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이현숙사회적경제센터장.JPG 이현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생활임금을 받으니 일할 맛도 나고, 생계 걱정도 덜 하게 됐어요.”

얼마 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성북구청 환경미화원인 박용범씨가 생활임금으로 생긴 변화에 대해 한 말이다. 2009년부터 3년 동안 용역업체 직원으로 일할 때 그의 월급은 92만원이었다. 2012년 구청장의 공약 실행으로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이 그를 직접 채용하면서 월급이 129만원으로 올랐다. 다시 1년 뒤 성북구가 전국 처음으로 생활임금제를 시행하면서 월급은 135만원이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그와 동료들의 직장 만족도는 높아졌고, 이후 이직자는 한명도 없었단다.

생활임금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말한다. 사실 국가가 법률로 정하는 최저임금도 근로자의 생활보장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너무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권고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근로자 평균 임금의 50%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은 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하위권이다. 생활임금은 근로자의 실질적인 최저생계를 보장하려는 정책적 대안으로, 최저임금 현실화를 이끌 수 있다.

최근 3년 새 생활임금제를 도입하는 지자체가 늘었다. 전국 지자체 29곳이 생활임금제를 시행하거나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부터 생활임금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시는 에스에이치공사 등 산하 공공기관에도 확산시켜가고 있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이런 움직임은 민간 부문의 변화도 이끌었다. 성북구는 최근 한성대, 성신여대 등 지역 대학들과 생활임금 적용에 대한 상호협력 업무협약을 맺었다.

생활임금제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방재정 악화를 우려한다. 예산으로 따져보면 이런 지적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성북구의 경우 생활임금제 시행에 따른 추가예산이 첫해는 1억5000만원이었고, 다음 해는 2억7000만원가량이었다. 현재 생활임금을 시행하고 있는 지자체의 평균 추가예산은 2억8000만원 정도다. 지자체의 전체 예산 규모에 견줘 볼 때 재정을 악화시킬 정도의 큰 부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자체에서 생활임금제가 퍼져가는 가운데 아직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행정명령이나 조례를 만들어 생활임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법제처는 지난해 생활임금조례가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법제처의 이런 의견은 지자체장들이 생활임금제 도입을 거부하거나 망설이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지자체와 조달, 용역, 위탁계약을 맺는 민간기업에 생활임금을 확산시키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생활임금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김경협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등 21명의 국회의원이 지난해 1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최저임금법에 생활임금조항(24조)을 새로 만들자는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올해 4월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내용이 수정됐다. 따로 조항을 만들지 않고 최저임금법의 효력조항(6조) 뒷부분에 내용을 덧붙인 것이다. 추가한 내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적정한 임금을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이다. 아쉽게도 이 수정법안조차 일부 여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본회의 통과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간 앞선 지자체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생활임금제를 어렵사리 마련했다. 이제 생활임금제는 정착과 확산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 숙제를 제대로 풀려면 무엇보다 생활임금제의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이번 국회에서 생활임금제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꼭 넘어서길 바란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hslee@hani.co.kr

등록: 2015-09-06 18:44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76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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