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빈곤에 멍드는 아이들]
외국 주거권 보장정책과 한국

핀란드·영국 아동복지 위해 집 제공
영·미, 아동건강 위한 주택기준 마련
곰팡이·해충 등 위험요소 7개 제시
지자체가 임대인에 제거 명령 가능
한국은 국정과제에 아동주거 없어
서울 송파구 장지동 ‘비닐하우스촌’ 화훼마을 모습. 집 바로 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있다. 독거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80가구가량이 사는 이 마을에도 어린이와 청소년이 속한 가구가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서울 송파구 장지동 ‘비닐하우스촌’ 화훼마을 모습. 집 바로 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있다. 독거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80가구가량이 사는 이 마을에도 어린이와 청소년이 속한 가구가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토지의 사용과 분배는, 그 남용을 예방하고, 모든 독일인에게 건전한 주택을 제공하고, 모든 독일 가정, 특히 다자녀가정에 그 욕구에 부합하는 주거와 경제활동을 위한 거처를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에 의해 일정한 방식으로 감독되어야 한다.’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헌법’이라고 알려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155조)이다. 국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면서 유일하게 ‘다자녀가정’을 강조했다. 그만큼 어린이·청소년의 주거권 보호가 국가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1991년 비준한 ‘유엔 아동권 협약’도 어린이·청소년의 주거에 관한 국가의 의무를 규정했다. ‘국가는 아동을 양육하는 부모 혹은 보호자를 돕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가져야 하며, 특히 영양과 옷, 주택과 관련된 경우 필요시 물질적 지원과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27조 3항) 문재인 정부 들어서야 5살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아동수당을 도입한 우리와 달리, 유럽이나 북미 등에선 고령사회 대응 차원에서 미래 세대인 어린이·청소년의 주거환경 개선에 정책 초점을 맞춘다. 이른바 ‘모든 아이들이 중요하다’(Every child matters)는 것이다. 어린이·청소년 중심의 주택 정책이 제시되고, 아이들의 주거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부모에겐 임대료를 보조해주거나 아예 주택을 공급하는 식으로 국가가 적극 개입한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작성 중인 ‘2017년 아동 주거빈곤 보고서’(최은영 연구위원)를 보면, 핀란드는 아동 복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정부가 주거를 제공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영국도 주택법에서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주거위기 가구에 거처를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방정부에 부과했다. 임신한 여성과 학업 중에 있는 19살 미만 아동이 있는 가정이 우선 대상이다. 미국도 소득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가량인 저소득 가구에 대해선 임대료를 보조해주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1974년 제정된 ‘주택과 커뮤니티 법’이 근거인데, 임대료 보조를 받는 가구 중 54%(2008년 기준)가 어린이·청소년이 있는 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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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미국에선 또 아동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주택 기준이 법제화돼 있다. 영국은 2004년 주택법을 개정하면서 ‘주택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영향평가 체계’를 도입했는데, 어린이·청소년에게 위험한 7개 요소로 습기와 곰팡이 번식, 납 오염, 실내 위생(해충과 쓰레기 포함), 추락, 전기 관련 위험, 화염과 뜨거운 표면, 부딪힘과 끼임 등을 명시했다. 행정당국이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집주인이 해야 할 의무사항으로 규정해 놓은 것이다. 우리로 치면 각 기초단체장이 집주인들에게 “집 안의 곰팡이가 세입자 가구의 아동에게 위험하니 이를 제거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은 1999년부터 ‘건강한 집을 위한 프로그램’(HHI)을 시작했다. 납이 포함된 페인트를 쓰지 못하게 하거나, 곰팡이를 포함한 집 내부 공기의 질, 해충 등을 주택 평가 기준에 포함해 평가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별도의 주거정책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주거와 관련한 부분에선 장기 공적임대주택을 확대 공급한다면서 저소득 고령자, 장애인 가구 등 ‘주거약자’에 대해 언급했지만, 어린이·청소년은 빠져 있다. 신혼부부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층의 주거 지원을 강화하겠다며 신혼부부 임대주택 20만가구, 역세권 청년주택 20만실 등을 약속했지만, 역시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각종 정책사업에서 어린이·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제도(아동영향평가)를 2019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을 뿐이다. 이봉주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가치가 점차 중요해지는 상황이다. 출산만을 장려할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난 아이가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으며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야 출산도 자연히 늘게 된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