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HERI-서울연구원 공동기획]
회계사 그만두고 대안적 삶 택한 김정연씨
추상과 가상 벗어나 몸 움직여 해결하는 삶
‘비전화공방’에서 살아가는 적절한 기술 익혀
“이룬 것 아깝더라도 ‘지금 행복한지’ 물어야” 

김정연씨는 “몸을 움직여 필요한 것을 해결하면서 사는 지금의 삶이 풍요롭다”고 말한다.  이봉현 연구위원
김정연씨는 “몸을 움직여 필요한 것을 해결하면서 사는 지금의 삶이 풍요롭다”고 말한다. 이봉현 연구위원

서울연구원은 내달 11일과 12일 양일에 걸쳐 ‘전환도시 서울 국제컨퍼런스’를 연다. 행사 둘째날은 특별세션으로 서울을 바꾸는 실험과 도전을 하는 서울 체인저들이 모이는 ‘위체인지(We Change)' 포럼이 명동 위스테이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이들의 다양한 도전과 활동상을 4주에 걸쳐 차례로 소개한다.

새벽에 눈을 뜨면 눈물이 귓불을 지나 주룩 흘렀다. ‘이게 잘사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어제보다 더 커져 있었다. 대형 회계법인의 회계사. 남들은 전문직이고 돈도 잘 벌 것이라 부러워하지만, 부질없이 느껴졌다. 위계적인 조직문화, 고객과의 긴장된 만남, 윗사람 품평을 하거나 “무엇이 어디 가면 싸다”는 얘기를 하다 끝나는 동료와의 대화…. 일상의 여러 일들이 가슴을 조여왔다. 부모님이나 친구들은 “남들도 다 참고 버티는데 왜 그러냐”며 다독였다. 마음을 다잡으려 1년을 발버둥 쳤지만, 결국 입사 4년 만인 2015년 사표를 냈다.

김정연(31) 씨가 지금 있는 곳은 전남 영광군 대마면 태청산 자락.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64) 씨가 조성하는 ‘생명평화 마을’에서 8월 중순부터 황 씨 등 4명이 함께 지낸다.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이 모여 살 마을이다. 생태대안학교와 다양한 연구소가 들어설 예정인 이 곳은, 아직은 황량한 산골이다. 정연씨의 하루는 몸 써서 일하기, 그리고 동료와 대화하기로 채워진다. 황톳집을 고쳐 쓰는 숙소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고 오전에는 밭일을 한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한숨 자고 나서 동료들과 함께 고치고 만들고 하는 일을 저녁 먹기 전까지 한다. 부족한 것,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무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나 프로그램은 없다. 황대권 씨도 “직접 해 봐라, 자연이 스승이다”라고 강조한다.

‘덜 벌고 덜 쓰는 삶이 풍요로울 수 있구나’

“회계사로서 가상의 세계에서 살아왔습니다. 컴퓨터 화면으로 일했어요. 그런데 지금 하는 것은 직접 몸을 움직이고, 누군가와 만나고 영향력을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만족스럽습니다.” 그의 말대로 회계는 살아 움직이는 기업활동을 숫자로 정리한 ‘추상’이다. 그런 추상을 컴퓨터와 온라인이라는 사이버 세계에서 다루는 게 정연씨의 일과였다. 미사일로 싸우는 전쟁에서 인간의 비극이 소거되듯, 가상과 가상으로 연결되는 현대의 노동에서 현장의 땀과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정연씨의 뜻 모를 ‘갈증’은 이렇게 시작됐을 지 모른다.

몸을 움직여 필요를 해결하고 소박하게 사는 삶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여행에서였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 ‘우프’ (WWOOF, 자원봉사자가 유기농가에서 하루 4~6시간의 노동을 하면 농가가 숙식을 제공하는 전 세계적인 교환네트워크)에 참석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됐다.

“노부부가 경영하는 큰 농장에서 생활했어요. 슈퍼마켓에 가려면 20분 동안 차를 타고 나가야 할 정도로 도시의 삶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하루하루 풍족하고 충만한 겁니다. 농장 안의 먹거리, 동물들…, 어느 하나도 부족하지 않았어요. ‘덜 벌고, 덜 쓰고 몸을 움직여 사는 삶이 풍요로울 수 있구나’하고 느꼈어요.”

여행에서 돌아온 뒤 스스로 움직여 자급자족한 생활을 하자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막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생활의 여러 ‘필요’들은 번 돈으로 사면 되는 일이라 배웠다. “쌀은 슈퍼에 가서 사올 수는 있지만 요리는 잘하지 못했어요.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그런 걸 익힐 시간도 없었고, 그게 중요하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혁신센터에서 문을 연 ‘비전화공방제작자 과정’. 비전화공방(非電化工房)이란 간단히 줄이면 전기와 화학물질을 되도록 적게쓰며 대안적인 삶을 찾는 방법을 익히는 곳이다. 지역을 터전 삼아 순환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적정한 수준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비전화공방은 일본의 공학자인 후지무라 야스유키(니혼대 교수)가 천식을 앓는 자녀를 위해 직접 공기청정기를 개발한 것을 인연으로 발전시킨 전환적 삶의 양식에서 유래한다. 오랜 불황과 사회병리를 겪은 일본에서 후지무라가 제시하는 삶의 방식은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를 눈여겨본 박원순 서울시장의 요청으로 2017년 서울혁신파크에 과정이 개설됐다.

원목을 주재료로 캠핑카 만들어

정연씨를 포함해 다른 삶을 살려는 청년들이 2017년 초부터 1년간 후지무라 야스유키의 지도 아래 철학과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자급자족하고 자립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농사, 목공, 요리, 건축, 에너지 등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 후지무라 야스유키는 한 달에 한번 일주일간 한국으로 건너와 비전화공방 과정을 지도했다. 19살부터 38살까지 살아온 길이 다른 12명이 비전화제작자로 일주일에 5일씩 1년을 살았다. 제도화된 틀을 벗어나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던 사람, 성장이라는 이름의 ‘맷돌’에 갈리지 않고 자신을 찾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거기에 있었다.

김정연씨가 합판으로 캠핑카의 외장을 설계하고 있다.  김정연씨 제공
김정연씨가 합판으로 캠핑카의 외장을 설계하고 있다. 김정연씨 제공

졸업을 앞두고 하나씩 제품을 만들어 전시키로 했다. 누구는 도시 텃밭이나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움직이는 생태 변기’를 만들었다. 용변을 본 뒤 옆에 붙은 회전판을 돌리면 흙, 톱밥이 똥과 섞여 나중에 좋은 퇴비가 된다. 또 다른 제작자는 ‘채소 저장고’를 만들었다. 뭐든 냉장고에 보관하면 좋은 줄 알지만 따뜻한 나라에서 건너온 가지, 감자, 고구마, 토마토 등은 냉장 보관하면 신선도와 맛이 떨어진다. 원목을 쓰고 통풍이 잘되게 만든 이 저장고는 서랍장처럼 걸이가 있어 채소를 주렁주렁 걸어두고 먹게 된다. 정연씨는 캠핑카 만들기에 도전했다. 그에게 여행은 지금 있는 곳에서 떨어져서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언제나 숙소가 마음에 걸렸다. 숙소 걱정 없이 여행 가자는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비전화공방의 가치대로 유리섬유 강화플라스틱(FRP) 대신 원목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설계부터 자르기, 조립, 단열하기, 인테리어까지 같은 동료 제작자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씩 해 나갔다. 이렇게 석 달을 뚝딱거렸고, 마침내 550만원에 산 1톤 트럭 위에 올렸다. 1년 전만 해도 제 손으로 드라이버 하나 돌릴 줄 몰랐던 정연씨가 만든 작품은 첫 운행지로 정연씨의 고향 속초를 향해 달려나갔다.

석 달간의 작업 끝에 완성된 캠핑카를 트럭에 올렸다.  김정연씨 제공
석 달간의 작업 끝에 완성된 캠핑카를 트럭에 올렸다. 김정연씨 제공

전남 영광에서 잠시 서울에 올라온 정연씨를 11일 마포구 공덕동 경의선 숲길 근처 찻집에서 만났다.

“직장생활은 다시 하지 않을 겁니다”

- 도시는 정연씨에 어떤 곳인가요?

“도시에서는 뭔가 없는 것을 찾아다니고, 잠시만 시간이 나도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쫓겨 다니고, 내가 뭐 때문에 바쁜지 모르겠고, 이유 없이 분주하고 붕 떠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주위에서 이걸 사라, 저걸 사라고 계속 유혹하고….”

- 어렵게 공부한 회계사를 그만두기 어려웠을 텐데요.

“모두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지만, 그것은 내 스스로 생각한 것은 아니에요. 이뤄놓은 게 아까워서 행복하지 않은 줄 알면서 어떤 일을 계속하는 것은 주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아요. 마음의 갈등은 있겠지만 계속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라 생각하고, 우선은 아닌 것을 버려가는 것이라고 봐요.”

- 다른 사람들도 정연씨처럼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살기로 결심하고 난 뒤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가치대로 살려는 사람들, 기존의 삶에 불편을 느끼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모두 안정적으로 월급 받으며 살려는 줄만 알았는데, 제가 바뀌니까 그런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 그래도 젊은데 몇 년 있다 돌아와야죠?

“직장생활은 다시 하지 않을 겁니다. 내 의지대로 시간 쓰면서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시간과 장소에 얽매여 살 생각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의선 숲길을 걸어 떠나갔다.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밀린 일들이 생각나 회사 쪽으로 터덕터덕 걸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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