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삶과경제) 후계자의 경쟁력

HERI 2011. 06. 27
조회수 5978
2008-07-18 
세계적 기업 존슨앤존슨의 경영을 이야기할 때, 경영학자들은 창업자이자 소유주였던 로버트 우드 존슨보다 그의 뒤를 이어 기업을 이끈 ‘월급 사장’ 제임스 버크를 먼저 언급한다. 버크는 존슨앤드존슨에 대리급으로 입사해, 24년 만인 1976년 최고경영자 자리에까지 오른 뒤 13년 동안 회사를 이끌며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미국 샐러리맨의 신화’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신뢰받는 경영자였다. 그런데 그가 창업자보다 기업을 더욱 키우고 더 훌륭한 경영자로 기억되는 것은, 창업자와 구별되는 자기만의 정체성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버크를 일약 세계적 스타 경영자로 만든 것은, 회장으로 재직하던 1982년에 벌어진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이다. 당시 존슨앤존슨의 두통약 타이레놀을 복용한 일곱 명의 미국인이 그 안에 들어 있던 독극물로 사망했다. 경찰은 외부인이 판매점에서 주사기로 독극물을 주입했으므로 존슨앤존슨 쪽 과실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버크는 자발적으로 전국의 타이레놀 전체를 회수하며 1억달러(1천여억원)의 비용을 지출하고, 독극물 주사가 불가능하도록 정제형 타이레놀을 다시 내놨다. 결국 존슨앤존슨은 소비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재도약했고, 현재 미국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기업으로 꼽힌다. 

사실 이는 버크가 만든 자신만의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버크는 후계자로 지명되자마자 창업자가 만든 경영 신조에 도전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세계를 돌며 임원들을 직접 만나 경영 원칙에 대한 토론과 설득작업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수십 년 묵은 경영철학을 가장 현대적인 것으로 개정했고, 회사 의사결정 우선순위를 고객, 임직원, 지역사회, 주주 차례로 명시했다. 바로 이 원칙이 타이레놀 사건을 극복하게 했다. 

세계 대부분 후계 경영자들은 전임자와 구분되는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대표적 사례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전임자의 그늘을 누구보다도 크게 느낄 만한 사람이다. 전임 회장 잭 웰치가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경영자였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고자 이멜트는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 친환경적 상상력)이라는 파격적 경영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며 환경경영과 사회 책임경영을 강조한다. 웰치가 공격적 인수합병과 대량해고로 기업을 키웠고,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멜트의 새로운 전략은 일단 방향은 옳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까이는 에스케이 최태원 회장도 있다. 최 회장은 최근 유엔 글로벌콤팩트 이사로 선임됐다. 유엔 글로벌콤팩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원칙을 만들고 전파하는 국제기구다. 이런 국제적 이니셔티브에 한국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파격적인 일이다. 특히 에스케이가 과거 유공과 한국이동통신을 정부로부터 넘겨받아 성장한 ‘불하 기업’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몇 해 전 분식회계 건으로 경영자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고 지배구조를 바꿔야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변신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후계 경영자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색깔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국 최대 기업집단 삼성조차도 그렇다. 이건희 회장이 퇴진을 선언했지만, 그 뒤 경영진의 색깔은 아리송하기만 하다. 

후계자 노릇은 쉬운 게 아니다. 전임자의 성과가 좋을수록 더 그렇다. 전임자와 자신을 분명하게 구별짓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실패하면 전임자의 성과마저 무너뜨리게 된다. 한국 기업의 ‘후계자’들한테서 색깔을 찾고 싶은 이유다.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5분경영학] 오너 경영자의 성공 확률은?

2008-03-06 미국 기업에서 증시 상장까지 자리 지킨 창업자는 25%도 안 돼…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부자가 되고 싶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업을 해서 대기업의 최...

  • HERI
  • 2011.06.27
  • 조회수 6939

[5분경영학] 악플이 매출을 키운다?

2006-12-14 기업의 일방적 홍보가 아니라 소비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뀌는 마케팅…댓글은 웹이라는 공간에서 퍼지는 입소문, 소비는 능동적 행위로 다시 태어나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

  • HERI
  • 2011.06.27
  • 조회수 6954

[5분경영학] 아파트 광고는 왜 하시나요

2005-12-15 업종의 광고 탄력성이 높고 가격 탄력성이 낮을수록 광고 지출은 늘어나 시장 유지를 위해 광고비 쏟아붓는 미국 맥주회사, 한국 아파트도 그런가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어고노믹스...

  • HERI
  • 2011.06.27
  • 조회수 7332

[5분경영학] 신용카드 ‘2월 미스터리’

2007-03-06 명절 연휴에 지출이 증가하는 건 ‘사회적 소비’의 결과…얼리어답터도 생태주의자도 갖고 있는 구별짓기 본능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이주의 용어 사회적 소비(social consumption) 과...

  • HERI
  • 2011.06.27
  • 조회수 6855

[5분 경영학] 스타벅스는 왜 길목마다 있을까

2006-07-20 노출 빈도 높이고 브랜드의 중요도 각인시키는 도시 중심가 선점전략… 경쟁 브랜드가 들어설 틈을 주지 않는 원천봉쇄, 월마트도 마찬가지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 사진 윤운식 기자...

  • HERI
  • 2011.06.27
  • 조회수 7042

[5분경영학] 소비자를 질투나게 하지 말라

2006-03-02 신규고객 잡으려고 가격할인하다 충성고객의 배신감과 질투 자극 효과적인 전략적 가격 책정도 고객의 마음 헤아리지 못하면 역효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어느 날, 공과금을 온라인...

  • HERI
  • 2011.06.27
  • 조회수 7739

[5분경영학] 세상엔 두 종류의 소비자가 있다

2006-02-25 쿠폰을 쓰는 소비자와 안 쓰는 소비자,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와 무딘 소비자 현대차가 수출용과 내수용 차 가격을 달리 하는 것도 민감도에 따른 시장 세분화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

  • HERI
  • 2011.06.27
  • 조회수 6809

[5분경영학] 선거 홍보물 속의 마케팅 전략

2007-12-20 유권자를 소비자로 만드는 정치 마케팅… 비누처럼 팔려나가는 대선 후보들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후보들은 마치 비누처럼 마케팅되고 팔려나간다.” 세계적 마케팅 대가 필립 코틀러...

  • HERI
  • 2011.06.27
  • 조회수 6734

[5분경영학] 사랑을 얻으려는 기업들의 투쟁

2006-10-26 “소주가 왜 저관여 상품이냐” 제품 관여도 높이려 애쓰는 기업들… 귀를 기울여 광고 메시지를 들어보면 몸부림을 느낄 수 있다 이주의 용어 제품 관여도(product involvement) 고관여 상품(high-involvement p...

  • HERI
  • 2011.06.27
  • 조회수 7998

[5분경영학] 미국 소와 한국 돼지의 긴장 관계

2007-08-09 대체제로 묶여 있는 쇠고기·돼지고기· 닭고기, 경쟁 상대를 파악하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풀렸다. 유통업체들은 값도 싸고 맛도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702

[5분경영학]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다

2007-11-08 몸·감정·마음·영혼의 재충전…와코비아은행 실험 결과 업무 성과 13%포인트 높여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일이 많다고 푸념하던 동료에게 말했다. “나는 일이 많은 게 아니라 시간이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424

[5분경영학] 무시당해야 성공한다

2007-11-22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 때는 기존 기업이 주목하지 않는 곳을 노려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질문 하나. 당신이 새로 사업을 벌이려 준비 중인 사업가라면, 평균수익률이 아주 높은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160

[5분경영학] ‘마일리지 게임’ 두배로 즐기기

2006-11-10 마일리지 게임’ 두배로 즐기기항공사에서 유래해 서비스 업종 전반으로 번진 마케팅 기법…충성도 상승과 가격차별 효과로 기업 이익 극대화에 기여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

  • HERI
  • 2011.06.27
  • 조회수 13133

[5분경영학] 때로는 이름을 숨겨야 팔린다

2006-08-23 기존 브랜드 이름을 철저히 감춘 블랙&데커의 ‘작전명 서든 임팩트’…‘디월트’ 공구는 기술자 시장을 파고든 독립 브랜드 전략의 결과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 HERI
  • 2011.06.27
  • 조회수 7483

[5분경영학] 2등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2007-10-11 1등만이 기억되는 세상, 대항마 전략과 체계화 전략으로 성공한 2등 기업들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몇 가지 퀴즈. 가장 먼저 달에 도착한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406

[5분경영학] 대리운전과 택시의 불행한 만남

2006-01-11 택시 과잉공급을 불러온 대리운전 성업은 ‘대체재 관계’로 설명 가능 한 시장에서 경쟁하는 다른 상품들을 파악하는 것이 ‘시장 획정’의 기본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한국에 처...

  • HERI
  • 2011.06.27
  • 조회수 7354

[5분경영학] 다방 커피가 사라진 까닭은?

2007-02-15 소득 증가에 따라 제품이 극단적으로 다양해지는 극차별화 현상…소비자의 평가가 엇갈리는 제품에서 발생, ‘안티’를 두려워말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timelast@hani.co.kr 이주의 용어 극차별화(hy...

  • HERI
  • 2011.06.27
  • 조회수 7341

[5분경영학] 놀이공원 입장료는 왜 비싸졌나

2006-05-23 유대전화나 놀이공원처럼 기본요금·입장료와 사용료를 따로 받는 이중가격제…기업의 독점력이 클수록, 소비자 성향이 동질적일수록 더 매력적인 가격 전략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

  • HERI
  • 2011.06.27
  • 조회수 10185

[5분경영학] 그들은 왜 야근을 밥 먹듯 할까

2007-02-02 주5일 시대에 전문직 퇴근 시간이 점점 더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소비자가 정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서비스의 가치를 입증하려면 힘들어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timelast@hani.co.kr 이주의 용어 ...

  • HERI
  • 2011.06.27
  • 조회수 6663

[5분경영학] 그 식당은 왜 뷔페를 차렸을까

2006-04-20 햄버거집 세트 메뉴처럼 ‘묶음 판매’로 다양한 고객을 만족시키는 전략… 소비자들의 메뉴에 대한 최대지불의사가 극단적으로 다를 때 효과 발휘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

  • HERI
  • 2011.06.27
  • 조회수 7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