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4·3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범여권과 자유한국당의 무승부로 끝났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 이후의 압도적 우위 체제가 끝났고, 자유한국당은 쇄신 없는 반사이익만으로는 지지층 확장에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정의당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의석 규모는 ‘초미니’지만 이번 선거가 지니는 정치적 메시지는 간단치 않다. 필자가 주목한 대목은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유권자 지형의 거대한 변화가 유효한지 여부였다.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는 보수 우위의 유권자 지형을 산산조각냈다. 그 결과 탄핵에 찬성한 약 75%가 다수파로 등장했고 구체제를 지지한 약 25%는 소수파로 전락했다. 이른바 ‘탄핵연합’이라는 다수파의 등장은 견고한 보수동맹의 해체를 의미하는 정치사적 사건이었다. 그 배경에 5060세대동맹에서 이탈한 50대가, ‘강남 3구’로 대표되는 자산 소유 보수층의 반공보수로부터의 홀로서기가 있었다. 특히 부산·울산·경남이 영남보수동맹에서 이탈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거대한 변화’ 위에서 출범했다. 마침 선거가 치러진 2곳이 경남 지역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통해 보수 우위 구체제로의 복귀 조짐이 시작되고 있는지 아니면 ‘탄핵연합’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대개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면 제1야당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치동학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오랫동안 15% 안팎의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이상 징후는 지난해 12월부터 드러났다. 이때를 기점으로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20%대로 상승했다. 마침 황교안 체제가 등장하고 짧은 시간에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하면서 ‘폐족’에 처했던 친박세력의 복권이 가시화되는 듯한 조짐도 나타났다. 정당 지지도도 3월 말 기준 갤럽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35%, 자유한국당 22%로 좁혀졌다.

그로기 상태에 빠진 보수를 되살려낸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여당에 있다. 민생문제 해결에 대한 누적된 실망감과 불만이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은 각종 경제지표에서도 확인된다. 2018년 12월 갤럽 조사를 보면, 국민들의 살림살이 전망은 ‘좋아질 것이다’가 18%, ‘나빠질 것이다’가 31%였다. 거시경기 전망은 훨씬 심각해서 ‘좋아질 것이다’는 17%에 그친 반면, ‘나빠질 것이다’는 54%나 되었다.

정부에 대한 분야별 평가를 보면 부정적 평가의 실체가 좀 더 뚜렷해진다. 같은 기관의 11월 조사에서 경제, 고용노동, 공직자 인선 분야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면 긍정 평가는 각각 23%, 26%, 28%에 그쳤다. 해당 분야에 대한 정책 신뢰가 거의 바닥났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경제, 고용노동 분야의 경우는 워낙 누적된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이해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공직자 인선은 이미 위험 신호가 켜졌음에도 실패가 되풀이되었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부동산 안정을 책임져야 할 주무 장관을 다주택 보유자로 지명한 ‘정치 감각’, 비판 여론에 ‘후보자가 집을 3채 가진 게 흠결인지 모르겠다’는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안일한 상황인식이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는 치명적이다. 여기에 전 청와대 대변인의 고액 부동산 매입 논란은 ‘함께 잘 사는 사회’라는 정권의 핵심 가치를 가볍게 만들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각자도생’이 ‘진리’라는 절망적 메시지만을 확인해주었다.

민주당의 압도적 우위 체제가 깨졌다고 해서 유권자 지형이 탄핵 이전으로 회귀했다고 말하는 것도 성급하다. 통영·고성은 지난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무투표 당선되었던 수십년 텃밭이다. 창원성산은 인지도와 조직력에 의존하는 보궐선거이고 상대 후보가 권영길, 노회찬 같은 거물이 아니었는데도 졌다. 정권 실패에 의존하는 전략, 색깔론, 오세훈의 막말 등 공포와 혐오 조장도 여전했다. 축구장 유세 사태와 사과 거부 같은 오만한 모습도 명불허전이었다. 황교안 대표의 지지율에 기대어 퇴행하는 모습을 보면, 정부여당 지지를 철회한 층이 자유한국당 지지로 갈아타기도 쉽지 않다.

보궐선거 결과가 던지는 메시지는 이렇다. 탄핵연합은 끝났다. 그걸 유권자 지형의 보수 회귀라고 과장해서도 안 된다. 유권자들은 양쪽 모두에게 경고를 던졌다. 무겁게 경고로 받아들이는 쪽이 내년 총선에서 이길 것이다.

hgy4215@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88757.html#csidxdc2e038f923558dac72ff7a2a4408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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