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평화교육 시민단체 ‘피스모모’ 주최
2030 청년들의 ‘남북과 평화’ 이야기
‘젊은것들’의 발랄한 상상마당 펼쳐져
“평화란 무언가 거대한 게 아니라
결국 사람들이 만나는 일 아닐까”

지난 4일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열린 '2030 사회적 대화 - 2018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그 이후' 참가자들의 모습.
지난 4일 서울시 청년허브에서 열린 '2030 사회적 대화 - 2018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그 이후' 참가자들의 모습.

날 때부터 ‘전쟁 중’인 나라의 ‘젊은것들’로 살아간다는 건 이런 식이다. ‘프롬 코리아’(한국에서 왔다)라는 말에 ‘남쪽? 북쪽?’하는 질문이 되돌아오는 것엔 익숙하다. 언론과 외국인들이 당장이라도 한반도가 불바다가 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도, 다음달 토익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토익학원을 다니는 의연함은 헬조선의 젊은이들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다. ‘윗동네’는 항상 화가 나 있고 자주 시끄러우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지만, 월세·학자금·생활비·취업의 압박은 살을 에는 현실의 공포다. 전쟁보다 무서운 건 몇 달 후에도 취준생일 내 모습이다. “요즘 젊은것들은 민족의식도 없고, 애국심도 없다”는 핀잔은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다. 주적도 동포도, 전쟁도 평화도 정말 많이 들었던 단어인데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행사 시작에 앞서 취지를 소개하는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 문 대표는 “어떤 의견도, 감상도 환영받는 자리다. 반대·설득·교육하려 하지 않을 것,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모두가 모두에게서 배운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말했다.
행사 시작에 앞서 취지를 소개하는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 문 대표는 “어떤 의견도, 감상도 환영받는 자리다. 반대·설득·교육하려 하지 않을 것,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하고 모두가 모두에게서 배운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달 열린 남북정상회담 이후부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 대통령’과 손을 잡고 웃는 장면엔 묘한 감동이 찾아왔다. (오)연준 군 노래에 감동한 리설주의 표정, 김여정의 ‘눈웃음’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아, 저 사람들도 사람이구나.’ 젊은 사람들의 반응도 이례적으로 거셌다. “이삼십대는 어떻게 봤는지 한번 이야기해 볼까요?” 판을 깔자 사람들이 모였다. 대학생·회사원·시민단체 활동가·재일교포·북한이탈주민 등 배경도 나이도 다양한 이삼십대 30명이 지난 4일 ‘남북정상회담 그 이후’를 말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89점이라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준 참가자가 적어낸 남북정상회담 평가 내용.
89점이라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준 참가자가 적어낸 남북정상회담 평가 내용.

“김정은 ‘짤’ 보며 웃게 될 줄 누가 알았나요”

얼굴을 맞대고 앉은 참가자들은 “남북 관계가 더 좋아지면 뭘 하고 싶냐”는 물음에 발랄한 대답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북한에서 온 친구가 남한 스키장은 ‘쓰레기’라던데요, 하하하. 북한 스키장 가보고 싶어요.”, “북한도 술 게임이 있다던데 배우고 싶어요.”, “양념치킨 알려주고 평양냉면 비법 받아오자.” 연신 웃음이 터졌다.

참가자 대부분은 “날 때부터 휴전 상태라 북한의 도발에도 관심 없었고, 잘 몰랐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인간적으로 가깝게 느끼게 된 것에 큰 점수를 줬다. “‘볼드모트’처럼 말하긴 꺼림칙하던 북한과 김정은을 ‘짤’(재미있는 표정이나 동작을 따 인터넷에 공유하는 이미지 컷)로 만들고 웃게 될 줄 누가 알았나요”라고 한 참가자자 말하자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자들이 “이 지역 어딘가 스키장이 있을 것”이라며 지도를 그리면서 웃고 있다.
참가자들이 “이 지역 어딘가 스키장이 있을 것”이라며 지도를 그리면서 웃고 있다.

참가자들은 인간적 교류가 남북 평화라는 주제를 피부 가까이 와닿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며, 앞으로도 교류늘 늘려갈 것을 주문했다. “정상간 딱딱한 만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진정성있게 만나는 것으로 보여 감동이 컸다”는 의견에 이어, “길거리 음식 같이 먹고, 체육대회 하면서 친해지면 좋겠다”, “남북한 은어사전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예전에는 대통령이나 높으신 분들끼리 정하고 사람들에게 통보하는 식이었다면, 지금은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우리 정부의 접근 방식에도 후한 점수를 줬다.


이날 참가자들이 준 점수 중 가장 낮은 점수는 50점이다. 최하위 점수를 준 참가자들은 “남북 대화가 끝이 아니라 아직 갈 길이 먼 시작점이라는 뜻”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 대부분은 ‘사드·강정마을 해결’, ‘한민족 프레임 거부감’, ‘중장년 남성 중심 구도 타파’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자들이 준 점수 중 가장 낮은 점수는 50점이다. 최하위 점수를 준 참가자들은 “남북 대화가 끝이 아니라 아직 갈 길이 먼 시작점이라는 뜻”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 대부분은 ‘사드·강정마을 해결’, ‘한민족 프레임 거부감’, ‘중장년 남성 중심 구도 타파’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정·성주 잊지 말아야”, “남자 중장년층 중심”

하지만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특히 언론과 정부가 고조시키는 ‘남북 화해 분위기’가 여전히 중장년층 남성 중심이라는 지적이 눈길을 끌었다. “청년층은 여전히 교육·계몽의 대상이고, 여성 지도자의 역할이 미미했다. 여전히 결정권은 중·장년층 남성에게 있다.” 한 참가자가 이렇게 말하자, “두 나라 수장을 비롯해 대부분이 남성이고 여성들은 보조 역할만 했다”는 동조 의견이 이어졌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자칫 우리 사회 내부의 문제를 시야에서 가릴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날 성주에 기습적으로 병력이 들어가지 않았나. 남북 화해 분위기가 오히려 모든 국내 문제를 덮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 이뿐 아니다. “‘파주 땅값 들썩’ 따위의 기사를 보면 화가 난다. 도대체 우리의 수준이 겨우 이 정도냐”라며, 한반도 평화를 투기 기회로만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쏟아졌다.

이야기는 우리 안의 편견을 깨야 한다는 쪽으로 이어졌다. “북한이탈주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선 ‘집값 떨어지니 그 사람들 살지 않게 해 달라’는 시위까지 있었다”는 한 참석자의 이야기에, ‘통일대박론’ 식의 한반도 평화가 아니라 진정한 만남으로 평화를 만들자는 의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자들 뒤로 ‘좋아 좋아’, ‘많이많이’, ‘서로서로’, ‘섞어서 새롭게’ 등 칠판에 적힌 토론의 규칙이 보인다.
참가자들 뒤로 ‘좋아 좋아’, ‘많이많이’, ‘서로서로’, ‘섞어서 새롭게’ 등 칠판에 적힌 토론의 규칙이 보인다.

“2030이 한반도 평화 잇는 다리 역할 할 것”

“우리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도 아니고, 혼자 살아남는 데 익숙한 세대다.” 참가자들은 또 ‘동포애’, ‘애국심’과 같이 당위의 문제로 한반도 문제에 접근해서는 젊은 세대에게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이들은 기성세대의 선입견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매일매일 나름 애쓰며 살고 있는데, ‘젊은것들은 생각이 없냐’는 식의 말을 들으면 더 관심 갖기 싫어진다.” 참가자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반향이 컸던 이유가 “한반도 평화가 대단하고 거대한 일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만나는 일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날 행사에 모인 2030 참가자들은 “전쟁을 경험한 어르신세대, 반공교육이 뿌리깊은 중·장년층과 자라나는 십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과거처럼 정부에서 밀실회담을 진행하고 일방적으로 결과를 통보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공유한 데 큰 반향이 있었던만큼, 앞으로는 더 많은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참가자는 “오늘처럼 편안하게 평화나 남북 문제를 이야기할 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지면 젊은 사람들도 더욱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토론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대화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우리 안에 평화로운 만남의 경험이 쌓일 때…

이날 ‘2030 사회적대화 - 남북정상회담, 그 이후’ 행사를 기획한 곳은 평화교육 시민단체 ‘피스모모’(peacemomo.org)다. ‘모모’는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날 행사도 그 의미를 충분히 살렸다. ‘2030 사회적 대화’는 합리적 근거를 들어 토론할 뿐, 승자를 가르는 자리가 아니다. 이날의 약속은 세 가지였다. “낯설어도 괜찮아”, “달라도 괜찮아”, “서로배움”. 어떤 의견도 환영하지만, 타인의 의견을 비판하거나 가르치려 들 수는 없다. 평화적 만남과 대화의 경험이 우리 안에 쌓여야 진정한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를 만들기 전에 우리부터 ‘평화적 원칙’으로 대화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의 말이다. 문 대표는 “참가자들이 남북 문제에 관심이 있어 오기도 했지만 편히 의견을 말하고, 함부로 판단당하지 않는 공간을 원해서 온 것”이라며 “청년들을 위한, 청년이 만드는 사회적 대화 자리를 꾸준히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참가자들은 0점부터 100점까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점수를 주고, 함께 공유했다. 이날 최고점은 92점, 최저점은 50점이었다.
참가자들은 0점부터 100점까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점수를 주고, 함께 공유했다. 이날 최고점은 92점, 최저점은 50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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