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보건·돌봄·택배 등 ‘대면 노동’
재난 시 사회 유지에 꼭 필요하지만
저임금·고용불안·과로에 ‘시름’

성동구 ‘필수 노동자 조례’ 첫 제정
위험수당·안전장비 등 지원 추진
“광역단체·중앙정부로 확대 필요”

플랫폼 등 불안정 노동자 확산
공제조직 활성화로 빈틈 메워야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차량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역 인근에서 과로사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내건 채 도로를 달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차량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역 인근에서 과로사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펼침막을 내건 채 도로를 달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비대면’(언택트)이 뉴노멀이 된 시대다. 8개월째에 접어든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 사회의 풍속도를 바꿔놓았다. 원격수업, 재택근무, 방구석 콘서트, 랜선 여행, 홈코노미(집에서 온라인으로 소비 활동을 하는 행태), 온택트(온라인을 통한 접촉)….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비대면’만으로는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안전한 ‘집콕’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연결’을 해줘야 한다. 택배 노동자가 한 예다. 보건의료, 돌봄노동처럼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대면 접촉을 해야 하는 일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안전한 삶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위험한 노동에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영국·캐나다 등 외국에선 감염병을 비롯한 재난 상황에서도 사회 기능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을 수행하는 이들을 ‘필수 노동자’(에센셜 워커) 또는 ‘핵심 노동자’(키 워커)라고 부르며 보호와 지원을 해주고 있다. 대체로 의료·돌봄·보육·치안·교통·물류 분야 종사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필수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다. 더욱이 ‘필수 노동’에 해당하는 업무의 상당수는 ‘저임금·불안정 노동’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진다. 돌봄·택배·배달 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요양 서비스는 사회에 꼭 필요한 노동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그림자 취급을 해왔다.”

방문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노우정(50)씨는 돌봄노동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천박하다고 꼬집었다. 국가가 필요성을 인정해 사회서비스의 하나로 제공하는 사업임에도 정부가 공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고, 그러다 보니 돌봄노동 자체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 고용 불안은 당연한 귀결이다. 전국요양서비스노조 서울지부장이기도 한 그는 “올봄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을 때, 대면 접촉을 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마스크 지급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지자체들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요양보호사들이 알아서 마스크 구입과 소독 등 개인 방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요양 수급자나 그의 가족이 ‘감염될까 불안하다’며 서비스 중단을 요청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필수 노동자의 그림자 노동에 대한 존중과 그 가치에 대한 사회적인 재평가”(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6일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등이 연 ‘코로나 시대의 노동과 사회적 경제’ 정책 토크 콘서트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지난 16일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등이 연 ‘코로나 시대의 노동과 사회적 경제’ 정책 토크 콘서트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 필수 노동자 지원 첫발

국내에서도 ‘필수 노동자’라는 개념을 도입해 그들을 지원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서울 성동구가 지난 10일 공포한 ‘필수 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그것이다.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첫 사례다. 이 조례는 필수 노동자를 ‘감염병 등 각종 재난 발생 시에도 주민의 안전 및 최저생활보장 등 사회 기능 유지를 위해 대면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노동자’로 규정했다. 의료·돌봄·복지·안전·물류·운송 등의 업무를 적용 대상으로 열거해놓았다. 조례에는 필수 노동자 보호 및 지원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 실태조사, 근로조건 개선과 재화·서비스 제공 등을 위한 근거 조항이 포함돼 있다.

지난 16일에는 필수 노동자 지원제도에 대해 논의하는 정책 토크 콘서트 자리도 마련됐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와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등이 ‘코로나 시대의 노동과 사회적 경제’를 주제로 연 토크 콘서트에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직접 참석해 필수 노동자 조례를 제정한 배경과 필요성 등에 대해 발표했다. 이날 토크 콘서트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 채 진행됐으며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정 구청장은 “요양원 등에서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와 배달 물량 증가로 과로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 등이 없었다면 우리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이런 필수 노동이 멈추면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곳부터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초단체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광역단체와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관심을 호소했다.

성동구는 새로 제정된 조례에 따라 돌봄·보육 등 공공 부문의 필수 노동자들에게 위험수당을 지급하고 안전장비와 심리치료 등의 지원을 할 계획이다. 민간 부문은 기업들과 협약을 맺어 자발적인 처우 개선을 유도하기로 했다. 협약을 맺은 기업에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박정환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 정책국장은 “성동구의 필수 노동자 지원 조례는 의미 있는 모범 사례”라고 평가하면서도, 배달 노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플랫폼 노동자 등 다양한 고용 형태를 포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동구 조례가 적용 대상을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로 제한하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또 코로나 시대에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는 필수 노동자에게도 예외일 수 없으며, 위험수당이 이들의 안전할 권리를 대체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최근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택배 노동자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에 이르렀다. 코로나19로 늘어난 업무시간에 대해선 ‘30% 늘었다’는 응답이 36.2%로 가장 많았다. 택배 물량이 급증하면서 올해 들어서만 택배 노동자 7명이 과로로 숨졌다.

코로나 방역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보건의료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오선영 전국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올해 실태조사에서 간호사의mmmmm 85%가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고, ‘최근 3개월간 이직을 고려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78%나 됐다”며 “인력 부족은 환자의 안전 및 생명하고도 직결된다”고 밝혔다. 그는 “제2, 제3의 코로나가 와도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되지 않게 하려면 인력 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이해식·김영배 의원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필수 노동자 지원 정책이 제도화될 수 있도록 입법 등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 불안정 노동의 버팀목, 공제회

이날 토크 콘서트에서는 비대면 시장이 커지면서 갈수록 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를 돕기 위해 노동자 공제회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김형탁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은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다, 최근 들어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등 기존의 법과 제도로는 포괄할 수 없는 영역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이들처럼 조직화가 어려운 노동자들에게는 각종 생활과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제회가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산재 등 각종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불안정 노동자에게 보완적인 사회보장체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지연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경영기획실장도 “지금까지 사회적 경제는 노동 환경의 변화에 맞춰 소비자협동조합, 공제조합, 노동자협동조합, 플랫폼협동조합 등으로 발전해왔다”며 “경제·사회 환경 변화가 가속화하는 지금이 이해관계자 참여, 사람 존중과 같은 사회적 경제 원칙들이 다시 빛을 발할 수 있는 시기일 수 있다”고 짚었다. 장 실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이 불안정 노동자에게 집중되면서 고용보험을 중심으로 하는 실업부조망의 사각지대가 드러나고 있다. 생계자금 소액 융자 사업을 통해,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불안정 노동자들이 소유하는 다양한 단위의 자조적 결사체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연대기금은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의 지원을 받아 소액대출을 통한 노동자 공제회 육성 사업을 이달 중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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