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속 HERI
월매출 억대 ‘비빔빵’ 만드는 사회적기업 ‘천년누리 전주제과’
노인 일자리 창출 ‘사회적가치’와 판매 ‘상품성’ 두 토끼 잡아
일거리 나누기로 ‘지역 상생’ 추구…일본 등 국외진출 시도
교육·창업지원도 나서…“비빔빵으로 전주를 먹여살릴 것”
최근 전북 전주시 경원동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주비빔밥축제에서 비빔빵을 판매하는 천년누리 전주제과의 이길영씨. 준비한 물량이 금세 동나 여러 번 추가로 가져와야 했다.
최근 전북 전주시 경원동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주비빔밥축제에서 비빔빵을 판매하는 천년누리 전주제과의 이길영씨. 준비한 물량이 금세 동나 여러 번 추가로 가져와야 했다.
“이게 청와대에도 들어가는 빵이에요.” “한 번 드셔 보세요. 후회 안 할 겁니다!” 큰 목소리로,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길영씨. 사회적기업 ‘천년누리 전주제과’ 직원인 이씨는 올해 나이 일흔이다. 최근 전북 전주시 경원동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열린 ‘전주비빔밥축제’에 부스를 차리고, 이 회사에서 만든 빵을 알리러 나왔다. 비빔밥 축제에 웬 빵인가 싶지만, 그냥 빵이 아니다. ‘비빔빵’이다. 비빔밥 재료인 각종 채소와 고기를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우리밀로 한 반죽 안에 넣어 구워냈다.

독특한 비빔빵 말고도 천년누리 전주제과엔 다른 데서 보기 힘든 광경이 또 있다. 바로 이길영씨처럼 나이 지긋한 직원들이다. 여기선 ‘시니어’로 부르는데, 전체 직원 30명의 절반가량인 13명이 시니어다. 사회복지기관에서 10년을 일한 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쳤던 장윤영 대표는 취약계층의 빈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젊은층 일자리도 부족한 중소도시라 일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는 노년층의 자립을 돕는 게 시급하다고 보고, 이들이 중심이 된 빵집 천년누리 전주제과를 2015년 전주 서노송동에 만들었다. “일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160만∼180만원이라는 비교적 높은 월급에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까지 주는 곳이기에 어르신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장애인과 경력단절 여성도 합류했다. 그 덕에, 6개월만 열심히 해서 회사를 궤도에 올려놓고 학교로 돌아가려던 장 대표의 계획도 미뤄졌다.

“나이 들수록 일이 필요해요. 그래야 더 젊게 살고, 아프지도 않아요.” 도저히 일흔이라고는 믿기 힘든 이길영씨가 ‘동안의 비결’로 일을 꼽았다. 서울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며 각종 자격증을 섭렵할 정도로 열심히 살았던 그였지만, 고향 전주로 돌아오니 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여러 곳을 전전하다 천년누리 전주제과에서 ‘시니어를 고용한다’는 소식을 보고는 이력서를 내 채용됐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성형한 반죽들을 오븐까지 나르는 일을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반복하는 게 조금 고되지만 그에게는 “이만한 곳이 없다.” 이씨는 “내 힘으로 만든 음식을 ‘맛있다’며 칭찬해주는 손님들이 많아 보람차다”며 웃었다.

천년누리 전주제과의 빵들. 가운데, 붉은 소가 들어간 게 비빔빵이다. 천년누리 전주제과 제공
천년누리 전주제과의 빵들. 가운데, 붉은 소가 들어간 게 비빔빵이다. 천년누리 전주제과 제공
가치와 상품성 모두 잡았다…“‘비빔빵’으로 전주 전체를 활성화시킬 것”

“좋은 마음만 가지고도 안 되고, 사업성만으로도 안 되는 게 사회적기업”이라는 게 천년누리 전주제과의 신념이다. 수익은 좋은 취지에 사용하고, 판매는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맛과 영양으로 승부한다는 자부심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빵이 보통 60g 정도인데, 비빔빵은 그 두배가 넘는 140g이다. 그만큼 크기도 크거니와 재료도 많이 들어간다. 장 대표는 “빵 만드는 어르신들 손이 커서 그렇다. 재료도 좋은 것만 쓰고, 맛은 말할 것도 없이 좋다”고 자랑했다. 상품성을 갖추려고 비빔빵뿐만 아니라 떡갈비빵, 청국장베이글 등 독특하고 새로운 메뉴도 꾸준히 개발해왔다. 그런 노력의 결과 천년누리 전주제과는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월 매출이 억대로, 밀려드는 주문에 가게 확장 공사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처음 시도한 현대백화점 팝업스토어에서는 빵 1500개가 4시간 만에 동이 났다. 사회적 가치와 상품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천년누리 전주제과는 어르신 일자리 창출 말고도 ‘지역과의 상생’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최근 세웠다. 창업 초기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등 다른 파트너들에게 도움을 받아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으니, 이제는 지역 다른 업체들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일거리 나누기’다. 늘어나는 주문량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면서, 어려운 동네 빵집에 ‘외주’를 주고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성공하리라 기대할 수 없어 가게 설비가 많지 않은 천년누리 전주제과로선 물량을 맞출 수 있고, 장사가 잘 안되는 동네 빵집은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선택이다.

장 대표는 비빔빵의 성공을 통해 전주 전체를 살려내겠다는 큰 포부를 갖고 있다. 한산했던 서노송동이 천년누리 전주제과를 방문하는 사람들로 붐비게 된 것을 시작으로 다음 단계를 밟고 있다. “할머니들이 만든 비빔빵을 청년이 알린다”는 콘셉트의 청년사업단을 꾸려 세계로 나아갈 계획이다. 이미 해외특허를 출원해 일본 진출도 진행 중이다. 또 교육자 경력을 살려 지역 사회적경제를 이끌 인재도 키울 예정이다. 창업을 꿈꾸는 사람에겐 조언을, 일자리를 원하는 어르신에게는 일자리를, 일이 필요한 지역 상권에는 일거리를 나누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비빔빵으로 먹고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고, 지역을 먹여 살리는 사회적기업이 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천년누리 전주제과에서 시니어 직원이 전화로 주문을 받고 있다. 제빵, 판매 등 곳곳에서 시니어 직원들이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년누리 전주제과 제공
?천년누리 전주제과에서 시니어 직원이 전화로 주문을 받고 있다. 제빵, 판매 등 곳곳에서 시니어 직원들이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년누리 전주제과 제공
현재 근무 중인 13명의 시니어 직원은 전체 노인 인구에 비하면 아주 작은 숫자이겠지만 그 의미는 크다. 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자신감있는 태도로 일한다는 사실과, 매출이 바로 새로운 고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노인빈곤율 1위인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를 보면 66살 이상 은퇴연령층의 빈곤율은 48.1%에 달한다. 노인취업률은 28.5%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75%가량이 농업?임업?어업이나 단순노무에 종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절대적인 일자리 수 부족도 문제지만, 은퇴 후 존중받고 보람 느끼며 일할 곳이 없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생계수단이자, 사회와 연결되는 창구인 일자리를 만들어 노년층의 안정적인 생활과 사회 참여를 보장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일이다. 이 과정이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검증받은 상품성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그 의미는 훨씬 크다. 천년누리 전주제과의 시니어 직원 수 ‘13’은 단순히 13명이 누리는 ‘행운’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지금 노인이거나, 곧 노인이 되거나,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전주/글·사진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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