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2006-10-26
“소주가 왜 저관여 상품이냐” 제품 관여도 높이려 애쓰는 기업들… 귀를 기울여 광고 메시지를 들어보면 몸부림을 느낄 수 있다

이주의 용어

제품 관여도(product involvement)

고관여 상품(high-involvement product)

저관여 상품(low-involvement product)

전략적 움직임(strategic move)

어릴 적 두부 심부름은 간단했다. 엄마가 쥐어준 동전을 손에 꼭 들고 가서는 가게 주인 아주머니한테 내밀며 한 마디만 하면 됐다. “두부 한 모 주세요.” 요즘 두부 심부름은 완전히 다르다. “좀 비싸도 풀무원으로 살까, 아니면 좀 싼 걸로 살까? 콩은 국산을 쓴 게 나은가, 아니면 중국산도 괜찮을까? 찌개용으로 할까, 아니면 부침용으로 할까?” 아내가 쥐어준 돈을 잘 간수하는 건 둘째 문제다. 반찬거리 심부름엔 반드시 휴대전화를 챙겨가야 하는 이유다. 판단할 수 없는 돌발 정보에 대해 원격 자문을 받기 위해서다.

맥주·담배·자동차 부품까지

난데없이 두부 이야기를 꺼낸 것은, 풀무원의 노력에 의해서 두부라는 제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제품 관여도(product involvement)가 얼마나 극적으로 바뀌었는지를 보여드리기 위해서다. 그리고 제품 관여도에 대한 지난번 글을 변명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지난번 5분 경영학에 “소주와 와인에 대한 우리의 자세”(<한겨레21> 630호)를 쓴 뒤, 한 소주 애호가로부터 가벼운 항의를 받았다. 항의 내용은 간단했다. 소주는 이미 맛과 도수가 다양화한 고관여 상품(high-involvement product)으로 바뀌었는데, 그 글에서는 대표적 저관여 상품(low-involvement product)인 것처럼 묘사해 애호가로서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이다.

그 애호가 말이 맞다. 제품 관여도는 바뀐다. 그리고 많은 기업이 생산 제품의 관여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strategic move)을 보이고 있다. 제조업체들이 모두들 고관여 상품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품 관여도가 높으면 마진을 높일 수 있고 후발업체와의 가격경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소비자가 제품의 질을 하나하나 따져묻기 때문에, 제품 차별화로 경쟁할 수 있다. 그래서 높은 마진을 붙일 수 있다. 저관여 상품은 제품의 질을 높여도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 그저 가격과 접근성으로 경쟁하는 게 상책이다. 그러다 보면 경쟁 제품 사이에 가격 경쟁이 벌어지기 일쑤고, 마진은 박해지기 마련이다.

소주 회사의 전략적 움직임은 성공적이다. 처음에 묵묵히 두꺼비만 찾던 소비자들이, 언제부터인가 함유 알코올 도수를 따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깔끔한 맛’을 따져묻는 마니아층도 생기고 있다. 소주 이상으로 극적인 전략적 움직임을 보여 성공한 제품이 맥주와 담배다. 과거 OB와 크라운의 양대 산맥이 맥주시장을 지배하던 시절, 맥주에 마케팅이란 곧 유통이었다. 사람들은 맥주의 브랜드를 따져묻지 않았다. 그저 술집 주인이 내오는 것을 마셨다.

크라운맥주가 ‘하이트’를 내놓으면서 그 적막한 시장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맥주 회사 사이에 광고전이 벌어졌고, 브랜드 맥주가 생기기 시작했다. 곧이어 카스가 가세하더니 맥주 신규 브랜드는 봇물이 터지게 된다. 젊은 사람은 어떤 맥주를, 나이 든 사람은 어떤 맥주를 좋아한다는 선입견도 생겼다. 이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술집 주인이 내오는 것을 그대로 마시는 맥주 소비자는 거의 없어졌다. 1993년 하이트맥주가 등장한 지 10여년 만에 그렇게 바뀌었다.

담배도 마찬가지다. 모든 애연가가 솔이나 88 한 가지로 만족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담배는 도대체 뭐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엄청나게 다양해졌다. 흡연자는 이제 따져묻는다. 담배에 타르와 니코틴이 얼마나 들었는지, 굵기는 어느 정도인지, 담배연기에서 특별한 향이 나는지. 역시 관여도가 높아진 것이다.

요즘에는 점점 더 많은 저관여 상품 생산자들이 관여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과거처럼 값싼 노동비용을 앞세워 비용을 절감하고 가격 경쟁을 벌이면서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은 쉽게 먹혀들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생산비용이 높아진 탓에 가격 경쟁을 섣불리 벌였다가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게 될 판이다. 소비자 의식이 높아져 제품 관여도를 높이기가 용이해졌고, 소득 수준이 높아져 고가 제품도 예전보다 잘 팔려나간다는 점도 기업들의 이런 전략을 뒷받침한다.

지금부터라도 귀를 기울여 광고를 들어보라. 메시지 하나하나에 관여도를 높여보려는 기업의 몸부림이 묻어 있다.

“아무 엔진오일이나 넣어달라는 말은 내 차 사랑 결핍증”이라고 주장하는 지크XQ 광고가 대표적이다. 그 광고가 나오기 전까지, 소수의 전문가를 뺀 대부분 운전자들은 어떤 엔진오일을 넣어야 하는지를 고민해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순정부품”을 강조하는 현대모비스 광고도 마찬가지다. 그저 카센터에서 권하면 별 생각 없이 사용하던 게 자동차 부품이었다.

유선 전화기는 천덕꾸러기로 전락

원래 높았던 제품 관여도가 낮아지는 것은 기업들이 반드시 피하고 싶은 경우다. 천덕꾸러기가 된 가정용 유선 전화기를 보라. 무선 전화기 보유 여부가 그 집안의 경제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휴대전화로 음성통신 주도권이 넘어간 지금, 유선 전화기는 그저 ‘없으면 아쉬우니 한 대 있기만 하면 되는’ 저관여 상품이 됐다. 이제 품위보다는 가격이 제품 선택 기준이 됐다. 전화기 판매 마진이 급격히 떨어진 것은 물론이다.

사랑에 그리도 큰 책임과 간섭이 뒤따르는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랑을 찾아나선다. 빠지면 적잖은 비용을 치러야 하기도 하지만, 또 그만한 가치를 돌려주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의 제품 관여도를 높이려는 기업들의 전략적 움직임이 꼭 그렇다.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5분경영학] 가게 땅값 올랐다고 웃지 마세요

2006-03-30 건물주가 가게 주인인 경우 자산은 늘어났지만 이익은 줄어든 셈… 늘어난 임대료를 챙긴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을 계산하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회계적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700

[5분경영학] 피터 드러커의 시간관리법

2007-07-12 지식노동자의 가장 중요한 자원, 시간을 기록하고 관리하고 통합하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미국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시간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경영...

  • HERI
  • 2011.06.27
  • 조회수 7116

[5분경영학] 프로구단은 왜 신인을 지명할까

2006-06-09 선수가 의무적으로 한 구단에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드래프트제의 경제학… 수요독점으로 가격 낮추는 전략, 공급업체를 독점한 월마트나 GM을 보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758

[5분경영학] 컴퓨터 가격은 왜 자꾸 떨어질까

2006-04-26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을수록 수요가 높아지는 네트워크 외부효과…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으로 주변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구매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 HERI
  • 2011.06.27
  • 조회수 7906

[5분경영학] 차별 있는 곳에 이익 있다

2007-07-12 최대 지불 의사’에 따라 각각 다른 값에 파는 가격 차별 전략 기업의 음모라 봐야 할까 모두의 ‘꿩먹고 알먹기’로 봐야 할까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영화값도 얼마 안 내...

  • HERI
  • 2011.06.27
  • 조회수 6892

[5분경영학] 주위를 둘러보고 “깎아주세요”

2006-02-15 물건값 흥정에 숨어 있는 경영학, 탐색비용을 둘러싼 게임 독과점이라면 정가 판매를, 경쟁이 치열하면 흥정을 권한다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선물을 사러 서울 인사동에 들렀다. 여...

  • HERI
  • 2011.06.27
  • 조회수 6856

[5분경영학] 죄수의 딜레마, 기저귀의 딜레마

2006-07-06 가만 있는게 더 이익인 기저귀 회사들은 왜 연구개발에 거액을 투자할까 … 게임이론이 두 업체의 경쟁 설명, 죄수의 딜레마가 소비자를 승리자로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

  • HERI
  • 2011.06.27
  • 조회수 9699

[5분경영학] 제품의 성분을 널리 알려라

2006-08-10 인텔 인사이드·누트라스위트·돌비·고어텍스의 성공 비결… 최종소비재가 아닌 성분을 광고하는 ‘성분 브랜딩’ 전략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성분 브랜딩(ingredient b...

  • HERI
  • 2011.06.27
  • 조회수 7007

[5분경영학] 전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전략

2007-01-19 회사를 옮길 때 예상되는 변화는 기능적·위계적·문화적 축으로 분석 가능…의미 창출을 단단히 하고 위험을 예상하고 실망을 운명으로 받아들여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주의 용어 전직(career tran...

  • HERI
  • 2011.06.27
  • 조회수 6767

[5분경영학] 재포지셔닝으로 운명을 바꿔라

2007-10-25 타이레놀·하얀 바나나 우유처럼 소비자의 마음에 틈새를 만들어 파고드는 전략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아스피린을 복용해서는 안 되는 수백만 명을 위해서….” 광고는 이렇게 시작했...

  • HERI
  • 2011.06.27
  • 조회수 9009

[5분경영학] 자동차 ‘순정품’에 얽힌 미스터리

2006-11-23 옵션을 묶음으로 파는 것은 국지적 독점을 통한 이익 극대화 전략…인터넷 커뮤니티의 도토리 판매도 회원들에 대한 독점력 때문에 가능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 사진 류우종 기자 ...

  • HERI
  • 2011.06.27
  • 조회수 7296

[5분경영학] 일하기 좋은 기업은 돈을 못 번다?

2008-02-21 직원 만족도 높으면 투자 이익이 작아진다는 신고전파 이론, 이미 현실에 맞지 않아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간단한 계산부터 해보자. 기업의 주가는 이익과 비례한다. 이익은 매출에서...

  • HERI
  • 2011.06.27
  • 조회수 7745

[5분경영학] 인터넷 뉴스는 영영 공짜일까

2006-12-21 신문사들이 공짜로 서비스하자 독자들의 최대지불의사도 0으로 굳어져…이대로 가면 사회적으로도 손실, 전문화된 콘텐츠일수록 유료화 가능성 높아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 사진 윤운식...

  • HERI
  • 2011.06.27
  • 조회수 6738

[5분경영학] 유명한 CEO가 돈도 잘 벌까

2007-01-03 실적이 좋으면 훨씬 높은 연봉 받지만 나쁘면 정상보다 더 많이 깎여…CEO가 유명해지면 단기적으로는 연봉이 오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하락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

  • HERI
  • 2011.06.27
  • 조회수 8175

[5분경영학] 오너 경영자의 성공 확률은?

2008-03-06 미국 기업에서 증시 상장까지 자리 지킨 창업자는 25%도 안 돼…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부자가 되고 싶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업을 해서 대기업의 최...

  • HERI
  • 2011.06.27
  • 조회수 7056

[5분경영학] 악플이 매출을 키운다?

2006-12-14 기업의 일방적 홍보가 아니라 소비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뀌는 마케팅…댓글은 웹이라는 공간에서 퍼지는 입소문, 소비는 능동적 행위로 다시 태어나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

  • HERI
  • 2011.06.27
  • 조회수 7057

[5분경영학] 아파트 광고는 왜 하시나요

2005-12-15 업종의 광고 탄력성이 높고 가격 탄력성이 낮을수록 광고 지출은 늘어나 시장 유지를 위해 광고비 쏟아붓는 미국 맥주회사, 한국 아파트도 그런가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어고노믹스...

  • HERI
  • 2011.06.27
  • 조회수 7445

[5분경영학] 신용카드 ‘2월 미스터리’

2007-03-06 명절 연휴에 지출이 증가하는 건 ‘사회적 소비’의 결과…얼리어답터도 생태주의자도 갖고 있는 구별짓기 본능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이주의 용어 사회적 소비(social consumption) 과...

  • HERI
  • 2011.06.27
  • 조회수 7002

[5분 경영학] 스타벅스는 왜 길목마다 있을까

2006-07-20 노출 빈도 높이고 브랜드의 중요도 각인시키는 도시 중심가 선점전략… 경쟁 브랜드가 들어설 틈을 주지 않는 원천봉쇄, 월마트도 마찬가지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 사진 윤운식 기자...

  • HERI
  • 2011.06.27
  • 조회수 7134

[5분경영학] 소비자를 질투나게 하지 말라

2006-03-02 신규고객 잡으려고 가격할인하다 충성고객의 배신감과 질투 자극 효과적인 전략적 가격 책정도 고객의 마음 헤아리지 못하면 역효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어느 날, 공과금을 온라인...

  • HERI
  • 2011.06.27
  • 조회수 7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