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00503085_20190115.JPG
정책은 정부의 구체적인 행동지침이다. 집행 순간부터 다수 국민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도 있지만, 허점으로 인해 위험에 빠뜨리는 것도 있다. 갈등을 일으키고 엄청난 예산 낭비를 초래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민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드높이는 정책도 분명 있다.

정책을 마련할 때 정책결정자와 정부는 응당 성공을 기대한다. 역사와 현실에서는 실패가 부지기수이며, 그 대가 또한 막대하다. 국민 혈세를 허공에 날리고 기회의 편익도 잃는다. 정책의 효능감을 떨어뜨리고 급기야 정부에 대한 불신을 유발한다. 이는 또 다른 정책실패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른바 ‘정책실패의 악순환’이다.

다른 속셈이 있지 않은 한 어떤 정책결정자나 정부도 이런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정책 체감’을 강조한 것도 시민들이 일상에서 정책효능을 피부로 느끼도록 해 정책의 수용성을 높이고 통치행위에 대한 정당성과 지지를 끌어올리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정책이 곧 정치인 것이다.

정책기획위원회 등이 대규모 정책홍보 행사를 준비 중인 것도 정책의 이런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같은 흐름에서 청와대와 정부는 이른바 ‘국민 전생애 생활보장 3개년 계획’을 이른 시일 안에 발표하는 한편 중장기 ‘포용국가 미래비전’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요즘 한 청와대 관계자가 “국민의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주려면 지금 뭘 하면 됩니까?”라고 학자들에게 빈번히 묻는 것도 정책의 가시적 성과와 체감도 증진을 위한 고심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정책 ‘신상품’ 발굴이나 체감도 확산, 미래비전 마련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인식을 전제하지 않는다면 모두 허깨비가 될지도 모른다. 5년 단임의 여소야대 정부라 의지만큼 힘이 세지 않다는 것, 경제는 물론 복지·노동의 국민 일반 체감도가 여전히 낮다는 것, 행정부처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 국정과제 중 할 수 없는 게 제법 많다는 것 등이 그렇다.

끝으로 물음에 답해보면, 내게는 노인빈곤·간병 등 돌봄 고통, 그리고 실업 등 청년 문제가 핵심 의제다. 문재인 정부가 이들 문제에 획기적인 진전을 이루기만 해도 ‘촛불정부’의 임무를 상당히 완수했다고 나는 평가할 것이다.

이창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장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한겨레에서보기: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촛불을 들지 못한 20대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소위 ‘조국 사태’ 이후 20대 청년세대의 박탈감과 분노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일부 명문대생들은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며 촛불을 들었다.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 HERI
  • 2019.09.27
  • 조회수 4340

[유레카] ‘조국 논란’의 종착점 / 이창곤

‘조국 논란’의 끝은 어디인가? 언론 보도는 연일 차고 넘친다. 하지만 공론(公論)은 없다. 검찰 수사는 마침내 ‘자택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 그런데도 장관과 직접 연계된 객관적 실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지와 ...

  • HERI
  • 2019.09.25
  • 조회수 4299

[유레카] 절실한 정책결정의 ‘관제탑’/ 이창곤

대부분의 공항에는 컨트롤타워, 즉 관제탑이 있다. 관제탑의 허가 없이는 어떤 비행기도 뜨고 내릴 수가 없다. 관제탑은 항공기의 위치와 고도를 확인해 필요사항을 지시한다. 비행 전에는 조종사가 제출한 비행계획을 점검하고 ...

  • HERI
  • 2019.09.03
  • 조회수 4399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조국 정국’ 독해법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조국 정국’이 심상치 않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태풍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출범 과정에서 조 후보자가 지니는 상징성이 큰 탓에 핵심...

  • HERI
  • 2019.08.23
  • 조회수 4167

[유레카] 유라시아 ‘철의 실크로드’ 시대/이창곤

실크로드, 즉 비단길은 독일의 한 지리학자가 고대 중국과 그리스·로마 문화권 사이의 교역이 주로 비단을 통해 이뤄졌다는 데 착안해 명명했다. 김호동 서울대 교수(동양사)는 이 용어는 ‘비단길들’로 복수형으로 써야 더 역...

  • HERI
  • 2019.08.19
  • 조회수 3761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노회찬 없는 진보정치의 미래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2004년 4월15일은 한국 진보정치사에서, 아니 한국 정치사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이날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시작됐다. 민주노동당이 총선에서 지역구 2석, 비례대표 8석을 얻어 ...

  • HERI
  • 2019.07.26
  • 조회수 3487

[유레카] ‘시민연대’로 새 한-일 관계 물꼬를/ 이창곤

일본의 경제보복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언론엔 연일 분석과 논평이 쏟아지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아베 신조 총리의 진짜 속내는 무엇이며, 그는 어디까지 밀어붙이려 하는가? 정부는 왜 ...

  • HERI
  • 2019.07.18
  • 조회수 3574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다시 '문재인의 시간'이 올까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지난 6개월은 ‘황교안의 시간’이었다. 2017년 탄핵사태 이후 줄곧 10%대에 묶여 있던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1월 20%대로 급등한 데에는 황 대표의 역할이 컸다. 그가 등장하자 문재...

  • HERI
  • 2019.06.28
  • 조회수 3447

[유레카] 한국 ‘사회복지 역사’ 소고 / 이창곤

“정신이 없는 역사는 정신이 없는 민족을 낳을 것이며, 정신이 없는 나라를 만들 것이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써놓고 나면 찢어버리고 싶어 못 견디는 이 역사 … 이것이 나라냐? 그렇다. 네 나라며, 네 역사며 내...

  • HERI
  • 2019.06.26
  • 조회수 8103

[유레카] ‘소리 없는 아우성’ / 이창곤

사회관계에서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사람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또는 어떤 조직이나 회사가 내리막길로 추락할 때 조직원들의 선택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의 저자인 앨버트 허시먼의 개념을 원용하면 셋으로 나눌 수 있...

  • HERI
  • 2019.06.04
  • 조회수 4239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청년을 퇴사로 밀어내는 사회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청년 퇴사는 시대적 변화를 드러내는 사회 현상이다. 무엇보다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이 1년 5.9개월에 불과하고,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도 27.7%에 이른다는 수치...

  • HERI
  • 2019.05.31
  • 조회수 4318

[유레카] 위기의 ‘사회적 대화’ 살리기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두고 말들이 많다. “입법보조기구냐” 또는 “고충처리기구 아니냐”는 비아냥은 차라리 충고에 가깝다. 사회적 대화 위기론을 넘어 무용론까지 등장하는 마당이다. 민주노총의 불참에 ...

  • HERI
  • 2019.05.13
  • 조회수 4229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길 잃은 문재인 정부, 내년 총선은 어디로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여기 두개의 지표가 있다. 83%에서 44%, 12%에서 24%. 앞의 것은 1년 사이에 반토막 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고, 뒤의 것은 같은 기간 곱절로 뛴 자유한국당 지지율이다. 갤럽의...

  • admin
  • 2019.05.03
  • 조회수 3998

[유레카] ‘부양의무제’ 폐지의 가치론 / 이창곤

1537년 로마 교황 바오로 3세는 한 칙령을 내린다. “인도인이나 흑인, 아메리카 대륙의 토착민들도 인간이다.” 이 칙령이 시사하는 바는 당시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한동안 유럽인들에게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 admin
  • 2019.04.18
  • 조회수 4047

[한귀영의 프레임 속으로] 보궐선거에서 표출된 엄중한 민심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4·3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범여권과 자유한국당의 무승부로 끝났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 이후의 압도적 우위 체제가 끝났고, 자유한국당은 쇄신 없는 반사이익만으로는 지지층 확장에 ...

  • HERI
  • 2019.04.05
  • 조회수 3798

[유레카] ‘가짜 보수’의 몽니/ 이창곤

시사평론가 김용민은 한때 한국의 보수를 네가지로 유형화했다. 모태보수, 기회주의 보수, 무지몽매 보수 그리고 자본가 보수다. 모태 보수는 “돈과 기득권을 갖춘 집안에서 자라온 사람들”이고, 기회주의 보수는 “어떤 계기에...

  • HERI
  • 2019.03.28
  • 조회수 4297

[유레카] 금강산관광, 새 북-미 대화의 ‘킹핀’ / 이창곤

 금강산은 우리에게 이제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기암괴석의 천하명승만을 뜻하지 않는다. 금강산은 남북관계에서 “민족 화해, 협력의 체험장”이었다. 남북의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등 각계각층이 이곳에서...

  • HERI
  • 2019.03.12
  • 조회수 3878

[한겨레 프리즘] 청년 이슈에 대한 태도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뜨겁다. 이 현상의 핵심에 20대 남성의 ‘역차별 인식’이 있다. 최근 20~30대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

  • HERI
  • 2019.02.25
  • 조회수 4349

[유레카]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반응 톺아보기

지난 주말 기본소득이 반짝 회자되었다. 핀란드가 이태 동안 벌인 기본소득 실험의 ‘예비결과’(1차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압축하면 이렇다. “기본소득은 2017년 자료만 볼 때 수령자들의 고용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의미있...

  • HERI
  • 2019.02.13
  • 조회수 4602

[한겨레 프리즘] 핵심 지지층이 떠나고 있다 / 한귀영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목포 원도심 차명 투기 의혹, 같은 당 서영교 의원의 재판청탁 의혹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두 사안이 다르고, 손 의원의 경우는 논쟁적 요소가 꽤 있...

  • HERI
  • 2019.01.23
  • 조회수 4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