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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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2015년 11월 종영된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송곳>의 대사 중 도드라졌던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취업규칙’이다. 취업규칙이란 ‘직원들의 노동조건에 관한 회사의 규정’을 말한다. “일단 푸르미 취업규칙부터 봅시다. 룰을 알아야 게임을 할 것 아니에요.” 구고신(안내상)이 잠자고 있던 취업규칙을 깨우는 장면이다.

근래엔 드라마가 아닌 뉴스에서 ‘취업규칙’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지난주 11일 한국노총이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한 ‘9·15 노사정 대타협’ 파탄을 선언하면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지침을 폐기하고 원점에서 충분히 논의할 것을 강하게 주문했다.

근로기준법 제94조에 의하면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간주되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구하도록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임금피크제’가 직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취업규칙 변경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정부가 발표한 초안에 따르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기준으로 볼 때, 임금피크제가 청년일자리 확대에 기여할 것이며, 정년이 늘어나는 만큼 고용이 연장되고 총임금이 증가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동의 없이 취업규칙 변경이 가능하다는 게 골자다.

‘임금피크제’란 일정 연령 이후에는 매년 일정한 비율로 임금을 감액하는 대신 정년을 연장 또는 보장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2013년 5월 ‘고령자고용촉진법’이 개정되면서 2016년부터 법적 정년이 60살로 연장됐고, 이를 기점으로 기업들의 ‘임금피크제’ 검토는 급물살을 탔다. 언뜻 보기에 기업에는 당장의 부담을 경감시키면서, 직원들은 더 오랜 시간 일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업 입장에서 임금피크제가 동반된 정년연장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가장 큰 논란거리는 퇴직금이다. 퇴직금을 받을 때 근무일수와 평균임금만을 가지고 계산하는데, 이 중 평균임금은 가장 마지막에 받은 3개월의 월급 평균이기 때문에 5년간 근무연수가 늘어난다 해도 퇴직금 총액은 상당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비슷한 액수의 인건비로 몇 년 더 고용할 수 있는 제도가 될 수도 있다.

실제 정년 60살을 채우면서 임금피크제에 따른 총임금 증가의 혜택을 누리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간한 ‘통계로 보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모습’ 자료집에 따르면, 2014년 임금노동자의 평균 근속기간은 5.6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짧다. 기업경영 평가기관인 ‘시이오(CEO)스코어’가 2011~2013년 국내 500대 기업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350곳의 평균 근무 기간은 10.32년이었다. 분석 대상 기업을 30대 그룹 계열사 169곳으로 좁히면 평균 근속 연수는 9.7년으로 줄어든다. 알바천국이 10인 이상 중소·중견기업 29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5 중소·중견기업 채용계획 및 인식 조사’에 따르면 평균 근속 연수는 2.4년으로 대기업의 4분의 1 수준이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가진다는 임금피크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상식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임금피크제의 시행은 자칫 임금수준을 하락시키는 편법으로 작동할 수 있다. 임금피크제는 ‘평생 직장’ 개념을 가진 몇몇 개별 조직이 퇴직금 문제 등 제도적으로 보완하면서 채택해야 할 수준의 제도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등록: 2016-01-17 19:27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265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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