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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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명절 고향 가는 차 안에서 대학 졸업을 앞둔 딸과 얘기를 나눴다. 요즘 친구들이 만나면 주로 진로 문제나 이민 얘기를 많이 한단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단다. 이민 관련 정보를 나누고 심지어 이민계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민 가려는 가장 큰 이유는 간단했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란다. 단테는 신곡에서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이라 했다. 청년들에게 우리나라가 지옥같이 고통스러운 곳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얼마 전 청년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자고 대통령이 ‘깜짝 제안’을 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기부금을 모으는 ‘청년희망펀드’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공익신탁인 이 펀드는 5일 남짓 걸려 ‘뚝딱’ 만들어졌다. 1호 기부자로 대통령이 나선 뒤 열흘 만에 5만명이 가입해 모금액은 순식간에 20억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청년희망펀드에 대한 기대만큼 우려도 많다. 먼저 노동개혁안 통과 직후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내놓은 아이디어라 동기의 진정성부터 의심받고 있다. 또 정부가 재정과 정책으로 풀어야 할 청년 일자리 문제를 기부금으로 얼마나 풀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적잖다. 무엇보다 어떤 기관이 기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채 출발했다는 점을 우려한다.

청년희망펀드가 청년 일자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이왕 만들어진 거라면 밑그림을 잘 그려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마중물 구실을 했으면 한다. 때마침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소셜이노베이션펀드(사회혁신기금) 초대 총괄국장을 맡았던 폴 카터가 서울을 찾아 강연을 했다. 미국 사회혁신기금의 사례는 청년희망펀드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운영되어야 할지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줬다.

사회혁신기금에는 시민단체가 기획 단계부터 함께하고 운영주체로 참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용해 사회혁신기금 조성을 선거공약으로 발표했다. 취임 뒤 당시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주도한 ‘미국 봉사법’에 근거해 기금 관련 법안은 의회에서 신속하게 통과됐다. 기금 관련 조직으로 정부 산하에 새로 만들기보다 이미 정부 보조금을 받아 좋은 성과를 낸 중간지원기관을 활용했다. 현재 전국커뮤니티서비스협회가 중간지원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금 조성 원칙은 정부 예산을 기초자금으로 삼고 민간 자금이 반드시 매칭되는 것이다. 정부가 사회혁신기금으로 예산을 배정해 이 중 일부를 중간지원기관에 보낸다. 중간지원기관은 여기에 일대일 매칭으로 재단, 기업, 자선가 등의 민간 기부를 받는다. 이 기금의 일부를 프로그램 운영기관인 비영리단체에 준다. 비영리단체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자금을 만들어 사용한다. 정부와 민간 모두가 재원 마련에 참여해 기금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힘을 보탠다.

폴 카터는 강연에서 민관 협력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2009년 사회혁신기금의 필요성을 설파하며 “미국이 맞닥뜨린 사회문제 해결 방법은 매일 풀뿌리에서 내놓기에 정부는 이들의 노력을 대신하려 하지 말고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희망펀드도 청년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실험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청년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어지고 퍼져가면서 성공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신뢰의 자본도 쌓여갈 수 있다. 다행히 몇년 새 풀뿌리조직들의 청년 문제를 풀기 위한 실험들이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청년마을공동체 ‘우리동네사람들’은 공동주거를 기반으로 농사를 짓고, 협동조합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을 만들어 청년 자립 플랫폼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희망의 불씨를 살려가는 것이 청년희망펀드가 해야 할 일이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hslee@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113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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