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속 HERI
【짬】 국회의원 합창단 조직하는 라종일 이사장

라종일 이사장이 4일 서울클럽에서 정치에서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라종일 이사장이 4일 서울클럽에서 정치에서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내년 2월 강원도 평창의 산허리를 타고 흐르는 국회의원 합창단의 아름다운 화음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주일대사를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라종일(77·사진) 백봉정치문화교육연구원 이사장은 요즘 여야의 중진들을 찾아다니며 의원 합창단을 조직하고 있다. 다섯달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 행사장에서 여야를 아우르는 ‘협치의 하모니’를 울리려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보다는 갈등하고 반목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는 현실 정치이지만, 세계와 함께하는 큰 축제의 장에서 화합의 마음을 가다듬자는 취지에서다.

라 이사장은 “바쁜 국회의원 30여명이 어떻게 모여서 연습할지 사실 고민이다. 궁리해 봤는데, 의원들에게 각자 연습할 부분을 알려주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모여 음을 맞추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야 의원 30여명 합창단원으로 참여 
5개월간 ‘따로 또 같이’ 맹연습 예정 
“민주정치 본령 ‘대화·타협’ 노래로”

선친 기리는 백봉정치문화교육원 출범 
12일 ‘협치의 이상과 실제’ 기념토론회 
“달라진 북한 고려한 ‘햇볕정책’ 기대”

우리 정치는 어느 때보다 대화와 타협의 ‘협치’가 필요한 때. ‘촛불’의 염원을 안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한국 사회의 찌든 때를 씻어내고 나라의 기풍을 새롭게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법 개정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원내 5당 중 어느 당도 과반에 미달하고, 거기에 국회선진화법까지 있어 다른 당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법안 한 획 고치기 쉽지 않다. 지난해부터 ‘새 정치를 해야 한다’며 모두 협치를 부르짖고 있지만 요즘 인사·외교·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또다시 험악한 진영 싸움이 재연될 조짐이다.

라 이사장은 ‘정치의 본령은 협치이고 그게 안 되면 통치로 전락하는 것’이라 말한다. “프랑스 문호 카뮈는 ‘나는 정당 활동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내가 꼭 옳은 것은 아니란 생각을 가진 정당이 있으면 그곳에 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민주정치는 그렇게 자기 생각이 옳은지 아닌지 의심해 보고, 남의 의견을 청취하는 능력이 바탕이 돼 존립하는 것입니다.”

그는 토론하고 합의하는 정치문화 확산을 위해 오는 1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협치의 이상과 실제’를 주제로 세미나도 연다. 그의 부친인 백봉(白峰) 라용균 선생을 기리는 ‘백봉기념사업회’가 정식 국회등록단체인 사단법인 백봉정치문화교육연구원으로 새롭게 출범하는 것을 알리는 행사이기도 하다.

백봉은 전북 정읍시 영원면 출신으로, 해방 무렵 약 3천석을 수확할 정도로 부농 집안이었다. 하지만 백봉의 부친은 일제의 창씨개명을 끝내 거부하는 등 일제에 협조하지 않아 여러 고초를 겪었다. 백봉도 일본 유학 중이던 1919년 ‘2·8 조선인학생 독립선언’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옥고를 치렀다. 영국 유학 뒤 해방된 나라의 첫 제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4·5·6대 의원과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국회의원 시절 신사다운 매너와 성실한 자세로 좋은 평판을 얻었다. 사업회는 이를 기려 1999년부터 매년 12월 국회 출입기자 300여명이 정치적 리더십, 업적, 교양과 지성, 모범적 의정활동 등의 항목에 점수를 매겨 우수한 의원에게 ‘백봉신사상’도 시상하고 있다.

라 이사장은 10년 계획으로 한국전쟁의 수레바퀴에 깔린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공직을 은퇴한 이후 대중적인 글쓰기에 매력을 느낀 그는 미얀마 감옥에서 숨진 북한 공작원 이야기를 다룬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창비 펴냄), 조카인 김정은에 의해 처형당한 북한의 2인자를 다룬 <장성택의 길-신정의 불온한 경계인>(알마 펴냄)도 냈다.

경희대 교수 재직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남북 및 국제관계를 조언했던 라 이사장은 국민의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1차장과 주영대사를,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주일본대사를 차례로 맡았다.

연구와 실무 현장 경험이 두루 있는 그에게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전망을 물었다. “현 정부가 햇볕정책의 큰 흐름을 계승하는 것은 좋습니다만, 2000년대 초반 북한이 이에 호응해 나올 때와 지금의 북한은 다르다는 걸 고려했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의 능력이 달라진 점을 잊으면 판단 착오를 할 수 있습니다.”

글·사진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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