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소위 ‘조국 사태’ 이후 20대 청년세대의 박탈감과 분노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일부 명문대생들은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며 촛불을 들었다.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세대갈등 프레임을 들고나왔다. 민주화의 과실을 독차지하려는 기득권 86세대와, 그에 맞서 분노하는 20대 간의 대결이라는 구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 명문대생들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그들이 든 촛불은 박탈감에 기반한 촛불이 아니라 자기 스펙의 진실성을 선언하는, “자신들의 성채를 공고히 하려는 촛불”이라는 고발들이다.


20대가 느끼는 박탈감의 실체를 고민하던 중 흥미로운 데이터를 찾았다. 2018년 1월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했던 온라인 조사 결과다. 한해가 지난 데이터지만 현재적 의미가 작지 않아 보인다. 먼저 ‘우리 세대는 사회경제적으로 다른 세대에 비해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을 누렸다’는 질문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청년세대가 가장 부정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50대(38.3%)와 함께 20대(37.5%)의 동의가 가장 높았다. 동의가 가장 낮은 연령층은 30대(31.6%)였다.


세대 내의 차이는 어떨까? 경제적 지위에 따른 계층별로 구분해 보면 20대의 동의 정도가 이렇게 높은 이유가 드러난다. 부유한 집 출신 20대의 56.3%가 동의해 가난한 집 출신(28.6%)에 견줘 동의 정도가 갑절 높았다. 이들 부유한 부모를 둔 20대는 ‘자신의 세대가 더 많은 기회와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자의식이 모든 집단을 통틀어 가장 높았다. 심지어 보수언론이 곧잘 ‘사회경제적 기회를 독점한’ 특권 집단으로 공격하는 부유한 50대(46.7%)보다도 훨씬 높았다. 물론 이들이 느끼는 기회와 혜택에는 기술발전과 민주주의, 글로벌화 등 시대적 변화에 따라 윗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것을 누리고 있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정치에 대한 이해와 관심, 정치적 효능감에 대한 인식에서도 부유한 20대와 가난한 20대 사이의 차이는 작지 않았다. ‘나는 우리나라가 당면한 정치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질문에 부유한 20대들은 72.9%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가난한 20대는 64.3%에 그쳤다. ‘정치가 바뀌면 나의 삶도 바뀔 수 있다’는 질문에는 두 집단 간 차이가 더 커져서 각각 81.3%, 62.5%로 나타났다.


부유한 20대는 희망이 넘친다. 10명 중 9명꼴인 89.6%가 미래를 희망적으로 인식했다. 모든 집단을 통틀어 가장 높다. 반면 가난한 20대는 단지 32.1%만 미래를 희망적으로 인식했다. 부유한 20대 10명 중 9명이 희망에 들떠 있을 때, 가난한 20대 10명 중 단지 3명만이 희망의 지푸라기를 잡고 있다. 부유한 20대들은 경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연대와 협력이 우선시되는 사회’와 ‘경쟁과 자율이 우선시되는 사회’ 중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부유한 20대의 50%가 경쟁과 자율이 우선시되는 사회를 선택했다. 모든 집단을 통틀어 가장 높다. 이들은 경쟁에 자신이 넘친다. ‘조국 논란’에서 명문대생들의 자존감이 훼손되고 분노하는 이유와 겹친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20대의 현주소다. 20대는 가장 분열된 세대다. 상층의 일부가 단군 이래 가장 희망과 경쟁 의욕에 가득 찬 세대라면, 그 아래 다수는 20세기 이래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가난해지리라는 불안에 사로잡힌 세대다.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세대지만 사회적으로는 같은 집단이 아니다. 이들은 운명을 공유하지 않는다. 세대론의 설명력이 무너지는 지점이다.


20대의 분열을 내세워 특권화된 86세대에 대한 비판을 흐리려는 것이 아니다. 세습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부와 교육의 기회가 갈수록 얽혀가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명문대가 고소득층 자녀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입시 자체가 불평등의 재생산장치가 된 사회에서 촛불을 든 명문대생들이 토로하는 ‘박탈감’을 20대 전체의 박탈감과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조국 논란’에 낄 관심도 여력도 없는, 수많은 울타리 밖 20대 청년층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촛불조차 들지 못한 청년들의 낮은 웅얼거림에, 가냘픈 신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hgy4215@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11071.html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칼럼] 문제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략적 재정정책: 재정이 장벽이 아닌 마중물이 되려면

문제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전략적 재정정책 : 재정이 장벽이 아닌 마중물이 되려면   * 칼럼 내용은 아래 자료 첨부

  • HERI
  • 2020.01.13
  • 조회수 3984

[유레카] ‘국가 미래비전’의 쓸모 / 이창곤

우리나라에서 국가 차원의 중장기 미래비전이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1971년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와 한국미래학회가 함께 만든 <서기 2000년의 한국에 대한 조사연구>를 그 시작으로 꼽을 수 있다. 당시 초점은 과학기술...

  • HERI
  • 2019.12.26
  • 조회수 4162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공정과 평등이 충돌할 때

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얼마 전 만난 공공기관 노조위원장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난달 9일 전태일 열사 49주기에 열리는 노동자대회를 앞두고 조합원들에게 집회 참여를 독려했더니, 젊은 조합원 여럿이 ...

  • HERI
  • 2019.12.20
  • 조회수 4853

[유레카] 반복지 재정포퓰리즘 / 이창곤

재정(public finance)이란 말은 라틴어의 ‘법정 판결로 결정한 벌금(fine)’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에선 15세기 국왕이 부리는 조세징수 청부인을 지칭했고, 독일에서는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지불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오늘날 나...

  • HERI
  • 2019.12.03
  • 조회수 4382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여론조사 불신, 언론도 공모자

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여론조사 신뢰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수상한’ 여론조사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한 언론사의 기사가 발단이 됐다. 특히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

  • HERI
  • 2019.11.25
  • 조회수 4534

[유레카] ‘개혁과 권력의 시계추’ / 이창곤

“짐승들조차 쉴 동굴과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라를 위해 싸우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공기나 햇빛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로마공화정 시대, 대지주의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개혁을 추진하다 죽임...

  • HERI
  • 2019.11.11
  • 조회수 4256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울분사회 한국, 지속가능한가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울분사회’,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새로운 수식어다. 한국인의 43.5%가 만성적인 울분 상태이며 심한 울분을 기준으로 하면 독일의 4배 수준이라고 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 HERI
  • 2019.10.25
  • 조회수 4765

[유레카] 화석연료 없는 복지국가 / 이창곤

2019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청소년을 꼽으라면 아마도 스웨덴의 10대 소녀 그레타 툰베리라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난달 뉴욕에서 열린 ‘2019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선보인 그의 연설은 압권이었다. ...

  • HERI
  • 2019.10.16
  • 조회수 4527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촛불을 들지 못한 20대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소위 ‘조국 사태’ 이후 20대 청년세대의 박탈감과 분노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일부 명문대생들은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며 촛불을 들었다.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 HERI
  • 2019.09.27
  • 조회수 4535

[유레카] ‘조국 논란’의 종착점 / 이창곤

‘조국 논란’의 끝은 어디인가? 언론 보도는 연일 차고 넘친다. 하지만 공론(公論)은 없다. 검찰 수사는 마침내 ‘자택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장관과 직접 연계된 객관적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지와 ...

  • HERI
  • 2019.09.25
  • 조회수 4711

[유레카] 절실한 정책결정의 ‘관제탑’/ 이창곤

대부분의 공항에는 컨트롤타워, 즉 관제탑이 있다. 관제탑의 허가 없이는 어떤 비행기도 뜨고 내릴 수가 없다. 관제탑은 항공기의 위치와 고도를 확인해 필요사항을 지시한다. 비행 전에는 조종사가 제출한 비행계획을 점검하고 ...

  • HERI
  • 2019.09.03
  • 조회수 4642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조국 정국’ 독해법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조국 정국’이 심상치 않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태풍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출범 과정에서 조 후보자가 지니는 상징성이 큰 탓에 핵심...

  • HERI
  • 2019.08.23
  • 조회수 4358

[유레카] 유라시아 ‘철의 실크로드’ 시대/이창곤

실크로드, 즉 비단길은 독일의 한 지리학자가 고대 중국과 그리스·로마 문화권 사이의 교역이 주로 비단을 통해 이뤄졌다는 데 착안해 명명했다. 김호동 서울대 교수(동양사)는 이 용어는 ‘비단길들’로 복수형으로 써야 더 역...

  • HERI
  • 2019.08.19
  • 조회수 4029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노회찬 없는 진보정치의 미래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2004년 4월15일은 한국 진보정치사에서, 아니 한국 정치사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이날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시작됐다. 민주노동당이 총선에서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을 얻어 ...

  • HERI
  • 2019.07.26
  • 조회수 3670

[유레카] ‘시민연대’로 새 한-일 관계 물꼬를/ 이창곤

일본의 경제보복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언론엔 연일 분석과 논평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진짜 속내는 무엇이며, 그는 어디까지 밀어붙이려 하는가? 정부는 왜 ...

  • HERI
  • 2019.07.18
  • 조회수 3844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다시 '문재인의 시간'이 올까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지난 6개월은 ‘황교안의 시간’이었다. 2017년 탄핵사태 이후 줄곧 10%대에 묶여 있던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1월 20%대로 급등한 데에는 황 대표의 역할이 컸다. 그가 등장하자 문재...

  • HERI
  • 2019.06.28
  • 조회수 3646

[유레카] 한국 ‘사회복지 역사’ 소고 / 이창곤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이 없는 민족을 낳을 것이며, 정신이 없는 나라를 만들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써놓고 나면 찢어버리고 싶어 못 견디는 이 역사 … 이것이 나라냐? 그렇다. 네 나라며, 네 역사며 내...

  • HERI
  • 2019.06.26
  • 조회수 8768

[유레카] ‘소리 없는 아우성’ / 이창곤

사회관계에서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사람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또는 어떤 조직이나 회사가 내리막길로 추락할 때 조직원들의 선택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의 저자인 앨버트 허시먼의 개념을 원용하면 셋으로 나눌 수 있...

  • HERI
  • 2019.06.04
  • 조회수 4494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청년을 퇴사로 밀어내는 사회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청년 퇴사는 시대적 변화를 드러내는 사회 현상이다. 무엇보다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이 1년 5.9개월에 불과하고,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도 27.7%에 이른다는 수치...

  • HERI
  • 2019.05.31
  • 조회수 4617

[유레카] 위기의 ‘사회적 대화’ 살리기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두고 말들이 많다. “입법보조기구냐” 또는 “고충처리기구 아니냐”는 비아냥은 차라리 충고에 가깝다. 사회적 대화 위기론을 넘어 무용론까지 등장하는 마당이다. 민주노총의 불참에 ...

  • HERI
  • 2019.05.13
  • 조회수 4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