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국갈등학회, 한국조사연구학회가 공동주최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가 지난 5일 서울중앙우체국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조창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연구원 huni@hani.co.kr
“향후 사용후핵연료 정책 재공론화를 통해 주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겠다.” 지난 9월 경북 경주를 방문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말이다.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2013년 10월부터 20개월에 걸친 공론화를 통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을 수립했고,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태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 자체에 민주성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은 탓에 문재인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시 추진되는 공론화는 어떤 과정을 밟아야 절차적 정당성을 얻고, 그 결과가 국민 대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까? 한국원자력환경공단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국갈등학회, 한국조사연구학회가 그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는 5일 서울 충무로 서울중앙우체국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1기 공론화 실패…공론조사를 수단으로 본 정부
공론화의 기본 목적은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체계적으로 모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진행한 공론화는, 국민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을 실행하는 수단으로 이용돼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당시 시급한 과제였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확충 혹은 부지 선정 문제를 해결하려고 공론화를 선택함으로써, 당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동의하지 않는 집단은 그 이슈의 범위에 동의할 수 없었다. 공론화위원회가 정부 정책을 둘러싼 찬반 주도권 차원으로 구성되면서 국민 의사의 다양성과 질적 차이를 반영할 여지가 사라지고, 그 논의 결과의 수용성에 원천적으로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14년 11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위한 의제’를 발표하며, 2055년까지 영구처분 시설과 그 이전 중간저장시설 설치 방안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중간저장시설의 필요성, 핵폐기물 최종처리 방안 등 보다 폭넓은 의제를 두고 공론화하기를 원했던 시민단체 쪽의 의사와 동떨어진 결정이었다. 결국 시민단체 쪽은 위원회에 불참했고, 최종권고안 제출 때는 위원 15명 중 9명만 남아 ‘반쪽짜리 공론화’로 마무리됐다.
박 소장은 공론화를 통해 전체 의견을 통합해가는 ’공화주의적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 소장은 “지난번 공론화위원회는 일반국민, 전문가, 시민·환경단체, 지역주민 사이에 원자력발전소와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다양하게 상충하는 상황에서, 각각의 의견을 체계적으로 조직할 역량이 준비되지 않은 채 모든 사람이 자기 목소리만 내는 공간이었다”며 “공화주의는 처한 입장은 다르지만 공동체 전체 의견을 모으는 일인 만큼 재공론화는 배제된 사람, 이해관계자, 전문가, 대통령 의견까지 모두 공동체의 의견으로 통합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한 투명한 정보공개, 열린 결론 도출 등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수용성 높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로부터 대표성, 숙의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배워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공론조사 전 신고리 5·6호기의 가동 재개와 중단 의견은 팽팽하게 갈렸지만, 조사 결과의 수용성은 매우 높다. 시민참여단 471명은 ‘최종결과가 본인 의견과 다를 때 결정을 존중하느냐’는 질문에 93.2%가 ‘존중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를 수행한 김춘석 한국조사연구학회 이사는 “공론화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대표성과 숙의성”이라고 강조했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대표성을 높이려고 2만명이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1차 조사를 실시했으며, 시민참여단도 471명에 이르렀다. 김 이사는 “전 세계 공론조사 중 가장 많은 수가 참가한 조사”라고 평가했다. 한 달에 걸친 숙의 과정은, 자료집과 종합토론에 오리엔테이션, 인터넷 동영상 자료 등을 추가해 밀도를 높였다. 그 결과 시민참여단만을 대상으로 한 질의·응답에서 질문이 116개가 올라와 높은 열기를 보였다.
지역주민 등 이해관계자 위원회에 포함해야
시설 인근 지역주민 등 이해관계자의 공론화위원회 참여 여부도 향후 공론화위원회 구성의 핵심쟁점이다. 지난 정부 때는 공론화위에 이해관계자가 참가했고(1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엔 중립적 전문가만 포함됐다(2안). 정주용 한국교통대 교수(행정학부)는 “1안은 이해관계자가 포함돼 전문성이 있고, 핵심쟁점을 다룰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과거처럼 위원들이 갈등을 빚거나 사퇴하면 상황관리가 어려울 수 있다. 2안은 위원 선정 관련 시비는 적지만 결과가 이해당사자와 다를 경우 사후적 갈등이 예상된다”고 장단점을 짚었다. 그러면서 “(어떤 안을 선택하든) 재공론화 추진 전에 실무논의체를 꾸려 과거의 시행착오를 검토하고, 의견수렴 대상자들과 함께 충분히 회의해 공론화 과정의 이견조율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토론 패널로 참석한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이해관계자가 공론화위원회에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이들과 충분히 논의해 납득할만한 결론에 이르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이해관계자에는 방폐장이 들어서는 울산 울주군 서생면 주민뿐 아니라 미래세대, 인근 대도시인 부산·울산·경남 주민들까지 있다”며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창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연구원 hu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