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미래포럼 기획] 미리 만나보는 주요 연사 
② 리처드 윌킨슨 노팅엄대 명예교수

능력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
불평등이 사회적 이동 가로막아
교육이 되레 부 대물림 통로로
모두를 위한 핀란드식 교육 바람직

불평등에 맞서 경제민주주의로
재분배 앞서 원천적 분배 힘써야
기술혁명이 불평등 심화 못하게
샌더스·코빈 지지 젊은이들이 희망
에서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더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분석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한겨레> 자료사진" alt="리처드 윌킨슨 노팅엄대 사회역학 명예교수는 대표작 <평등이 답이다>에서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더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분석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한겨레> 자료사진" style="border: 0px; margin: 0px; padding: 0px; width: 643px;" editor_component="image_link">
리처드 윌킨슨 노팅엄대 사회역학 명예교수는 대표작 <평등이 답이다>에서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더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분석해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한겨레> 자료사진

오는 30~31일 이틀간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제9회 아시아미래포럼이 열린다. ‘대전환: 불평등, 새로운 상상과 만나다’를 주제로 내건 올해 행사의 기조강연자 4명을 미리 만나본다.

요크의 기차역까지 손수 마중을 나온 리처드 윌킨슨 교수와는 서로 금세 알아보았다. 그는 경제학자가 불평등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진다니 반갑다는 인사말부터 꺼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그의 집에서 불평등을 소재 삼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부인인 케이트 피킷 요크대 보건학과 교수도 자리를 함께했다. 학문적 동지이기도 한 두 사람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더 스피릿 레벨>(The Spirit Level. 국내엔 <평등이 답이다>란 제목으로 출간)을 펴냈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더 많이 아프다는 메시지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피킷 교수도 9번째 아시아미래포럼 이틀째 ‘건강 불평등,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주제로 발표를 한다.

윌킨슨 교수는 지난 6월 <더 이너 레벨>(The Inner Level)이란 제목을 단 후속작을 역시 피킷 교수와 함께 펴냈다. 두 사람은 이 책에서 불평등이 불안과 스트레스 등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를 더욱 깊이 파고들었을 뿐 아니라 불평등이 어떻게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사회통합을 저해하는지 분석했다. 불평등의 효과에 관한 최신 과학적 연구 결과도 집대성돼 있다.

―불평등은 개인과 사회에 모두 나쁜 것이란 결론인가?

“그렇다. 불평등은 사회적 평가 압력을 강화해 지위 불안을 심화하고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불평등한 나라일수록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술에 빠지고 도박이나 쇼핑에 더 많이 중독되는 이유다.”

―개인만의 문제로만 볼 수도 없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사회적 만남과 상호작용을 더욱 피곤하게 생각하고 공동체 활동을 줄인다. 신뢰가 낮아져 사회적 통합도 저해된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은 서로 믿고 돕지만, 불평등하면 불안에 시달리고 경비노동도 많아진다.”

■ “능력이 사회적 지위 결정하는 것 아냐”

―불평등은 사회적 이동성에도 영향을 준다.

“최근의 많은 연구에서 불평등이 매우 어린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교에 가기 전 유아들의 인지능력과 상호작용 능력은 환경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결국 어른들 사이의 불평등이 부모의 소득과 양육 능력의 차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그대로 효과를 미친다.”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 교수 부부가 자신의 집 정원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이강국 교수 제공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 교수 부부가 자신의 집 정원을 배경으로 웃고 있다. 이강국 교수 제공
피킷 교수도 이 대목에서 “그러니 공공정책은 아이들이 매우 어린 시기, 아니 엄마의 임신 시기부터 개입해 불평등을 줄이고자 노력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가릴 것 없이 대부분 기회의 평등을 지지한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결과의 평등이 기회의 평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간과하는 것 같다.

“맞다. 그래서 타고난 능력이나 노력이 성공과 부로 이어진다는 능력주의를 반박하는 장을 새 책에 넣었다. 여러 연구를 보면 능력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과관계가 오히려 정반대로 보인다.”

그는 영국에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 성적은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반면 부자 가정 아이들은 성적이 높아진다며 흥미로운 사례 하나를 들었다. “‘스테레오타입 위협’이라 불리는 실험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낮은 계층이나 유색 인종임을 인식시키면 시험 성적이 떨어진다고 보고한다.” 논란의 여지는 있겠으나, 경제학계에서도 과학적 증거가 쌓이는 중이다. 지난달엔 유전자 데이터를 활용한 한 경제학 실증연구가 발표됐다. 재능 있는 아이들은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모두에서 비슷하게 태어나지만 가난한 아이들이 부잣집 아이들에 비해 대학을 졸업할 확률은 크게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 해결책으로 교육을 강조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교육이 오히려 부를 대물림하고 불평등을 심화하기도 한다.

“어떤 교육인가가 중요하다. 공교육으로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핀란드와 같은 방식이 불평등 해결에 바람직하다. 유럽에서 핀란드 학생들의 수학 능력이 가장 높다. 다만 학교 순위나 한가지 능력만을 과도하게 신경 쓰면 오히려 격차를 확대할 수 있다.”

부쩍 우려가 커지고 있는 로봇 등 자동화 기술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윌킨슨 교수는 “기술변화가 인류에 엄청난 도전”이라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엄청난 불평등과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꽤 비관적인 것 같다.(웃음)

“기술혁신이 사람들을 일로부터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술변화에 대응해 보편적 기본소득, 일자리 나누기, 노동시간 단축이 중요하고, 특히 기술 독점으로 엄청난 이윤을 챙기는 거대 기술기업들에 대한 통제도 필요하다.”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며,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극심한 불평등도 사람이 만들어냈고, 우리 스스로 고쳐내야 할 것이며, 결국 정치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국에서 ‘평등한’ 성장의 기초가 됐던 농지개혁도 공산주의의 위협과 관련된 정치적 요인이 컸다는 점,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불평등 개선도 정치 변화와 관련이 있었다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표지." alt="지난 6월 출간된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의 최신작 <더 이너 레벨> 표지." style="border: 0px; margin: 0px; padding: 0px; width: 177px;" editor_component="image_link">
지난 6월 출간된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의 최신작 <더 이너 레벨> 표지.
■ “원천적 분배의 변화가 특히 중요”

―극우 포퓰리즘이 인기를 얻고 자유민주주의가 약화하고 있는 현재의 정치 상황을 볼 때, 과연 낙관만 할 수 있을까?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불평등은 장기적으로 하락했는데 좌파 정당과 노동조합의 역할이 컸다. 과거와 같은 정치나 노동운동의 부활은 물론 쉽지 않다. 불평등에 맞서려면 경제민주주의가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민주주의를 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동자가 기업을 대표하고 기업의 지분을 소유하는 종업원지주제나 협동조합 등의 경제민주주의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재분배 이전에 1차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금과 복지를 통한 재분배보다도 원천적 분배의 변화가 불평등 개선에 특히 중요하다. 경제민주주의의 확대는 평등주의를 사회에 널리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재활성화할 수 있을 거다.”

여전히 의심스러운 표정을 거두지 못했다. 피킷 교수가 희망의 근거를 이야기했다. “먼저 젊은이들을 봐라. 그들은 이제 버니 샌더스나 제러미 코빈을 지지하고 사회주의자라 말하며 풀뿌리 정치운동을 발전시키고 있다. 둘째, 위기 이후 10년이 지났다. 아직 근본적인 전환은 없지만 이제 많은 학자와 국제기구조차 불평등에 주목하고 소득보다 행복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이 터닝포인트(전환점)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새로운 과학적인 연구들이 여러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리처드 윌킨슨 교수와 케이트 피킷 교수 부부는 예정된 대담을 끝낸 뒤 요크의 로마 성벽을 직접 안내하며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강국 교수 제공
리처드 윌킨슨 교수와 케이트 피킷 교수 부부는 예정된 대담을 끝낸 뒤 요크의 로마 성벽을 직접 안내하며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강국 교수 제공
윌킨슨과 피킷 두 사람은 뛰어난 학자이자 동시에 실천가이기도 하다. 지금껏 셀 수 없는 강연을 다녔고, ‘평등재단’(Equality Trust)을 만들어 열정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과의 만남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겼다. 식사 후 윌킨슨 교수는 요크의 로마 성벽으로 이끌었다. 아프리카 출신인 요크의 대주교가 불평등과 빈곤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며 요크시가 생활임금 조례를 도입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저녁. 케임브리지로 돌아오는 길, 요크역 앞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맥주를 한잔씩 걸치는 사람들, 데이트하는 젊은이들, 나란히 손잡고 웃으며 걸어가는 할머니와 아기…. 모두가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일상이야말로 우리가 불평등을 이겨내야 하는 이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 경제학부 교수

△리처드 윌킨슨 약력

1943년생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영국 노팅엄대학

1980~2008년 노팅엄대 사회역학 교수

2008년~현재 노팅엄대 사회역학 명예교수, 런던대학교 공공건강과 역학 명예교수, 요크대학 초빙교수

2009년 케이트 피킷 교수와 ‘평등재단’ 설립

2011년 세계정치학회가 주는 ‘올해의 책’ 수상(<평등이 답이다>)

* 주요 저서

<건강 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 <평등해야 건강하다>, <평등이 답이다: 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