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지난 6개월은 ‘황교안의 시간’이었다. 2017년 탄핵사태 이후 줄곧 10%대에 묶여 있던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1월 20%대로 급등한 데에는 황 대표의 역할이 컸다. 그가 등장하자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보수층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유한국당으로 결집했다. 경제에 대한 불만까지 가세하면서 ‘문재인의 시간’은 가고 ‘황교안의 시간’이 오는가 싶었다.



때마침 쪼그라들었던 한국당 지지층의 60%가 복원됐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관심을 끌었다. 한국리서치의 6월6~7일 조사(1000명 대상)에 의하면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을 탄핵사태 이전부터 지지한 층(307명) 중 지금도 지지한다는 응답은 59.7%였다. 2017년 2월의 28%에 견줘 두배로 뛰었다. 이 중 바른미래당 지지자까지 합치면 과거 새누리당 지지층의 65.1%인 약 3분의 2가 보수정당 지지로 회귀한 셈이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5월 말 이후 한국당 지지도는 20% 초반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2020년 총선 승패를 가를 분수령이자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수도권에서 한국당 지지도는 민주당의 절반 수준이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을 이탈해 ‘탄핵연합’에 가세했던 부산·울산·경남, 50대, 그리고 경제적 상층에서도 여전히 열세다.


취임 100일을 기점으로 외연확장에 나선 황교안 대표의 발언과 행동에도 구설이 끊이지 않는다. 지도자 자질에 대한 의심도 커지고 있다. 외국인에게 내국인과 같은 임금을 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반인권적’ 발언, 스펙 관리를 하지 못한 한 청년이 대기업에 취업한 사례로 자기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력 부재’를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80%에 육박하던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거의 반토막 나고 차기 대선에서 ‘집권여당을 한번 더 밀어줘야 한다’(45.8%) 못지않게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45.8%)는 여론이 높아도, 막상 한국당이라는 대안 앞에 이르면 견제 심리도 멈춘다. 탄핵사태 전까지 보수정당을 지지했던 층의 약 3분의 1이 여전히 보수정당을 외면하는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이들 ‘흔들리는’ 보수층은 탄핵에 찬성하고 대북·안보 이슈보다 민생·복지 이슈에 관심이 많다. 지금 자유한국당으로 결집해 있는 보수층과 한데 섞이기 어렵다는 신호다. 탄핵에 대한 책임 등 과거에 대한 성찰, 혁신 없이 한국당의 총선 전망도 암울하다.


그동안 대통령 임기 중·후반에 치러지는 총선은 중간평가적 성격이 크고 견제론이 작동해왔다. 선거에서 한 정당이 네번 연속 이긴 선례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에서 내리 이겼다. 이처럼 흐름만 놓고 보면 2020년 총선은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에 불리하다.


특히 경제·민생은 정부·여당의 아킬레스건이다. 무승부로 끝나긴 했지만 4·3 보궐선거에서 한국당은 경제 실정을 명분으로 문재인 정부 심판론을 제기했고 성과도 쏠쏠했다. 돌이켜보면 2016년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민주당이 1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중간 지대 유권자들의 민생 불안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이번에는 어떨까? 앞의 조사에서 ‘정권심판론’에 공감하는 여론은 39%에 그쳤지만 ‘야당심판론’에 대해서는 51.8%나 공감했다. 한국당이 ‘정권심판론’을 제기하는 순간 오히려 ‘야당심판론’이라는 프레임의 {덫에 빠진 셈이다. 60대 이상, 대구·경북, 보수성향 층에서만 ‘정권심판론’ 주장이 힘을 받고 있을 뿐, 부산·울산·경남, 50대, 중도층 등 선택을 유보한 보수층에서는 ‘야당심판론’에 대한 지지가 더 높다. 이른바 ‘침대축구’ 행태로 정치를 무력화한 한국당이 아직은 ‘심판할 자격’이 없다고 유권자들이 판단한 듯하다.


내년 총선까지 300일도 채 안 남았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은 높지만 뾰족한 대안도 안 보이는 상황이다. 패스트트랙에 대한 합의안 파기에서 드러나듯이 공익보다 분파이익을 우선하는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복권도 요원하다. 비록 탄핵연합은 끝났지만 ‘문재인의 시간’을 위한 마지막 기회, 그 틈새 공간이 펼쳐진 셈이다. 진짜 정치가 힘을 발휘해야 하는 공간, 실력이 필요한 시간이 왔다.



한겨레에서 보기: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촛불을 들지 못한 20대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소위 ‘조국 사태’ 이후 20대 청년세대의 박탈감과 분노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일부 명문대생들은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며 촛불을 들었다.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 HERI
  • 2019.09.27
  • 조회수 4355

[유레카] ‘조국 논란’의 종착점 / 이창곤

‘조국 논란’의 끝은 어디인가? 언론 보도는 연일 차고 넘친다. 하지만 공론(公論)은 없다. 검찰 수사는 마침내 ‘자택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장관과 직접 연계된 객관적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지와 ...

  • HERI
  • 2019.09.25
  • 조회수 4327

[유레카] 절실한 정책결정의 ‘관제탑’/ 이창곤

대부분의 공항에는 컨트롤타워, 즉 관제탑이 있다. 관제탑의 허가 없이는 어떤 비행기도 뜨고 내릴 수가 없다. 관제탑은 항공기의 위치와 고도를 확인해 필요사항을 지시한다. 비행 전에는 조종사가 제출한 비행계획을 점검하고 ...

  • HERI
  • 2019.09.03
  • 조회수 4423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조국 정국’ 독해법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조국 정국’이 심상치 않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태풍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출범 과정에서 조 후보자가 지니는 상징성이 큰 탓에 핵심...

  • HERI
  • 2019.08.23
  • 조회수 4184

[유레카] 유라시아 ‘철의 실크로드’ 시대/이창곤

실크로드, 즉 비단길은 독일의 한 지리학자가 고대 중국과 그리스·로마 문화권 사이의 교역이 주로 비단을 통해 이뤄졌다는 데 착안해 명명했다. 김호동 서울대 교수(동양사)는 이 용어는 ‘비단길들’로 복수형으로 써야 더 역...

  • HERI
  • 2019.08.19
  • 조회수 3782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노회찬 없는 진보정치의 미래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2004년 4월15일은 한국 진보정치사에서, 아니 한국 정치사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이날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시작됐다. 민주노동당이 총선에서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을 얻어 ...

  • HERI
  • 2019.07.26
  • 조회수 3506

[유레카] ‘시민연대’로 새 한-일 관계 물꼬를/ 이창곤

일본의 경제보복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언론엔 연일 분석과 논평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진짜 속내는 무엇이며, 그는 어디까지 밀어붙이려 하는가? 정부는 왜 ...

  • HERI
  • 2019.07.18
  • 조회수 3593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다시 '문재인의 시간'이 올까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지난 6개월은 ‘황교안의 시간’이었다. 2017년 탄핵사태 이후 줄곧 10%대에 묶여 있던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1월 20%대로 급등한 데에는 황 대표의 역할이 컸다. 그가 등장하자 문재...

  • HERI
  • 2019.06.28
  • 조회수 3459

[유레카] 한국 ‘사회복지 역사’ 소고 / 이창곤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이 없는 민족을 낳을 것이며, 정신이 없는 나라를 만들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써놓고 나면 찢어버리고 싶어 못 견디는 이 역사 … 이것이 나라냐? 그렇다. 네 나라며, 네 역사며 내...

  • HERI
  • 2019.06.26
  • 조회수 8138

[유레카] ‘소리 없는 아우성’ / 이창곤

사회관계에서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사람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또는 어떤 조직이나 회사가 내리막길로 추락할 때 조직원들의 선택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의 저자인 앨버트 허시먼의 개념을 원용하면 셋으로 나눌 수 있...

  • HERI
  • 2019.06.04
  • 조회수 4249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청년을 퇴사로 밀어내는 사회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청년 퇴사는 시대적 변화를 드러내는 사회 현상이다. 무엇보다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이 1년 5.9개월에 불과하고,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도 27.7%에 이른다는 수치...

  • HERI
  • 2019.05.31
  • 조회수 4349

[유레카] 위기의 ‘사회적 대화’ 살리기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두고 말들이 많다. “입법보조기구냐” 또는 “고충처리기구 아니냐”는 비아냥은 차라리 충고에 가깝다. 사회적 대화 위기론을 넘어 무용론까지 등장하는 마당이다. 민주노총의 불참에 ...

  • HERI
  • 2019.05.13
  • 조회수 4238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길 잃은 문재인 정부, 내년 총선은 어디로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여기 두개의 지표가 있다. 83%에서 44%, 12%에서 24%. 앞의 것은 1년 사이에 반토막 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고, 뒤의 것은 같은 기간 곱절로 뛴 자유한국당 지지율이다. 갤럽의...

  • admin
  • 2019.05.03
  • 조회수 4006

[유레카] ‘부양의무제’ 폐지의 가치론 / 이창곤

1537년 로마 교황 바오로 3세는 한 칙령을 내린다. “인도인이나 흑인,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민들도 인간이다.” 이 칙령이 시사하는 바는 당시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한동안 유럽인들에게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 admin
  • 2019.04.18
  • 조회수 4065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보궐선거에서 표출된 엄중한 민심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4·3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범여권과 자유한국당의 무승부로 끝났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 이후의 압도적 우위 체제가 끝났고, 자유한국당은 쇄신 없는 반사이익만으로는 지지층 확장에 ...

  • HERI
  • 2019.04.05
  • 조회수 3816

[유레카] ‘가짜 보수’의 몽니/ 이창곤

시사평론가 김용민은 한때 한국의 보수를 네가지로 유형화했다. 모태보수, 기회주의 보수, 무지몽매 보수 그리고 자본가 보수다. 모태 보수는 “돈과 기득권을 갖춘 집안에서 자라온 사람들”이고, 기회주의 보수는 “어떤 계기에...

  • HERI
  • 2019.03.28
  • 조회수 4310

[유레카] 금강산관광, 새 북-미 대화의 ‘킹핀’ / 이창곤

 금강산은 우리에게 이제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기암괴석의 천하명승만을 뜻하지 않는다. 금강산은 남북관계에서 “민족 화해, 협력의 체험장”이었다. 남북의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등 각계각층이 이곳에서...

  • HERI
  • 2019.03.12
  • 조회수 3888

[한겨레 프리즘] 청년 이슈에 대한 태도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뜨겁다. 이 현상의 핵심에 20대 남성의 ‘역차별 인식’이 있다. 최근 20~30대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

  • HERI
  • 2019.02.25
  • 조회수 4369

[유레카]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반응 톺아보기

지난 주말 기본소득이 반짝 회자되었다. 핀란드가 이태 동안 벌인 기본소득 실험의 ‘예비결과’(1차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압축하면 이렇다. “기본소득은 2017년 자료만 볼 때 수령자들의 고용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의미있...

  • HERI
  • 2019.02.13
  • 조회수 4614

[한겨레 프리즘] 핵심 지지층이 떠나고 있다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목포 원도심 차명 투기 의혹, 같은 당 서영교 의원의 재판청탁 의혹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두 사안이 다르고, 손 의원의 경우는 논쟁적 요소가 꽤 있...

  • HERI
  • 2019.01.23
  • 조회수 4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