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칼럼

이상호 연구위원_!.JPG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결국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지난 22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개혁을 위한 공정인사·취업규칙 지침’을 발표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합의에 대한 파기선언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지 꼭 3일 만이다. 합의문에서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겠다”고 약속했던 정부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과 관련된 행정지침을 왜 이렇게 서둘러 발표한 걸까?

9·15 노사정 합의를 한국노총이 파기한 마당에 고용노동부가 청와대에 대한 충심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은 “지시한 대로 하겠습니다”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소임을 다하고 있지 못하니 국민들이 노동개혁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용자단체의 서명 ‘퍼포먼스’에 동참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행보는 노동법 개악에 대한 과욕과 사회적 대화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를 위해서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총동원령’까지 내린 박 대통령은 일반해고 지침이 국민들을 해고의 낭떠러지로 내모는 ‘살생부’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정부는 초기에 근로기준법의 개정 등 입법조처를 통해 일반해고 도입을 시도하다가 여의치 않자, 행정지침으로 저성과자에 대한 합법적 해고를 공식화하고 있다. 그들에게 저성과는 근로제공의 의무를 불완전하게 이행한 것을 의미하고, 이는 노동자의 해고 귀책사유가 된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볼 때, 기존의 징계해고와 정리해고 외에 ‘일반해고’라는 합법적 고용 조정의 새로운 무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일반해고의 도입은 ‘쉬운’ 해고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저성과자를 ‘엄격하게’ 선정하고 ‘최대한’ 해고의 남용을 막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작년 7월 말 정부는 공공기관과 대기업노조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 유지로 인한 고용절벽 탓에 청년들이 노동시장으로 들어갈 기회조차 막혀 있다며 임금피크제의 도입을 추진했다. 퇴직연령에 접어든 중고령자 노동자들은 정부의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실업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청년세대인 자식들의 미래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의 대책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런데 이것도 모자라 정부가 이제 국민 모두에게 능력과 노력이 부족하면 일자리를 떠나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나이, 세대를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사용자의 성과목표에 미달하면 해고의 낭떠러지로 내몰리는 시나리오를 정부가 직접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해고’라는 단어가 주는 국민적 불안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인지 이번 행정지침 발표에서는 ‘일반해고’라는 명칭 대신에 ‘공정인사’라는 제목을 달아놓았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일반해고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이미 해고 자체가 ‘쉬운’ 나라이다. ‘편법적’ 해고의 또다른 이름, 희망퇴직과 명예퇴직이 횡행하는 우리나라에서 일반해고의 도입은 해고의 ‘자유화’를 의미한다. 일반해고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현저한’ 저성과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정부의 말은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에 되묻고자 한다. 진정 이번에도 또다시 국민을 우롱하는 양치기 소년이 될 것인가?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lshberlin0612@hani.co.kr


등록: 2016-01-24 19:14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276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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