통해서 사회적 위험에서 자기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협동조합은 공제 기능을 수행하는 좋은 도구”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8 간담회의 실에서 열린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정책토론회’ 지정토론자로 나선 송윤석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장은 “문화예술계가 처한 독특하고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방안으로서 협동조합 방식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1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8 간담회의 실에서 열린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정책토론회’ 지정토론자로 나선 송윤석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장은 “문화예술계가 처한 독특하고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방안으로서 협동조합 방식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예술인 프리랜서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여러 모로 정책적 지원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토론을 한 박일훈 기획재정부 협동조합과장, 송윤석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장 모두 “협동조합 방식의 예술인 지원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해나갈 예정”이라며 의지를 밝혔다. 박완근 노동부 고용정책총괄과 서기관은 “예술인의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대표 발의)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토론에서 이종승 공연예술인노동조합 위원장, 지원준 (사)한국독립피디협회 사무국장, 표중식 (사)한국문인협회 사무총장, 김종덕 한국무용협동조합 춤에든 이사장은 한 목소리로 “전업예술인 중 76%가 프리랜서 계약을 하고 있다. 예술인들의 참여와 조직화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통로가 정책적으로 제대로 마련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글·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181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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