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속 HERI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 
‘디지털 시대 공감의 힘’ 특강 맡은 정혜신 박사 인터뷰

기술진화에 ‘조연’으로 밀린 인간
일상은 전쟁, 마음은 지옥
사람은 ‘관계’ 속에서만
성찰도 치유도 가능
공감력 높아야 인정도 받는다
정혜신 박사는 “인공지능이 더 진화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하는 분야는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다루는 영역”이라며 디지털 시대에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제훈 기자 khan@hani.co.kr
정혜신 박사는 “인공지능이 더 진화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하는 분야는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다루는 영역”이라며 디지털 시대에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제훈 기자 khan@hani.co.kr
“거리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사찰 피해자, 세월호 가족들을 만나면서 사람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치유의 도구가 공감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거리의 의사’로 불리는 정혜신 박사는 공감을 ‘사람 목숨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디지털시대 공감의 힘’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할 정혜신 박사를 만나 인간의 본질로서 공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지난달 18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공감의 힘에 주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정신과 의사로 약 26년을 보냈는데 딱 절반으로 나누어 후반 시기를 병원이 아니라 거리에서, 현장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이때 고문 생존자, 5·18 피해자, 세월호 유가족 같은 국가폭력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최고 권력자, 기업의 오너 회장 등도 만났다. 이들의 속살에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면서 체득한 분명한 사실은 상처 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의 근원은 ‘공감’이라는 것이다. 공감이야말로 인간의 본질, 생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공감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지만 좀 막연한 느낌이 든다.

“공감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공감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다들 본능적으로 안다. 그것이 공감의 힘이다. 공감은 죽어가는 목숨도 살리는 강력한 힘이 있다. 비유하자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담요를 덮어주는 역할이랄까. 고통 속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사람에게 공감은 그런 것이다. 입 밖에 꺼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힘든 사람이 자기감정을 꺼냈을 때 그의 아픈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 이렇듯 한 사람이 다른 이의 마음과 감정에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이다. 공감은 존재성 자체에 주목하면서, 존재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공감의 힘은 왜 중요한가?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이 더 진화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하는 분야는 인간의 감정과 마음을 다루는 영역일 것이다. 인공지능이나 로봇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이 지닌 공감 능력은 평가나 판단 등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롯이 상대의 마음을 수용하고 품는 과정이다. 공감이야말로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것이다.”

-기술이 진화할수록 인간은 행복하지 않은 듯하다.

“디지털 시대엔 도구가 비대해지면서 주연이 되고 인간은 조연으로 밀려난다. 우리가 수단, 도구, 조연으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병이 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성에서 멀어질 때 병이 난다.

문자해고가 충격적인 이유를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잘 모르는 사람들은 문자 한 통 달랑 보낸 것과 직접 면전에서 해고 통보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반문한다. 하지만 문자해고는 ‘나’라는 존재를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삶의 무게를 하찮게 여길 때, 짓밟힌다는 느낌을 줄 때, 그걸 당하는 사람에게는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나?

“사실 공감은 오랜 학습의 결과다. 상대의 감정에 빨리 이입해, 그의 고통에 뛰어드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다. 사람은 아는 만큼 공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상황을 잘 모르면 공감하기 어렵다. 공감력이란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집중하고 질문하는 가운데 나온다.”

-주위를 둘러보면 힘든 사람이 너무 많다.

“우리 사회는 일상이 전쟁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 어른이 되어 직장에 나갈 때 전쟁에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존재에 대한 주목을 잃어버리고 도구화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계가 훼손된 상황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내 마음이 지옥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한다. 단지 경제적 불안정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권이 바뀌고 제도가 바뀌어도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 나의 존재를 지지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디지털 시대 미래의 일에 있어서도 공감 능력이 중요할 듯하다.

“어떤 일이든 인간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일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교사도 아이에게 공감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오래갈 수 있다. 자세히 보면 교사들이 받는 상처도 말도 못할 정도로 큰데, 오히려 아이들과 마음을 맞추고, 이 과정에서 자기 상처도 보면서 치유하고 치유받을 수 있다. 한 번이라도 온전한 공감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공감의 긍정적이고 선한 파괴력을 안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서만 성찰할 수 있고 치유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결국 일에서도 인정을 받고 잘할 수 있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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