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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강연: 디지털시대 사회적 신뢰 어떻게

노리나 허츠
개인의 우울, 사회적 위험으로 번져
정치적 극단주의 불러 민주 역행

정부가 의도적으로 ‘고립’ 의제화해
경제지표 외에 정서지표도 만들고
공동체 형성되도록 지원할 필요
IT기업 사회적 책임 더 부여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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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 사람을 직접 만나 대화하지 않고 생활해야 한다면 어떨까? 아마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하는 이들이 꽤 많을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겪으며 비대면 생활에 많은 이들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배달 앱’으로 주문·결제하면 배달원과 마주치지 않고도 음식을 받을 수 있다. 줌(Zoom)과 같은 화상 회의 도구를 활용하면 굳이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수업을 듣거나 일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심지어 운동·취미 모임 등도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진행 가능하다. 우리는 방 안에서 누구와 접촉하지 않고도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애석하게도, 비대면 생활의 편리함은 사회적 관계와 유대감 등을 잃고 얻은 대가다. 기술이 모두를 촘촘하게 연결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개개인이 분리되면서 각자가 느끼는 외로움은 심화됐다. <고립의 시대> 저자인 노리나 허츠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는 “(팬데믹 기간 동안) 사회적 결핍이 심해지면서 점차 ‘면 대 면’으로 만나고 싶어하는 욕구가 늘어났다. 최근 사람들이 여러 음악 페스티벌, 대면 모임 등에 몰리는 것이 그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립’의 문제를 개인적 우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위험의 관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다.

10월4일 영국 런던 자택에서 만난 그는 “외로움은 정치적으로 극단주의를 조장해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올 뿐 아니라 경제에도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노리나 허츠는 11월10일 열리는 ‘제13회 아시아미래포럼’의 두번째 세션 ‘디지털 시대, 새로운 신뢰는 가능한가’에서 기조 연사로 나서 발제할 예정이다.


노리나 허츠
노리나 허츠

허츠가 정의하는 ‘외로움’은 친구·연인·가족 등 친밀한 관계가 단절된 느낌이나 우울·불안·쓸쓸함 등에만 그치지 않는다. 세계화, 불평등 심화, 경제위기, 기술 발달 그리고 코로나19 등을 거치면서 외로움의 형태는 달라졌다. 외로움은 이제 “정치인과 정치로부터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일터에서 소외된다는 느낌, 사회 기준만큼 소득을 벌지 못해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힘없는 존재라 무시받는 느낌”까지 아우른다. ‘우리’를 강조하며 소속감을 제공하는 극단주의자들에게 외로운 이들이 표를 던지는 이유다. 이러한 단절은 사회적 신뢰를 쌓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허츠는 “보통 외로움을 측정할 때 ‘당신은 얼마나 외롭나’를 직접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얼마나 되는지,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의지하는지 등을 묻는다. ‘외로움’을 정의할 때 신뢰가 부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소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결국 고립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는 건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엇이 필요할까. 허츠는 온라인, 특히 소셜 미디어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동시에 다양한 사람이 오프라인에서 만나 어우러질 수 있는 장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에 ‘메타버스’가 각광을 받았지만 이렇게 디지털 교류가 활성화하는 걸 독려하는 분위기를 재고해 봐야 한다. 특히 소셜 미디어가 중독적으로 설계돼 있어 미성년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점을 고려하면 정보기술(IT) 기업에 적극적으로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향도 검토해야 한다.”

그는 페이스북·스냅챗·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지금보다 더 큰 사회적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진행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사용과 외로움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소셜미디어 사용량이 많은 청소년일수록 또래보다 외로움을 더 많이 호소하는 연구 결과, 소셜미디어 사용량을 플랫폼당 하루 10분으로 제한했더니 외로움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 등이 있다.” 온라인 소통에 집중하는 사이, 현실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잊어버린 세대도 등장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한 대학교에선 ‘표정 읽는 방법’이란 보충수업이 개설되기도 했다. 대학 신입생 상당수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표정 등 여러 단서를 읽어내지 못하는 점을 우려해서다.

휴대전화 화면에서 벗어나 현실로 나아갈 때 고립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허츠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일관되게 사람들과 더 접촉할 것, 공동체적 가치를 회복할 것, 돌봄·온정·포용의 관점에서 자본주의를 재편할 것 등을 주장한다. 그는 특히 서로 다른 계층과 집단의 사람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인프라가 정책적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동체 모임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시카고 공공도서관은 대표적으로 참조할만한 사례”다. 이곳에선 서로 다른 세대, 사회경제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책을 읽고, 영화를 관람하고, 담소를 나눈다. 임대 주택에 사는 아이나 민영 아파트에 사는 아이나 똑같이 환영받는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도록 인프라를 만드는 데 정부의 ‘의도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플랫폼 노동’, ‘0시간 계약’ 등 불안정한 노동 형태가 ‘뉴 노멀’이 된 시대에 외로워진 노동자들이 뭉칠 수 있도록 노조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다. 그는 “‘긱 경제’가 대두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노조의 힘이 떨어지고 있긴 하지만 오히려 이를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무노조 경영’을 이어오던 아마존에서 노조가 만들어진 것은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외로움을 느끼는 노동자일수록 생산성도 떨어지고 이직률이 높으며 회사에 대한 충성도도 저하될 수 있다는 점을 고용주도 인지해야 한다. (노조 등을 통해) 의도적으로 노동자들 간 유대감을 늘리는 시도가 오히려 기업을 경영하는 차원에서도 이익이 된다.”

허츠는 이같은 고립과 단절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네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하나는 정부가 적절한 예산을 투입해 ‘고립’을 정치적 의제로 만드는 것, 두번째는 도서관·카페·공원 등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서 교류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정부나 지자체 등 여러 주체가 만들어주는 것이다. 세번째는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가 발표했듯 국가의 예산과 정책 목표를 수립할 때 성장률, 생산성과 같은 경제적 지표 뿐 아니라 친절, 온정과 같은 사회적 인식과 삶의 질 등을 지표로 반영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중독성을 따지면 21세기 담배산업과 같은” 소셜 미디어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는 일이다. 허츠 교수는 “한국이 겪는 여러 문제는 결코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정치, 기업 등 여러 주체가 ‘외로움’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런던(영국)/박다해 <한겨레21> 기자 doall@hani.co.kr


노리나 허츠

· 1967년생 영국 국적

·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

· 다위센베르흐 금융전문대학원, 로테르담 경영대학원 글로벌 전략부문 교수

· 케임브리지대 국제비즈니스경영센터 부소장

· <가디언> 선정 ‘영국 최고의 지식인'


한겨레에서 보기 :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662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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