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속 HERI
[더 나은 사회]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 토론회
문재인 법 ‘사회적 가치 기본법’ 주목
공공기관의 모든 정책 수행 원리로
민간기업의 사회책임경영 활성화 견인
창출된 가치 측정·평가에 어려움 예상
지표 마련하는 사회적 논의 과정 중요

11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 측정과 평가’를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사회적기업 활성화 전국네트워크 제공

11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 측정과 평가’를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사회적기업 활성화 전국네트워크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던 2014년 6월 법안 하나를 대표 발의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였다. 법안의 이름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 일명 ‘사회적 가치 기본법'이다. 법안을 발의한 이유도 세월호와 관계가 있다. “세월호 참사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웠던 우리 사회의 민낯을 직시하게 했다. 이윤과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가치, 공동체의 가치를 지향하도록 국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때다.”

그 국가 시스템을 바꾸는 방법의 하나로 이 법안은 공공기관이 어떤 정책을 펼칠 때 효율성이나 경제적 성과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도록 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가치는 인권, 노동권, 안전, 생태, 사회적 약자 배려, 양질의 일자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등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필요한 가치를 말한다.

이 법은 제정되지 못하고 19대 국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그러나 20대 국회에서 김경수 의원이 다시 대표 발의해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사회적 가치’가 새 정부의 열쇳말로 부각되면서 공공과 민간 모두 ‘사회적 가치 기본법’의 향배에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이들은 사회적 가치를 측정해 성과평가를 할 수 있게 제도를 개선하려 한다는 점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의 일정한 손해를 무릅쓰고라도, ‘사회적 가치’ 창출 자체를 조직의 미션으로 삼고 활동해온 사회적 경제 조직에도 ‘측정과 평가’는 풀어야 할 숙제다.

이렇게 관심이 높아지는 한편에서는 ‘사회적 가치’라는 개념이 불분명해 정책을 추진하는 데 혼선이 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사회적 가치’라는 말에 대한 논의와 인식 공유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사회적기업 활성화 전국네트워크와 함께 지난 11일 포럼을 열고 사회적 가치 측정과 평가의 쟁점을 짚어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점검했다.

사회적 가치 평가 어려움 여전, 통합적 접근 필요

사회적 경제 조직이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해명 작업이나 마찬가지이다. 성균관대 문철우 교수(경영학)는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구분해서 보는 이분법은 모순적”이라며 통합적 접근으로 ‘창출가치’(Value Creation)와 ‘귀속가치’(Value Capture)라는 개념을 활용하자고 제시했다. 창출가치란 사회 전반에 걸친 효용의 증가분을 말하며, 귀속가치란 창출가치 중에서 행위자가 다시 가져가는 부분을 가리킨다. 문 교수는 “어떤 공장이 유해물질을 발생시키면서 돈을 벌고 있는 경우 귀속가치는 발생시키고 있지만, 창출가치는 감소시키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경제 조직은 창출가치를 늘리는 게 목표지만 그 지속가능성을 위해 적정 수준의 귀속가치를 발생시킨다. 이것이 자선단체와 사회적 경제 조직이 다른 점이다. 문 교수는 “창출가치의 측정 수준은 사회 전체이고, 귀속가치의 측정 수준은 조직 또는 프로젝트 수준”이라며, 난이도 면에서 사회 전체의 효용을 평가해야 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의 측정과 평가에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 사회성과 인센티브(SPC)의 사회적 가치 측정 영역
에스케이 사회성과 인센티브(SPC)의 사회적 가치 측정 영역

사회적 가치, 스스로 정의하고 측정하는 과정 중요

이러한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하고, 색다른 시도를 하는 곳도 있다. 바로 에스케이(SK)가 운영하는 사회성과 인센티브(SPC: Social Progress Credit) 시스템이다. 에스케이 수펙스(SUPEX) 추구협의회 박성훈 매니저는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사명으로 하면서 수익도 내야 해 내실을 갖추기 어렵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예비 창업가들이라도 창업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며,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환산해 금전적으로 보상함으로써 사회적기업의 성공 가능성을 증대시켜 예비 창업가들의 유입을 돕자는 것”이라며 사회성과 인센티브 도입의 배경을 설명했다.

측정 원리와 방법은 이렇다. ‘사회적기업이 업무를 통해 직접 산출한 성과, 정부나 비영리 조직과 비교해 더 창출한 성과, 시장에서 매출이나 보조금을 통해 보상받지 못한 성과’ 범위 내에서 참여기업들이 스스로 ‘사회성과’를 규정하도록 하고, 세부지표에 대한 합의를 거친다. 사회적기업은 합의한 지표에 맞춰 작성된 데이터를 제공한다. 박 매니저는 “합의를 통해 개발하고, 기업별로 상이한 사회적 가치를 스스로 정의하고 측정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사회성과 인센티브’ 시스템은 누리집을 찾아가 회원 가입을 하고, 본인 기업의 성과를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비즈니스 운동들

최근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들이 주목하는 것 중에 ‘비콥’(B Corp)이 있다. 한국에서 비콥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김정태 대표는 “비콥이란 비즈니스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기업에 부여되는 브랜드이자 고유명사”라고 말했다. 자사 제품을 보여주며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캠페인을 펼친 것으로 유명한 북미 2위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도 대표적 비콥 기업이다. 새로 사기보다 고쳐 입도록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오래 입기 위해 의류 자체의 질을 높이면서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운동에 앞장선 것이다. 국내에선 딜라이트 보청기, 쏘카, 제너럴바이오 등 10개 기업이 비콥 지위를 획득했다.

‘거버넌스, 기업 구성원, 커뮤니티, 환경, 비즈니스 모델’ 등 5개 영역에서 80점 이상(200점 만점)을 받으면 비콥 인증을 요청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비콥 인증을 받은 기업은 ‘글로벌 임팩트 투자 네트워크’(GIIN: Global Impact Investing Network)와 동일한 투자 등급을 받게 된다”며 “비콥의 초점은 투자자나 소비자가 ‘좋은 기업’을 식별하도록 하는 데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쏘카는 비콥 인증을 받은 지 3개월 만에 180억원의 해외투자를 받기도 했다.

‘사회책임경영(CSR), 지속가능발전’ 등의 분야에선 국제적으로 합의된 기준을 토대로 사회적 가치 평가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는 17개의 목표(빈곤퇴치, 성 평등, 산업혁신, 불평등 감소, 도시 지속가능성, 평화와 제도 등)와 169개의 세부목표, 232개의 지표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지속가능발전센터 윤경효 사무국장은 “여전히 국내 현실에 맞지 않는 지표들이 많고, 단편적이고 계량적으로만 목표 달성 여부를 점검하게 되어 있어 실질적인 정책 수립과 이행이 어렵다”며 “국내 여건에 맞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점검하는 통합적 지표체계 수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법, 사회혁신 차원에서 접근해야

사회적 경제 법 센터 더함의 양동수 변호사는 “현재 진행 중인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으로 성과평가를 제도화하고 시행하게 되면 그 효과가 크고 민간 부문에 대한 영향력도 상당할 것”이라며 “기본법은 공공기관의 정책 수립과 수행하는 전 과정에 사회적 가치를 우선 고려하도록 하는 ‘프로세스 혁신’, 혹은 ‘사회혁신’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한국사회적기업 중앙협의회 정책위에서 비콥과 같이 상법상 회사를 기반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려는 목적을 가진 법인격을 제도화하는 법안을 만드는 데 참여하고 있다. 양 변호사는 “사회적 목적을 담은 이행선언서를 자체적으로 작성·점검하는 정도로 설립을 쉽게 하면서, 배당제한이나 잔여재산 처리 시 지역에 귀속되는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사회적 가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할 수 있는 영역은 사회적 경제나 사회책임경영, 사회공헌 분야에 국한됐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에 대한 논의와 함께 ‘사회적 가치’라는 말이 대중화되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현실의 변화로 이어지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공공 입찰제도는 ‘최적 가치 제공자’가 아닌 ‘최저가 제공자’를 낙찰자로 선정하고 있다. 경제성과 효율성, 관행과 성과를 앞세운 공공과 민간의 불협화음 역시 여전하다. 여시재의 이원재 기획이사는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아직 세상이 정말 선하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며 “세상이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려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이창곤 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가치’를 공론화하는 작업을 지속해 질적인 정책 수립과 이행으로 이어지도록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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